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동시 - 제 44 편]
호 박 꽃-안도현
호호호호 호박꽃
호박꽃을 따버리면
애애애애 애호박
애호박이 안 열려
호호호호 호박전
호박전을 못 먹어
(2007)
- ▲ 일러스트=윤종태
시평
소리가 전해주는 행복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 이런 시를 읽고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사소하고 또 사소해서 우리의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물들의 속성을 새롭게 발견해내고 그것에 적절한 이름을 부여하는 능력을 시인의 자질이라고 한다면, 안도현(47) 시인 앞에 설 자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에 이어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을 펴내기도 한 그는 전천후 시인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동시집에 그는 "여기에 실린 동시를 쓰면서 나는 어린이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중략) 그래서 나는 행복했습니다"라고 썼다. 그에게 동화를 쓰거나 동시를 쓰는 행위는 잃어버린 유년을 되찾는 과정인 것도 같다. 이 과정을 그는 감히 행복이라고 명명했다. 시가 행운에 속한다면, 동시는 어쩌면 행복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동시집의 첫 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 시를 통해 안도현은 행복이란 무엇보다도 청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호박꽃은 '호호호호' 웃고 애호박은 '애애애애' 재잘거린다. 만물은 그 나름의 음향으로 충만해 있다.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소리들을 채집하기 위해 그는 아이들의 시선을 필요로 했던 모양이다. "풋살구, 라는 말을 들으면/ 풋, 풋, 풋/ 입속에 문득문득/ 풋살구가 들어와요"(〈풋살구〉)라거나, "한 번도/ 꽃 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펑펑, /팡팡, /봄꽃은 핀다"(〈순서〉)라고 쓸 때, 그의 마음속엔 이미 행복을 감지하는 능력을 지닌 자, '소년'이 들어와 앉아 있다.
그러나 이 행복은 단순히 붕붕거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소란한 음향을 통해 나름의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창조의 일환이기도 하다. 호박꽃을 따버리면 호박이 열리지 않고 호박이 열리지 않으면 당연히 호박전을 해먹을 수 없다. 별 것 아니라면 별 것 아닌 이 사소한 진실은, 그러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기본 윤리라고 할 만하다. 아이들에게 이 윤리를 말하는 일은 어렵다. 난해하다. 자칫 잘못하면 지루하고 답답해진다. 그런데 안도현은 시끌벅적 온갖 소리들의 향연 속에서 재미나게 놀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해버린다. 놀라운 일이다. 시인이 무엇을 하는 자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신수정 문학평론가/조선일보,2008.7.1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에 이어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을 펴내기도 한 그는 전천후 시인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동시집에 그는 "여기에 실린 동시를 쓰면서 나는 어린이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중략) 그래서 나는 행복했습니다"라고 썼다. 그에게 동화를 쓰거나 동시를 쓰는 행위는 잃어버린 유년을 되찾는 과정인 것도 같다. 이 과정을 그는 감히 행복이라고 명명했다. 시가 행운에 속한다면, 동시는 어쩌면 행복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동시집의 첫 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 시를 통해 안도현은 행복이란 무엇보다도 청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호박꽃은 '호호호호' 웃고 애호박은 '애애애애' 재잘거린다. 만물은 그 나름의 음향으로 충만해 있다.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소리들을 채집하기 위해 그는 아이들의 시선을 필요로 했던 모양이다. "풋살구, 라는 말을 들으면/ 풋, 풋, 풋/ 입속에 문득문득/ 풋살구가 들어와요"(〈풋살구〉)라거나, "한 번도/ 꽃 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펑펑, /팡팡, /봄꽃은 핀다"(〈순서〉)라고 쓸 때, 그의 마음속엔 이미 행복을 감지하는 능력을 지닌 자, '소년'이 들어와 앉아 있다.
그러나 이 행복은 단순히 붕붕거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소란한 음향을 통해 나름의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창조의 일환이기도 하다. 호박꽃을 따버리면 호박이 열리지 않고 호박이 열리지 않으면 당연히 호박전을 해먹을 수 없다. 별 것 아니라면 별 것 아닌 이 사소한 진실은, 그러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기본 윤리라고 할 만하다. 아이들에게 이 윤리를 말하는 일은 어렵다. 난해하다. 자칫 잘못하면 지루하고 답답해진다. 그런데 안도현은 시끌벅적 온갖 소리들의 향연 속에서 재미나게 놀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해버린다. 놀라운 일이다. 시인이 무엇을 하는 자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신수정 문학평론가/조선일보,200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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