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태어나는 자리](17)
사랑-영혼을 감싸안고 마음을 어루만져 삶을 바꾸는 묘약
조국의 아픈 역사와 방황하던 삶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기를 다짐했고, 그때부터 많은 일본 사람들이 자기 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케이세이선을 타고 나 이제 돌아가네 / 여기도 또한 내 고향 ….” 그녀의 노래 ‘케이세이선(京成線)’의 1절이다.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운명을 따스하게 품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일러스트 | 김상민기자 |
송홧가루 날리는 세상, 모란은 진작 피었건만 봄은 다 오지 않은 5월, 사랑을 말한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 나를 밀어 지금에 서게 한 역사, 내게 주어진 운명을 끝까지 사랑하는 책임과 인내를 새로이 다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세상에 사랑은 없다. 세상에 편안하고 따스하고 용감한 사랑을 감지하고 싶다.
안평대군은 수성궁 안에서 12명의 소녀들에게 온갖 기예를 가르치며 외부 세계와 조금도 통하지 못하게 했다. 17세 운영(雲英)은 12 소녀 중 하나이다. 14세 소년 재사 김 진사는 대군의 문객(文客)이다. 운영과 김 진사는 남몰래 눈이 맞았다. 어느 날 대군은 운영에게 먹을 갈게 했고, 김 진사가 시를 지을 때 홀연 먹물 한 방울이 운영의 손등에 떨어졌다. 한 점 인연이 생긴 것이다. 운영은 차마 그 먹 자국을 지워버리지 못했다. (‘운영전’)
최앵앵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영구를 모시고 고향으로 가다가 길이 막혀 보구사(普救寺)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마침 조실부모하고 세상을 유랑하던 장군서도 보구사에 묵게 되었다. 앵앵에게 첫눈에 반한 장군서는 주지에게 부탁하여 앵앵의 숙소와 가까운 서쪽 곁채[서상(西廂)]를 빌렸다. 그리고 부모의 재를 올린다는 핑계로 앵앵 모녀의 재회(齋會)에 참여한다. 이후 장군서의 마음은 이러했다. “그대 잠깐 던진 아름다움에 / 만 갈래 그리움을 나는 줍노라.” 달 밝은 밤 두 사람은 시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떠본다.(‘西廂記’)
1772년쯤, 17세의 귀족 출신 표트르 안드레이치는 퇴역 중령인 아버지에 의해 변경으로 입대 조치되었다. 페테르부르크에서의 낭만적인 생활을 꿈꾸던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표트르가 배속된 벨로고르스크 요새는 시설과 군대 모두 형편 없는 키르기스 초원의 접경지이다. 표트르는 요새의 사령관인 대위의 딸 마리야 이바노브나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사려 깊고 감정이 풍부한 아가씨를 위해 시를 썼고, 자기 사랑을 모독한 동료와 결투를 하다가 중상을 입었다. 닷새 만에 깨어난 그는 마리야의 입맞춤에 자기 몸에 한줄기 불길이 확 번져나가는 것을 느꼈다.(푸시킨, ‘대위의 딸’)
대학의 스페인어 강사 로베르트 조던은 신념에 따라 1930년대 후반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다. 다리 폭파의 임무를 띤 그는 그 근처 게릴라 부대를 찾아간다. 거기서 파시스트들에게 가족을 잃고 온몸을 유린당한 19살 마리아를 만난다. 조던과 마리아는 작전 수행이 있기까지 사흘 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둘째 날 한밤중에 깨어난 조던은, 그녀가 생명의 전부이며 남에게 빼앗길 것 같기나 한 듯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이튿날 그는 그녀와의 사랑만으로도 자신의 삶은 행운으로 가득 찬 것이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신에게 속삭인다.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고, 서로를 통해 삶이 거듭난다. 그 심정을 이제현(1287~1367)은 “빨래터 언덕 위에 버들이 늘어질 때 / 손잡고 속삭이던 백마 탄 님이시여 / 처마에서 쏟아지는 석 달 간 빗물인들 / 손 끝에 남은 향기 어찌 차마 씻어내리”라고 읊었는데, 이는 당시 유행하던 민요를 번역한 것이다. 이승훈에 따르면 ‘너를 만난 날’은, 날개가 달린 날이고, 현실이 사라진 초현실의 날이고, 새가 날아오던 날이고, 불안과 비참과 치욕 따위가 모조리 일어나 빛이 되던 날이다. (‘너를 만난 날’)
사랑은 이렇게 한 번에 오지만, 그렇다고 한 번에 다 오는 법은 없다. 선가의 수행에 비유하자면 돈오점수(頓悟漸修)인지라, 거기에는 고통과 인내가 수반된다. 배꽃에 달빛이 부서지는 밤 일지(一枝) 춘심(春心)을 품고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이루는 밤이 그것이고(이조년), 마음 속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천날) 밤의 꿈으로 맑게 씻는 마음도 그것이다.(서정주, ‘동천’) “꿈 속 넋 오감에도 발자국 남는다면 / 님의 집 앞 자갈길은 거의 모래 되었으리.”(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砂)(조원)나, “뵈오려 안 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이은상) 또한 시인에게 포착된 사랑의 수행이다.
