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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문학기행 기사

조지훈과 이문열-영양

by 골든모티브 2008. 6. 1.

시(詩)는 산을 타고 울리고, 소설(小說)의 향기는 바람이 된다

 

영양에 들어서면 시와 소설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감동을 받았던 문학들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 이문열의 고향인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의 전경 ⓒ 영양군청 제공


1. 이문열과 두들마을

작가 이문열은 영양군이 배출해낸 최고의 소설가다. 이문열은 8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소설가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塞下曲)’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래 ‘금시조’로 ‘동인문학상(82)’, ‘황제를 위하여’로 ‘대한민국 문학상(83)’,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상문학상(87)’을 수상했다.

그의 이 같은 작품들은 대부분 자신의 고향인 영양이 배경으로 많이 사용됐다. 이문열의 대표적인 소설 중 하나인 ‘젊은날의 초상’은 작가 자신의 고향이 배경에 사용되기도 했다. 영덕군 창수면에서 영양으로 넘어가는 창수령 고개가 바로 그곳이다. 소설 ‘젊은날의 초상’에서 주인공 영훈이 방황을 하다 ‘칼갈이’와 만나는 장소가 바로 이곳. 그는 소설에서 창수령을 이렇게 표현했다.

‘창수령 해발 700미터 아아, 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창수령을 넘는 세 시간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이외에도 그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로 영양이 많이 그려졌다.

◇ 작가 이문열이 문학에 대한 연구와 문학도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광산문학연구소. 이곳에서 이문열의 소설 ´선택´이 만들어 졌다. ⓒ 영양군청 제공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는 두들마을이 있다. 두들 마을은 ‘언덕위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석계고택과 석천서당, 안동장씨유적비,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모여 있다.

이 가운데 광산문학연구소는 이문열이 문학에 대한 연구와 문학도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지난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이문열은 이 두들마을은 소설 ‘선택’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의 작품에서도 두들마을이 그려졌다.

 

석계고택과 석천서당은 1640년 석계 이시영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 두들마을을 개척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며 안동장씨유적비는 한글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장씨를 기리는 유적비로 알려져 있다.

2.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 모습. ⓒ 영양군청 제공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 이곳은 시인 조지훈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다. 그 숨결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지훈문학관’은 청록파 시인이었던 조지훈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문학관에는 조지훈의 육필 원고집은 물론 여권, 넥타이, 모시두루마기, 부채, 가죽장갑 등이 진열돼 있어 그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지훈의 문학은 자연과 함께 한다. 자아와 자연의 동질성에서 그의 시 세계를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시에서 자연이란 좁게는 대상적 자연을 말하지만 넓게는 그가 체험한 삶의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이는 곧 자신의 고향인 아름다운 영양군의 모습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주실마을에는 지훈 문학관을 비롯해 조지훈의 생가, 옥천종택, 월록서당 등을 함께 볼수 있다. 또 시인의 숲, 지훈 시공원, 문필봉 등을 찾으면 시인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3. 역시 영양은 문인의 고향

조지훈, 이문열 등 우리 문학사에 큰 영향을 준 작가 외에도 수많은 문학인들이 영양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다. 일제시대 예술지상주의의 꽃을 피게 만들었던 오일도 시인도 대표적인 영양 출신이다.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노변의 애가’ 등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순수시와 주지시가 유행하던 1930년대 활동한 시인 이병각, 1940년대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 활동을 펼친 시인 이병철 등은 모두 영양 출신의 문학인들이었다.  데일리안 200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