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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밖 언어여행/서울대 권장도서

인간문제, 강경애

by 골든모티브 2008. 1. 10.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51> 인간문제
 



강경애의 ‘인간문제’는 동아일보에 1934년 8월 1일부터 12월 22일까지 연재되었던 장편소설이다. 강경애는 광복 이전에 여성 작가로는 리얼리즘 문학정신을 가장 치열하게 또 실천적으로 구현했다. 그의 소설 대부분은 간도 이주 후에 쓰인 것으로 일면 창작활동을 통해, 일면 사회활동을 통해 저항적이며 투쟁적인 한국인을 적극 도와주기도 하였다.

 

‘인간문제’는 1930년대에 원소마을을 배경으로 선비라는 처녀가 지주에게 짓밟힌 후 마을을 떠나 인천의 방직공장에 가서 감독에게 농락당하고 억압받다가 결국 폐병에 걸려 죽고 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농민의 딸의 수난사로 요약되긴 하지만, 농민이 공장 노동자로 전화(轉化)되는 농촌 분해의 한 값진 사례를 제시한 것으로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강경애는 이 소설의 서두를 ‘원소전설(怨沼傳說)’로 장식함으로써 자신의 창작 의도를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갖는다. 원소는 구두쇠 장자(長者)의 착취에 시달리며 살아왔던 농민들의 원한의 눈물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전설을 갖고 있다. 강경애가 작가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못 가진 자, 짓밟히는 자, 약한 자의 원한은 이데올로기의 가장 중요한 씨앗이 된다. 소설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갑남을녀가 빼앗기고, 짓밟히고, 뿌리 뽑히게 된 그 내력을 감지하게 된다. 작품 ‘인간문제’는 빼앗고 짓밟고 뿌리 뽑는 존재를 크게 지주와 공장 감독으로 나누었지만, 작가 강경애는 이들 존재의 배후인 식민통치세력을 쏘아 보고 있는 것이다.

강경애는 ‘인간문제’를 쓰기 전에 인간의 근본 문제를 포착하기 위해 또 문제를 해결할 힘을 구비한 인간이 누구인가를 지적하려고 애써 왔다. 이러한 노력의 한 증거는 민족단일당인 신간회(新幹會)의 자매단체인 근우회(槿友會)에 강경애가 가입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강경애는 근우회 활동을 통해서 짓밟히는 자라든가 빼앗기는 자로서의 여성의 현실적 위치를 인간문제의 한 갈래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근우회에서 여성은 억압, 착취, 투쟁 등의 개념에 눈뜨게끔 하는 존재가 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문제’는 선비의 시련 과정과 이로 인해 빚어진 연민의 플롯, 지식인인 신철이 보여주는 모험과 타락의 플롯, 첫째가 주역이 되어 나오게 된 계몽의 플롯 등이 포개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의 프로문학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인간문제’의 선비라든가 첫째와 같은 주요 인물은 의지도 박약하고 전망도 결여된 소극적 인물로 비치기 쉽다.

이 작품은 어려서부터 선비를 사모해 왔고 신철을 사상의 스승으로 섬겨 왔던 첫째가 선비의 죽음과 신철의 배반을 맞으면서 선비의 시체로 상징되는 인간문제를 해결하는 데 뛰어들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그만큼 강경애는 인간문제를 관념이 아닌 경험논리로, 또 이상론이 아닌 현실논리로 접근하였다.

 

‘강경애 전집’(이상경 편)에 수록된 ‘인간문제’가 현재 출간된 단행본 중에서는 가장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인간문제’ 정본의 참 맛은 당시 일제 치하의 검열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동아일보’ 연재본을 그대로 옮겨 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조남현 서울대 교수 국어국문학과

동아일보,200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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