운영과 김 진사는 높은 궁궐 담장을 넘나들며 사랑을 이어간다. 궁궐 담장의 높이는 금기의 표상이다. 금기를 어긴 두 사람은 죽음으로 마음을 지키고자 했다. 최앵앵과 장군서는 곡절 끝에 사랑을 나눈다. 앵앵은 부친의 상중이었고, 그들이 사랑을 나눈 공간은 사원이었다. ‘서상기’에 대해 음서(淫書)라는 비난이 그치지 않았는데, 김성탄은 이를 두고 “문사가 보면 문학이고, 음탕한 자가 보면 음서”(文者見之謂之文, 淫者見之謂之淫)라는 말로 일축했다. 표트르는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향해 연인을 구해오고, 큰 부상을 입은 조던은 “두 사람 중 한쪽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거야”라는 말로 마리아를 보내놓고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
뜨거운 사랑은 오래 묵고 많이 참는 단련의 과정을 거쳐 그윽한 사랑이 된다. 오랜 세월 사랑을 지켜주는 것은 책임과 인내이다. 마리야의 아버지 이반 대위는 주변 요새들이 반란군에게 점령되어가자 아내에게 몸을 피할 것을 권한다. 아내 바실리사는 말한다. “여태껏 같이 살았으면 죽을 때도 같이 죽어야지요.” 상황이 급박해지자 이반은 딸과 부인을 보내며 말한다. “자, 미샤, 행복하거라. … 나와 바실리사가 살았던 것처럼 너희들도 살거라. … 여보 우리도 키스합시다.” 부인은 울면서 말했다. “잘 가세요. 제가 혹시 당신께 잘못한 일이 있거든 용서하세요!”(석영중 옮김) 자기도 모르게 이 노부부의 사연에 마음이 끌린다면 그 자신 사랑을 숙성시키고 있다는 증거이다.
서로를 생각하는 이용과 월선의 마음은 애틋하기 그지없지만 운명은 두 사람의 인연을 조금씩 빗나가게 했다. 어긋나던 인연은 월선의 죽음 앞에서 겨우 합치된다. 용은 다 죽어가는 월선을 내려다보았고, 월선은 그 모습을 눈이 부신 듯 올려보았다.
“오실 줄 알았십니다.” “산판일 끝내고 왔다.” 용이는 속삭이듯 말했다. “야 그럴 줄 알았십니다.” “임자.” 얼굴 가까이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떤다. 머리칼에서부터 발끝까지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댄다. 얼마 후 그 경련은 멎었다. “임자.” “야.” “가만히,” 이불 자락을 걷고 여자를 안아 무릎 위에 올린다. 쪽에서 가느다란 은비녀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내 몸이 찹제?” “아니요.” ……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머리를 쓸어주고 주먹만큼 작아진 얼굴에서 턱을 쓸어주고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눕힌다. (박경리, ‘토지’)
끝까지 서로를 가슴에 품고 참고 견딘 덕분에 두 사람은 황홀하게 슬픈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 짧은 대면으로 두 사람은 오래도록 자신들을 괴롭히던 운명의 장난을 떨쳐낼 수 있었고, 번민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었으며, 한을 남기지 않아도 되었다. 이 대목에 이르러 독자들은 가슴속에 뭉쳐있던 응어리가 빠져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심각하게 인류의 운명을 걱정하고 사회 개혁을 꿈꾸며 혁명 사상이 담긴 책들을 탐독하던 10월의 마지막 날, 나는 굶주림에 지쳐 강가를 헤매다가 술집 여급 나타샤를 만났다. 우리는 함께 빵을 훔쳤다. 내가 이빨을 부딪치며 추위에 떨자, 나타샤는 아이 달래듯 나를 어르며 자신을 끌어안게 해주었다. 내가 알지 못할 감동에 눈물을 흘리자, 그녀는 “울지 말아요! 하느님이 당신을 축복해 주실 거예요. 일터에도 곧 나갈 수 있을 거고요”라고 달래주며 입을 맞추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받은 키스였다. 역사의 변혁을 꿈꾸는 (대단한) 나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쓰다듬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세상에 대한 저주와 분노로 삶의 벼랑 끝에 선 (하찮은) 술집 여인이었던 것이다. (고리키, ‘어느 가을날’)
자기모순에 빠진 어떤 의사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은 인류를 너무 사랑하는데, 인류 전체를 사랑하면 할수록 인간 하나하나에 대한 사랑은 점점 더 적어지며, 반대로 하나하나의 인간을 증오할수록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뜨겁게 타오른다는 것이다. 조시마 장로는 믿음이 부족한 귀부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실천적인 사랑과 공상적인 사랑과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실천적인 사랑은 묵묵한 노동과 인내일 뿐이며, 아무리 애써도 목표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고 한다.(도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 형제들’) 사랑은 요란한 구호나 싸늘한 이념이 아니라, 따스한 눈길이고 어루만져주는 손길인 것이다. 장로가 말한 실천적인 사랑이란 바로 나타샤의 사랑이 아닐까? 세상에 나타샤는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게 되면 그녀의 속눈썹 아래 감추어진 수심이 보이고, 봄 숲에서 우는 검은등뻐꾸기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리고,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너’에게 날아가게 된다. 그러니 그 사연을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세상의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사랑에서 태어나지 않은 문학은 없다. 지금이라도 책을 덮고, 컴퓨터와 TV를 끄고 ‘너’에게 말을 걸어볼 일이다.
뜨거운 사랑은 오래 묵고 많이 참는 과정을 거쳐 그윽한 사랑이 된다. 사랑을 지켜주는 것은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인내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겨드랑이에 날개 돋아 ‘그’에게 날아갈 수 있게 된다. 희망속에서, 때로는 절망속에서 사랑은 꽃핀다. 세상의 모든 다른 존재들처럼, 사랑 없인 문학도 없다.
이승수 경희대교수
경향신문,20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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