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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탄생100주년 문인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만든 1908년생 文人

by 골든모티브 2008. 11. 1.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만든 1908년생 文人

 

유치환·이무영·김유정·김정한·백철,임화,김기림,최재서

 

올해 유달리 탄신(誕辰) 100주년을 맞은 문인들이 많다. 1908년에 태어나 격랑의 시대를 살다 간

유치환·임화·김기림(시인), 이무영·김유정·김정한(소설), 백철·최재서(평론가)가 그들이다.

세상은 100년 전 태어났던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유치환

지난달 2일 청마(靑馬) 유치환(1908~1967)의 흉상이 경남 통영 중앙동우체국(옛 통영우체국) 앞에 세워졌다. 생전에 편지쓰기를 즐겼던 청마가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편지를 부쳤던 곳이 바로 이 우체국이다.

외손자 김기성(51·SBS 기자)씨는 "내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자상했지만 늘 말이 없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통영의 한 고교에서 교장을 하셨을 때 윤이상 선생이 음악교사로 있었다. 평소 '사위 삼겠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윤 선생을 아꼈다고 들었다"며 "당시 통영의 교가들이 대부분 '유치환 작사, 윤이상 작곡'일 정도로 듀엣으로 활동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청마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을 돌아보는 사업이 활발하다. 1000편이 넘는 청마의 시 가운데 애창시 100편을 추리고 시에 맞는 그림을 엮어 만든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이 출간됐고, 시와 수필, 산문 등 총 6권으로 구성된 전집도 새로 나왔다.

이무영

"나하고 결혼하면 사흘을 굶어도 배고프다는 말을 안 해야…."

농민문학의 선구자 이무영(1908~1960)의 프러포즈다. 부인 고일신(93)씨는 "선을 보러 나갔을 때 나는 이미 그 분의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기꺼이 그의 반려자가 되어 힘껏 내조해주리라 생각했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 문학소녀였다는 고씨는 결혼 후 이무영 작품의 최초 독자이자 평론가였다. 그는 "무영은 누가 자기 글에 손대는 걸 싫어했는데 내가 '이 부분을 고치면 어떨까' 하면 '당신 제법인데' 하고 칭찬해줬다"고 했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이무영은 1926년 조선문단을 통해 등단했다. 1939년 동아일보 기자직을 사퇴하고 군포로 내려가 몸소 농사를 지으며 단편소설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를 비롯한 농민 소설을 발표했다.

고씨는 애지중지 모아온 남편의 작품과 자료들을 묶어 이무영 탄생 100주년 기념집을 펴냈다. '제1과 제1장' '농민' 2권으로 묶여, 표제작을 비롯해 '흙의 노예' '죄와 벌' '만보노인' 등 그의 대표 장·단편 16편이 수록됐다. 책은 고씨의 뜻에 따라 전국 고등학교와 대학 도서관, 공공 도서관 등 3000여 곳에 기증됐다.

김유정

소설 '봄봄'의 작가 김유정(1908~1937)을 흔히 '3無의 작가'라고 부른다. 자식이 없고, 무덤이 없고, 유품이 없는 작가라는 뜻이다. 그는 스물 아홉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해 잔병치레가 잦았다. 193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4년의 활동 기간 동안 남긴 30여 편의 빼어난 작품들은 한국 소설의 축복이라 할 만하다.

김유정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상국 강원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김유정 소설의 주인공인 바보 캐릭터들은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성과 향토성은 물론 세계적인 보편성까지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서는 김유정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유명 작가들이 모여 아시아 문학포럼을 가졌고 지난달 25일에는 김유정문학촌(생가)에서 '김유정 소설과 만나는 삶의 체험'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의 소설 '산골 나그네'의 작품을 재현한 전통 혼례식을 비롯해 민요 부르기 대회, 고무신 날리기 등을 통해 소설 속 1930년대의 삶을 직접 체험했다.

김정한

지난달 17~25일 부산에서는 '제11회 요산문학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요산(樂山) 김정한(1908~1996)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회가 '요산 문학 100년, 21세기 생명과 평화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마련한 기념 사업이다. 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선생의 생가 옆 요산문학관에서 '시민백일장'이 열렸고, 문학 기행 행사도 개최됐다. 24일에는 요산문학관에서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요산은 1908년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 '사하촌'을 통해 등단했다. '모래톱 이야기' 등 농촌 사회의 현실을 치열하게 투시한 대표작가로 손꼽힌다.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 부산을 지키며 고통 받는 민중들의 삶을 다뤄 '낙동강의 파수꾼'이라고도 불렸다.

요산문학관 최연안 관장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요산문학전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며 "자료를 찾다가 장편소설 3편 등 유고가 많이 발견돼 엄청 흥분돼 있다"고 했다. 총 10권 중 소설 부분 5권이 이달 중 발간되고, 시·수필·평론·유고집 등 나머지 5권은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백철

"할아버지는 글을 쓸 때 집중력이 대단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어요.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날이었는데, 할아버지가 하루 종일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서 세로 원고지에 글을 쓰시던 모습…. 저는 어렸을 때 세상의 모든 할아버지는 다 글을 쓰는 줄 알았어요."

평론가이자 국문학자인 백철(1908~1985)의 손녀 백지혜(33·서울대 국문과 강사)씨는 "요즘 갈수록 아버지 외모가 할아버지랑 비슷해지는 걸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그는 "1908년생 문인들이 쓴 글이 2008년에도 이렇게 한 호흡으로 읽혀질 수 있다는 게 놀랍다"며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살았던 격랑의 시대가 압축돼 다가온다"고 했다.

백철은 일제 시대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을 펼치다 해방 이후 신비평 이론을 소개하는 등 근대적 문학 비평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는 지난 2월 백철의 생애와 글쓰기에 관한 연구서 '백철 연구-한없이 지루한 글쓰기, 참을 수 없이 조급한 글쓰기'를 펴냈다.

임화, 최재서, 김기림

한국 근대 문학 비평의 주춧돌을 놓은 임화(1908~1953), 최재서(1908~1964), 김기림(1908~?)도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이들의 비평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리는 등 연구가 활발하다.

'조선의 랭보' 임화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서기장을 지낸 시인이자 비평가였으나 해방 후 월북했다 '미제 간첩'으로 몰려 숙청돼 남과 북의 문학사에서 모두 배제됐던 인물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임화문학예술전집'이 출간되고 학술대회가 열렸다.

전집을 낸 소명출판 박성모 대표는 "임화는 상상력과 은유로 넘치는 부드러운 글들조차 시대상황이란 울타리에 갇혀 제대로 읽혀지지 못했다"며 "전집을 통해 임화의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서는 종래의 인상주의 비평에서 벗어나 주지주의 비평을 시도해 평론계의 지평을 넓혔다. 영문학자로서 셰익스피어 연구에도 기여했으나 일본 국가주의 정신을 수용한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기림은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운동을 주도한 뛰어난 비평가이자 모더니즘 시인이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정치적인 시를 발표했고 6·25 전쟁 때 납북 혹은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입력 : 2008.11.01 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