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진포시비공원을 위한 시시비비(是是非非)
4억 들어간 '시비공원 : 시 원문과 틀린 표기 수두룩-시어 하나하나에 세심한 정성 있어야
진포 시비공원은 '고은 시인'이 이곳 군산 출신인 점과 이곳 금강공원이 금강과 서해바다가 머무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에 담긴 삶의 향기...
문학의 향기를 주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돌에 새겨진 소망, 문학의 향기는 늘 우리 곁에서 피어난다.
우리가 시비(詩碑)나 기념비를 통해 시인과 작가를 기리는 것은 그들이 우리 삶에 불어넣어 준 향기 때문이다. 삶터 가까이에서 그 향기를 긴 시간 같이 나누기 위해, 우리는 큰 돌에 시를 새겨 시비를 세우고, 생가(生家)나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에 표지석을 세워 행인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전주 다가공원과 덕진공원, 혼불문학공원, 부안 해창석정공원, 고창 문학비동산 등이 대표적인 예다. 문학이 머무는 풍경…. 그러나 그 뜻은 단지 돌을 세우고, 작품을 새겨 넣는 것이 아니라 그 치열한 작가정신을 오늘에 새롭게 되살리려는 노력에 있을 것이다. 시 문학사에 뚜렷하게 자취를 남긴 시인들의 시비를 통해 그들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고 그들의 문학적 위치를 정립하는 작업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테마도, 설명도, 출처도 없이
진포시비공원은 2006년 12월부터 2007년 6월까지 7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군산시 내흥동, 채만식문학관과 멀지 않은 금강공원 내 건립됐다. 강과 바다가 맞닿은 금강 하구. 4950㎡정도의 규모에 총사업비 3억5천만 원이 투자되었다. 시비는 1.5~2.5m안팎의 자연석과 화강석으로, 신석정(부안) 이병훈(군산) 고은(군산) 등 전북출신 3명을 포함한 국내 유명시인 14명과 외국 유명시인 6명의 작품이 새겨져 있다. 작품은 국정교과서나 세계시인사전에 수록된 시 작품을 중심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 이 시들이 왜 이곳에 함께 모였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군산이나 전북 출신 시인들의 작품도 아니고, '군산'이나 '금강', '근대문화', '바다', '서해' 등 군산시에서 한번쯤 욕심낼만한 테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유명' 시인의 작품일 뿐이다. 테마가 없으니 응집력이 없다. 시인이나 작품에 대한 단 한 줄의 설명도 없으며, 옮겨온 작품의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 중국 당나라 말기의 시인인 이상은의 작품은 사전지식이 없다면 한국 시인으로 오해할 것이 뻔하다. 잘못된 표기들도 수두룩하다. 굳이 전문연구자나 시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금세 알 수 있을 정도다. 시비는 집필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원전(原典)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대부분 한글표기법이 지금과는 다른 시기에 쓰인 작품이기에 지금의 표기법에 맞춰 고쳐 썼다고 핑계를 대봐도 너무 심하다.
△오만한 오기(誤記)들
시어(詩語)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 같다. 툭 하면 잘못 쓰인 글자들이며, 심지어 자음과 모음이 아닌 글자들도 있다. 시에서 문장부호나 띄어쓰기, 행간 맞추기 등은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다룰 수 없다. 시에 쓰인 단어는 가장 공들여 선택한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은 오랜 시간 사색하고 연구하고 살을 깎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서너 줄의 짧은 시를 위해 마음으로 아주 긴 글을 쓰고, 어떤 시인은 '만권의 책'을 읽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너무 쉽게 다뤄진 시들이 천지다.
고은의 「노래섬」에서 '서해 남바다'는 '서해 난바다'(난바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바다)의 오기(誤記)이며, 끝에서 두 번째 행은 '어슬프게'가 아니라 '어설프게'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봄을 여윈'과 '그 하도 무덥던 날'은 각각 '봄을 여읜'과 '그 하루 무덥던 날'이 잘못 쓰였다. 김소월의 「산유화」에서 '혼자서 피여 있네'는 '혼자서 피어 있네.'로, 4연 1행 '산에는 꽃이 피네'는 '산에는 꽃이 지네'로 바뀌어야 회화적(繪畵的) 균제미(均齊美)로써 완결된 시가 된다.
