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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소설 작가

[길 위의 이야기]-5명의 소설가

by 골든모티브 2008. 3. 27.

[길 위의 이야기]

기지 넘치는 세상읽기 일급 '꾼' 들의 아침청량제


 

 


 

지난 5년간, 길 위에 섰던 5인의 소설가들

새로 ‘길 위의 이야기’ 연재를 맡게 된 소설가 김종광씨는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위한 따뜻한 글의 거처를 마련해볼까 한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한국일보 2003년 3월4일(화)자 1면은 지면 체제 및 내용의 대대적 혁신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연재물이 시작됨을 알렸다.

 

‘월~금요일 ‘길 위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작가의 기지와 풍자 넘치는 세상 읽기는 한 편의 콩트를 읽는 듯한 상쾌함을 드릴 것입니다.’ 연재소설, 칼럼, 에세이와 같은 기존 글쓰기 형식을 탈피, 600자 남짓한 글에 세계를 담아 매일같이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기획이었고, 사유와 필력을 겸비한 1급 작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첫 주자로 나선 성석제(48)씨는 일상, 책, 인터넷 등에서 찾은 소재를 특유의 간결하고 힘있는 문장으로 쥐락펴락하다가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갈무리, 독자 속을 후련하게 했다. 2003년 3월4일부터 5월말까지 코너를 맡은 성씨는 후배 작가 김영하(40)씨에게 바통을 넘기며 “늘 열 편의 이야기를 ‘예비군’으로 두고 있어야 연재가 어렵지 않다”며 프로다운 조언을 건넸다.

 

장편 <검은꽃> 집필 중 ‘길 위에 선’ 김영하씨는 일제시대 잡지부터 스타벅스까지 폭넓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재치만점의 소재 포착과 예의 날렵한 문장으로 지면을 빛냈다. 김씨는 2003년 10월21일까지 100회를 꼭 채우고 “길을 가다가도 간판을 유심히 보고, 예전에 언뜻 들었던 얘기도 기억해 내려고 애쓰”느라 연재 내내 “마음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없”던 길 위에서 내려왔다.

 

이후 2년 반(2003년 10월22일~2006년 2월28일)은 ‘이순원(50)의 길’이었다. 걷고 있노라면 종종 코끝이 알싸해지는 서정적인 길이었다. 그곳엔 징글맞게 여기던 말썽꾼 아들을 군대에 보내곤 아들의 옷이 든 소포를 끌어안고 펑펑 우는 어머니가 있고, 도로 위 고양이 시체가 더 훼손되기 전에 솔선해 거두는 청년이 있다. 그 길은 또 이씨의 소설 제목처럼 ‘강릉 가는 옛 길’-강릉은 작가의 고향-이어서 성장기의 추억담이 구수하게 서렸었다.

 

2006년 3월부턴 황인숙(50) 시인이 그녀의 고양이들과 길을 누볐다. 시인은 평소 쓰던 컴퓨터 대신 800자 원고지에 볼펜을 미끄럼질치며 길어낸, 때론 나른하고 때론 통통 튀는 일상의 이야기로 그해 연말까지 독자를 매료시켰다. 황씨가 연재를 맡으면서 세로로 길쭉하던 지면이 가로로 긴 지금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작년 벽두부턴 이기호(36)씨가 젊고 힘찬 이야기로 지면을 호령했다. 독자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씨의 걸쭉한 입담에 폭소했고, 가난한 초보 아빠의 감상에 가슴 아렸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열혈 청년의 웅변에 울컥했다. 이씨가 연재 중이던 작년 4월 둘째주부터 ‘길 위의 이야기’는 게재 요일을 화~토로 옮겼다.

 

다섯 전임 작가의 글을 찬찬히 읽는 일은 우리 시대 최고 작가들의 내밀한 ‘문학적 원천’을 탐색하는 흥미로운 작업이기도 하다. 이순원, 황인숙씨의 글은 단행본 <길 위에 쓴 편지>(비앤엠 발행) <일일일락>(마음산책)으로 각각 묶여 있기도 하다.

