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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10대시인 대표 詩

또 다른 고향, 윤동주(09)

by 골든모티브 2008. 1. 9.


[한국 현대시 10대 시인] <9>윤동주

'또 다른 고향' 어두운 현실 넘어 이상세계 향한 의지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두운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출처 : 홍장학 엮음,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약력

 

▦1917년 만주 북간도 출생 ▦15세 때부터 시작. 1936~37년 만주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지에 동시 발표 ▦1938년 연희전문학교 입학 후 시 ‘자화상’ ‘새로운 길’, 산문 ‘달을 쏘다’ 등 발표 ▦1942년 일본 유학.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다니던 43년 항일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 후쿠오카 형무소 복역 중 45년 2월 사망 ▦1948년 2월 유작 31편 묶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 발간. 55년 62편 추가해 중판, 76년 23편 추가해 3판본 출간. 99년 육필 원고 영인본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출간.

 

◆해설

 

윤동주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남다른 개성과 시세계로 숨쉬고 있는 시인이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시편들은 한 사람의 시와 삶이 분리될 수 없음을 유력하게 증언하면서, 우리에게 시가 가질 수 있는 정직한 자기 고백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그가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사상불온,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싸늘하게 옥사한 후 출간된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는,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애송된 시집일 뿐만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일제 말기의 어두움을 밝혀준 한 줄기 빛으로 기억되고 있는 작품집이다.

당대 최고의 시인 정지용이 시집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기억했던 그 오롯한 고독이 윤동주를 불멸의 시인으로 남게 했던 것이다. 이 시집은 이러한 그의 극적 생애와 죽음을 결속하면서 항구적인 매혹의 텍스트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또 다른 고향’은 그가 연희전문 졸업 직전에 쓴 시편으로서, 현실적 어둠의 상황을 초극하면서 이상 세계를 추구하려는 시인의 의지를 담고 있는 명편이다. 화자인 나가 백골과 함께 고향에 돌아와 누워 있는 방은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채 우주로만 통하는 실존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혼을 통해 새로운 이상 세계를 갈망한다.

어두운 방안에서 서로 갈등하기도 하고 서로 결속하기도 하는 나와 백골과 아름다운 혼은 각기 분리된 것 같지만, 시상의 흐름을 따라 하나의 자아로 지양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통합된 자아의 힘으로 시인은 우리에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서시) 괴로워한 순결하고도 아름다운 시혼을 보여주었다.

물론 ‘자화상’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시가 오랜 연륜을 축적한 원숙미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시는 청년기의 아름다운 이상과 그것의 좌절 그리고 그에 대한 부끄럼의 정서를 진정성과 심미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그의 부끄럼을 통한 자기 성찰의 태도는 우리에게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실존적 차원의 것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윤동주를 통해 역사와 자신에 대한 부끄럼을 끊임없이 복습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불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아름다운 시편들을 남기고 그는 세월을 가로질러 또 다른 고향에 서둘러 갔다. 그리고 그의 시편들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보편적 감동으로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유성호(문학평론가ㆍ한양대 교수)

입력시간 : 2007/10/24 19:18:45
수정시간 : 2008/01/09 20:22:49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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