신석정의 「빙하」에서는 '내 소년을 몰아간다'가 아니라 '내 소년을 몰아가던'이며,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 없기를'에서는 '부끄럼' 다음에 '이'자가 빠졌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는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가 아니라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이며,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은 '원천으로'가 아니라 '원천을'이다. '황금의 꽃갚이'는 '황금의 꽃같이'로 글자가 틀렸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무엇을 찾느냐 어디고 가느냐'에서도 '어디고'가 아니라 '어디로'이다. 이육사 「청포도」의 '두 손을 함뿍 적셔도'에서도 '두 손을'이 아니라 '두 손은'이다. 박두진의 「해」에서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다음에 나오는 시어는 '나에게'의 오자(誤字)다.
△사라진 행과 연, 띄어쓰기, 문장부호의 오류 행과 연의 구분이나 띄어쓰기, 문장부호도 마찬가지다.
문장부호가 잘못 쓰이거나 사라진 작품은 그 수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거론하기에도 벅차다. 마침표의 경우는 특히 심하다. 한 시의 서술 어미에 마침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이상한 형태의 시가 꽤 많다. 김소월, 김수영, 윤동주, 이상화, 한용운 등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김영랑의 시는 작품의 마지막 행인 '찬란한 슬픔의 봄을' 뒤에 꼭 필요한 마침표가 빠졌고, 윤동주의 시는 쉼표가 있어야 할 곳에 마침표가 있다. 박두진의 시는 말줄임표가 들어가야 할 곳에 마침표 6개가 찍혀 있다. 인터넷문화의 씁쓸한 풍경이 시비까지 와 있는 것이다.
「노래섬」에서 '큰바람 때마다 어김없이'와 '그런 노래 섬을 바라보며'는 각각 '큰 바람때마다 어김없이'와 '그런 노래섬을 바라보며'로 띄어 읽어야 하며, '지심 매던 그 들이라'로 쓰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지심 매던 그들이라'로 고쳐야 의미가 통한다. 행과 연의 구분이 잘못된 곳도 많다. 「산유화」의 마지막 행은 누구나 쉽게 잘못된 곳을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고, 「님의 침묵」은 행과 연의 구분이 돼 있지 않아 시의 의미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허술하게 읽히는 번역시들
외국 시인들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지만) 오역(誤譯)이나 직역(直譯), 불충분한 번역으로 왠지 빈약하고 허술하다. 「안개 속에서」(헤르만헤세)의 1연과 2연을 살펴보자.
○진포시비공원: 이상한 일이다. 안개 속을 거닐면/숲도 돌도 모두 쓸쓸하다./아무도 서로 보지 못한다./저마다 혼자이다.//일찍이 생활이 윤택할 적에는/나는 친구들이 많았었다./그러나 안개가 끼어 있는 지금은/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번역자A: 신기하여라, 안개 속을 헤매노라면/풀섶이며 돌덩이며 저마다 홀로 있고/나무는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하네./모든 것 홀로 있을 뿐.//내 인생 아직 밝았을 때/세상은 벗들로 가득했으나/이제 주위에 안개 내리니/보이는 이 아무도 없구나. 위의 예처럼 어느 번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는지에 따라 내용도 느낌도 크게 다르다. 외국어가 한국어로 바뀌면 늘 새로운 옷을 입게 된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기 때문이다. 원작자에 대한 소개도 없으니, 번역자에 대한 소개까지 기대하는 것은, 지금은 무리일 것이다.
잘못된 표기들을 나열하면 끝이 없다. 더 많은 지적은 군산시와 전문연구자들에게 맡긴다.
△한국 시 문학의 꽃자리가 되고자 한다면
대상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 대상은 무(無)와 같다. 낯설고 정체불명인 관념들이다. 아무것도 아닌 돌에 시(詩)를 새기면 시비가 되고, 많은 이들에게 숭고한 삶의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생명'이 된다. 그러나 시를 새겼어도 시가 시처럼 읽히지 않으면, 생채기가 난 덩치 큰 돌덩이일 뿐이다. 우리가 계속 외면한다면 이 시비들은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세심하게 살필 때, 이 시비들은 제각기 그 빛깔과 향기를 내고, 우리에게로 와서 꽃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될 것이다. 군산시가 한국 시 문학의 꽃자리가 되고자 한다면 조금 더 섬세해져야 한다. 지금, 진포시비공원의 시비(詩碑)들은 무척 외롭다.
전북일보,2008.3.27 / 최기우 문화전문기자(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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