 

한국일보,2008.2.10

 

 

[길 위의 이야기]

 

자타공인 서민 글쟁이,

600자 해방구에 입성하다

 

여섯번째 '메신저' 김종광, 내일부터

 

 

올해로 등단 10년. 가공할 필력으로 단편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짬뽕과 소주의 힘> <낙서문학사>, 중편소설 <71년생 다인이>, 장편 <야살쟁이록> <율려낙원국> 상재.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입담을 겸비했다는 평.

 

충남 보령에서 광부-지금은 소 키우는 농부-의 아들로 출생. 살아온 37년 중 23년을 고향에서 보냄. 안성, 안산, 서울을 거쳐 현재 수원에 거주. 90학번. 결혼 8년차. 일곱 살 다현이의 아빠.

 

소설가 김종광(37)씨가 ‘길 위에 섰다’. 작년 1월1일부터 13개월 남짓 ‘길 위의 이야기’ 연재를 맡았던 소설가 이기호(36)씨에 이어 김씨가 12일자를 시작으로 매주 화~토요일 독자들을 찾아간다.

 

이기호씨는 “예전부터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좋아했던 종광이형이 후임이라니 더없이 기쁘다”면서 “의뭉스러우면서도 할 말 또박또박 하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만큼 매일 아침 청량제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신설된 이래 성석제 김영하 이순원 황인숙 이기호씨 등 쟁쟁한 작가들이 ‘길 위의 이야기’를 맡아온 만큼 새 필자로서 은근히 어깨가 무겁지 않을까. 김씨는 예의 어눌한 듯한 말투로 “사는 것 자체가 길 위의 이야기죠”라고 입을 뗐다.

 

이어 “소시민 혹은 서민으로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는 일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 이슈의 정곡을 찌르는 글을 써볼까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담아내는 것은 물론,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까지 나가보겠다는 의지다. 김씨는 “요즘 계층은 정규직,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나뉜다는데 내가 바로 (비정규직보다 못하다는) 프리랜서인 만큼 ‘소시민 이야기’엔 적임”이라며 웃었다.

 

날마다 참신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길 위에 선’ 작가들의 최대 고충일 텐데 김씨는 별 걱정 다한다는 듯 자신의 패를 하나씩 꺼내놓는다. 먼저 생활인으로서의 경험.

 

“당장 지하철만 타도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나잖아요. 아이가 유치원생이니까 유아 교육에 관심있는 사람들도 알게 되고…. 굳이 문단 얘기를 안 꺼내도 돌아다니며 만나는 이들의 삶이 모두 이야깃거리죠.” 농촌 이야기.

 

“한 달에 한 번은 고향에 내려가거든요. 부모님과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얘기나 농촌 사람들의 생활은 모두 흥미로운 소재죠. 제 소설의 한 축이기도 하고요.” 잦은 이사 중 발굴한 ‘이야기 광맥’도 많다. “일테면 안산공단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를 통해 그곳 외국인 노동자들의 다문화적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무엇보다 김씨가 제 몸에 쟁여둔 체험이 무수하다. 상반기 중 출간될 김씨의 장편 <첫 경험>엔 건설 일용직, 학원 강사, 대필 작가, 당구장 종업원, 주점 서빙, 정당 사무소 문지기 등 수다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대학생이 주인공이다.

 

“운동권 후일담이나 자의식 과잉이 아닌 방식으로, 열심히 살고 배웠던 대다수의 90년대 20대들의 전형을 그리고자 했다”는 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대학 시절 김씨가 실제 겪은 좌충우돌 경험담이다! 이 녹록지 않은 ‘첫 경험’부터 ‘지금, 여기’의 사연들까지, 김씨의 푸짐한 이야기 보따리가 풀린다.

 

한국일보,2008.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