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과 소설의 향기/현대 문학

문학이 아니고 “말꽃”

by 골든모티브 2008. 5. 16.

문학이 아니고 “말꽃”

 

우리말교육대학원장이며, 전 대구가톨릭대 총장을 지낸 김수업 선생은 토박이말 사랑이  남다릅니다.

특히 “문학”이란 낱말이 서른 해 동안 목에 가시처럼 걸려 괴로워하다가  “말꽃”이란 말을 각해 내고는 참 기뻐합니다. 선생은 학문이 아닌 “문학”에 왜 배울  “학(學)” 자를 붙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선생은 찔레꽃, 살구꽃, 복숭아꽃은 물론 불꽃, 눈꽃, 꽃구름, 꽃수레까지 우리 겨레는 아름답고 종요로운 것을 “꽃”이라 불러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문학”이 아닌 “말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문학”이란 말도 원래 있던 말이 아니고 근대 새로 만들어진 말인데 뜻도 맞지 않는 “문학”은 내버려 두고 뜻이 잘 맞는 “말꽃”에는 왜 시비를 거는지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똑같이 새로 만든 말인 문법⋅삼각형⋅형용사는 내버려 두고, 말본⋅세모꼴⋅그림씨만 이상하다고 트집을 잡아 내쫓고 만 것과 같은 이치라고 얘기하지요. [문화저널21,2007.11.13]

 

김수업의 우리말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말꽃 타령>. 우리말 사랑에 대한 저자의 글들을 모아 엮었다. 1장에서는 우리 이름씨 낱말의 속살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2장에서는 학문을 우리 토박이말로 하는 것이 겨레를 살리는 길임을 주장한다. 3장에서는 나랏말을 갈고 닦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4장에서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고 깨끗한 말을 주고 받는 세상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 지은이는 “문학이 아니라 말꽃이다”라도 강조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문학’이란 낱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려 서른 해를 넘도록 마음이 괴로웠다고 실토하면서 이 ‘문학’을 대신할 좋은 말이 없을까고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생각해낸 것이 “말꽃”이라는 것이다.

 

그는 같은 예술인 ‘문학’, ‘미술’, ‘음악’들에 왜 다른 뒷가지를 붙여 말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글로 하는 예술에 배울 ‘학(學)’자를 붙여 ‘문학(文學)’이라고 하고 그림에는 꾀 ‘술(術)’자를 붙여 ‘미술(美術’)이라고 하고, 소리에는 풍류 ‘악(樂)’자를 붙여 ‘음악(音樂)’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찔레꽃과 패랭이꽃, 살구꽃과 복숭아꽃, 참꽃과 개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불꽃과 눈꽃에다 꽃수레와 꽃구름까지 우리 겨레는 아름답고 값지고 사랑스럽고 종요로운 것을 <꽃>이러

불러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하면서 문학은 학문이 아니라 말로 하는 아름답고 값지고 사랑스럽고 종요로운 예술이니 “말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말뜻말맛] 말꽃과 삶꽃 / 김수업

 '말꽃'은 '문학'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토박이말이지만 예로부터 써 오던 것이 아니라 요즘 나타난 말이다. '문학'은 본디 '글의 학문'이라는 한자말이지만, 우리는 '글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문학'을 쓰지 않는다. 놀이(희곡), 노래(시), 이야기(소설) 같은 것을 싸잡아 '문학'이라 부른다. 놀이·노래·이야기 같은 것은 '말의 예술'인데, '글의 학문'인 문학이라 불러도 좋은가? 말의 예술은 입말의 예술, 글말의 예술, 전자말의 예술을 모두 싸잡아야 하는데, '글말만'을 뜻하는 문학이라 해도 좋은가? 이런 두 가지 물음에 하나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 이들 두 가지 물음을 거뜬히 풀어줄 마땅한 말을 찾아야 했고, 드디어 '말꽃'이 나타났다. '말로써 피워낸 꽃'이니 '말의 예술'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말꽃은 새말이지만 이미 이야기꽃, 웃음꽃 같이 정다운 말들이 형제처럼 곁에 있어서 외롭지 않다.

'삶꽃'은 요즘 새로 '예술'을 뜻하는 토박이말로 나타났다. '예술' 역시 한자말인데 두 한자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우리가 뜻으로 담아서 주고받는 바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을 만들고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그게 무슨 뜻을 지닌 낱말인지 알지 못하고 쓴다. 예술이라는 낱말에 담아서 주고받는 뜻은 '온갖 사람이 갖가지 삶에서 겪고 맛보고 느끼는 바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노릇'이다. 이런 뜻을 간추리면 '삶으로 피워낸 꽃'이라 할 수 있으므로 '삶꽃'이면 아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한겨례,2007.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