삶의 자리로 문학이 들어왔다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이승수 | 산처럼
시대가 엄혹할수록 사람들은 지치고 고단한 마음을 위무(慰撫)해줄 무언가를 찾는다. 좋은 예술작품은 시간을 초월하는데, 특히 텍스트로 존재하는 문학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기에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곤 한다.
그러나 오늘날 독자와 문학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문단에서는 문학의 죽음, 문학이론과 비평의 부재를 말하고, 독자들은 점점 문학이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문학에 덧씌워진 권위와 현학적인 수사를 걷어내고 문학을 “삶의 차원으로 끌어오려”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마음에서 잉태되어 천지간의 고운 언어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 세상 사람들 사이를 소통시키는 것”이 문학이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문학의 모태가 되는 26개의 핵심어를 뽑아냈다. 절망·여행·소멸·호기·거울·폐허·탄생·전장·모순·풍류·불안·광기·해학·분노·풍자·사랑·공포·유폐·이별·우정·동경·
신념·한적·비애·죽음·고독이다.
저자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문학작품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문학이 잉태되는 삶의 순간을 제시한다. 안톤 체호프의 <6호실>과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는 광기를 다루고, 박지원의 <허생전> 속 허생의 모험은 한 지식인의 절망에서 시작됐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당시 적위군과 백위군 사이에 되풀이되던 보복과 이로 인한 등장 인물의 공포를 다룬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의 삶에서 비롯된다. 인생의 그늘과 모순, 부조리를 비롯해 평범한 삶의 단편들이 때론 담백하고, 재기넘치고, 해학적인 이야기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책을 붙잡으면 단숨에 읽어내려갈 정도로 쉽게 읽히는 문체와 방대한 문학 작품을 읽어 내려가며 길어낸 문장이 매력적이다. 본지에 연재된 동명의 시리즈를 엮은 책이다/경향신문,200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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