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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10대시인 대표 詩

오감도, 이상(08)

by 골든모티브 2008. 1. 9.

 [한국 현대시 10대 시인] <8>이상

 

'오감도' 영원한 미완의 시… 무한히 열린 해석의 가능성


오감도 1호

 

 

십삼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적당하오.)

제일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이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삼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사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오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육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칠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팔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구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십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십일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십이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십삼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십삼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러케뿐이모혓소.(다른사정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중에일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좃소.
그중에이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좃소.
그중에이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좃소.
그중에일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좃소.

(길은뚫닌골목이라도적당하오.)
십삼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야도좃소.

 

출처: <정본 이상 문학전집 1>, 소명출판, 2005

 

 

◆약력

 

▦1910년 서울 출생. 본명 김해경(金海卿) ▦보성고보, 경성공고 졸업 ▦1931년 <조선과 건축>에 ‘이상한 가역반응’ 등 시 2편 발표하며 등단 ▦1932년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이상(李箱)이란 이름으로 첫 발표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 연재하다가 독자 항의로 중단 ▦1936년 <조광(朝光)>에 소설 <날개> 발표. 그해 <동해(童骸)> <봉별기(逢別記)> 등 발표 ▦1937년 도쿄대 부속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사망 ▦1957년 <이상 전집> 3권 간행

 

◆해설

 

이상은 1934년 7월 24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烏瞰圖)> 연작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무슨 개수작이냐’는 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보름 만에 중단해야 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상의 시는 어릴 적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해서 누구나 이 얘기를 한 두 어 번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일반 독자의 반응과는 다르게 한국의 지식인 독자들은 이상의 시를 소중히 보듬고 아끼고 세상에 퍼뜨리는 일을 기꺼이 해야 할 일로 삼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당시 편집국장이던 이태준이 사표를 품에 넣고 연재를 강행했던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일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아마도 이상의 시 안에, 닳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 이상이 현대의 문턱에 살았으면서도 오늘날의 사람들보다도 더 현대적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현대적 삶의 ‘의미’를 가장 먼저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끼고 현대를 그리는 데 극단까지 가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겨우 현대의 문턱에 살았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의 천재 건축가였지만 오늘날의 문명의 모습을 미리 알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혈청의 원가상환을 강청’하는 과거가 그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현대를 추구하되 현대의 내용을 담지 못하고 현대의 축약된 형식만을 제시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해독불가능한 난해성의 상태로 떨어지곤 하였다.

그러나 바로 같은 이유로, 그의 시는 독자들이 그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할 빈 용기와도 같은 것으로 제시되었다. 어느 시보다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인이 거기에 있었고, 그 뜻을 전혀 모르면서도 누구나 한 두 행은 외울 수 있는 시가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오감도 1’ 역시 이질적인 해석들로 들끓는다. 특히 첫 행, ‘13인의 아해가 질주하오.’에서의 ‘13인’에 대해 ‘예수와 12제자’라는 해석에서부터 당시 조선의 13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추정에 이르기까지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속출한다. 요즈음의 독자라면 숫자에 관계없이 폭주족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또는 모종의 이유로 도주하는 도망자들을. 이 시의 힘은 바로 이렇게 해석의 행진을 멈추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검게 덧칠된 듯 알 수 없는 현대의 삶 속으로 불안과 호기심에 이끌려 참여케 된다. 그리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는 독자의 ‘구성적 참여’를 통해서 완성된다.

현대의 이상적 방향이 주체의 권리와 능력의 무한대로의 확장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상시의 이런 형식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시든 완미한 형태를 꿈꾼다. 그러나 영원한 미완이 완미함의 필수조건이 될 줄은 이상시가 최초로 보여준 것이다.


정과리(문학평론가ㆍ연세대 교수)

입력시간 : 2007/10/23 18:40:16
수정시간 : 2008/01/09 20:16:57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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