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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10대시인 대표 詩

시인·평론가 100인이 뽑은 ‘10명의 시인’

by 골든모티브 2008. 2. 8.

시인·평론가 100인이 뽑은 ‘10명의 시인’

 

 한국 현대시 10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은 누구일까?

시인.평론가 100명이 뽑은 10명의 시인 선정 경위

 

  이번 기획은 한국 현대시 100년을 기념하여 시인 53명, 평론가 47명에게 우리 시사에서 빼어난 10명의 시인을 묻고 그 성과를 종합하여 한국 시사의 좌표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물론 10인의 시인을 선정하는 것이 파벌적이고 시류적인 평가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우리 시와 시인에 대한 관심을 증폭하여 시를 사랑하는 대중독자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서려는 노력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한국 현대시 100년 동안 시인들과 평론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 누구인지 드러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예측되었던, 그러니까 주목받을만한 시인이 주목받은 이번 설문의 결과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별이 더 빛나는가, 다시 말해서 어느 시인이 더 주목받았고 덜 주목받았는가를 생각해보면,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만일 다음 세대에 동일한 기획을 한다면, 이 변화의 폭은 더욱 커질 것이다. 문학사는 완결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문학사는 현재의 성과에 비추어 끊임없이 재기술되어야 한다. 이번 기획의 결과는 그 변화의 단초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 53명의 시인과 47명의 평론가 두 그룹의 추천을 합산한 결과 *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은 김소월(87표)로 밝혀졌다. 그리고 소월과는 불과 1표 차로 서정주(86표)가 그 뒤를 이었지만, 서정주는 시인들의 추천에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그 다음으로는 정지용(80표), 김수영(77표), 백석(63표), 한용운(56표), 김춘수(49표), 이상(48표), 박목월(43표), 윤동주(33표) 등의 순서였다.

 신경림과 윤동주는 시인과 평론가 추천에서 각각 10위권 내에 들었지만, 양쪽의 합산 결과 신경림 시인이 아깝게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결국 생존시인으로는 김춘수 시인이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신경림(26표), 황동규(21표), 김지하(21표), 황지우(21표) 등은 ‘10명의 시인’으로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김춘수 시인 다음으로 현재 활동중인 생존 시인 중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 결과 1표 이상 얻은 시인은 총 73명이었고, 그중 여성시인은 김남조(5표) 시인을 포함 7명에 불과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참고로 설문에 응한 시인들과 평론가들의 설문응답 결과를 시인 쪽과 평론가 쪽으로 각각 나누어 보면, 먼저 시인들은 서정주(46표), 김소월(43표), 김수영(42표), 정지용(41표), 백석(34표), 김춘수(28표), 한용운(27표), 박목월(25표), 이상(24표), 신경림(15표)을 ‘10명의 시인’으로 추천하였다.

반면에 평론가들은 김소월(44표), 서정주(40표), 정지용(39표), 김수영(35표), 한용운(29표), 백석(29표), 이상(24표), 김춘수(20표), 윤동주(19표), 박목월(18표) 순으로 꼽아 시인들의 추천과는 조금 다른 견해를 보였다.

 

  *시인 53명의 설문응답*


  설문에 응한 시인들의 견해를 몇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첫째, 김소월(2위)과 서정주(1위)는 시사의 윗자리에 올랐으나 이전에 그들과 수위를 다투던 한용운은 비교적 낮은 순위(7위)에 자리를 잡았다. 소월은 이전의 문학언어를 정교하게 다듬었다는 점에서, 미당은 이를 이어받아 민족언어를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우리 초기시사에서 가장 높은 정신성을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만해는 비교적 뒷자리로 밀렸다. 만해의 주요한 시적 방법론이 타고르의 것이었다는 점, 불교적인 사유의 깊이가 수사적 차원에서는 비교적 단순한 역설의 층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알려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유치환 역시 권외로 밀렸는데(공동 15위), 이 역시 시적 성과와 시인의 의도를 같은 자리에 놓고 보던 기존의 독법이 극복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둘째백석이 떠오르고 윤동주와 이상화가 가라앉았다. 백석(5위)은 1987년 전까지는 문학 외적인 사항(반공 이데올로기 속에 단지 재북작가라는 이유 하나로 작품과는 상관없이 그는 철저히 묻혀 있었다) 때문에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한 시인이다. 그러나 그가 공개된 이후, 서정시의 맥락에 있는 많은 젊은 시인들(이들은 백석의 언어와 순정함에 매료되었다)과 중견 시인들(이들 중 많은 이들은 처음부터 백석을 사숙했다)이 백석의 후계임을 자처했다. 그러므로 시사의 바른 자리를 찾은 백석의 예는 좋은 시인을 문학 외적인 힘으로는 결코 억압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이상화(공동 25위)는 몇몇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나 시집 한 권 분량을 채우지 못한 소략한 성과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윤동주(11위)는 총계에서는 10위권에 들었으나 시인들에겐 그다지 고평을 받지 못했다. 기술적 소박함이 시적 순수함을 가리는 흠결로 작용한 듯싶다.


 셋째청록파 시인 셋 중 박목월이 주목을 받고 조지훈과 박두진이 소외되었다. 세 시인을 청록파로 묶은 것은 김동리의 시각이다. 김동리는 이 세 시인의 시사적 의미가 <자연의 발견>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자연은 사실, 동시대의 서정시인에게는 모두 공통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청록집』이라는 공동 시집이 셋을 하나로 묶는 유력한 근거가 되어 왔는데, 앞으로의 평가에서는 이 공통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 같다. 박목월(8위)은 이후의 많은 시집들을 통해서, 초기시의 성취를 뛰어넘은 빼어난 시편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목월의 시가 가진 소시민적 서정은 산업화 이후에 휴머니즘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물이다. 역사쪽으로 나아간 지훈(공동 25위)의 작업이나, 종교적 관념으로 나아간 박두진(공동 33위)의 작업에 대해 시인들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넷째정지용(4위)과 김수영(3위)의 작업이 두루 평가를 받았으나, 평가하는 시인들의 연령이 똑같지는 않았다. 둘 다 읽기에 쉽지 않은 시를 썼으나, 그들의 시가 가진 어려움은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지용은 주로 중견 시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정지용은 우리 시의 미세한 결을 극대화시킨 시인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지용의 작업은 모더니즘적 특성을 우리 시의 전통성과 결합시킨 탁월한 성취이다. 반면 김수영은 비교적 젊은 시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김수영의 시는 지용의 시보다 거칠고 강렬하다. 그는 격렬한 산문적 호흡으로 개인의 내면을 관통하는 역사성에 주목하였다. 그의 시는 형상화 방식에서 모더니즘적 독법을, 형상의 세부에서 리얼리즘적 독법을 동시에 허용한다. 젊은 시인들은 정지용보다는 김수영에게서 동시대의 감각을 읽은 것 같다. 이번 결과는 김수영의 작업이 비교적 젊은 시인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후의 평가에서는 김수영의 중요성이 지금보다 더 강조될 가능성이 있다. 김영랑(공동 21위)은 정지용의 섬세함을 가졌으나 깊이에 못 미쳤고, 이형기(공동 21위)는 김수영의 비판의식을 가졌으나 넓이에서 못 미쳤다.


  다섯째이상과 김춘수의 작업이 주목을 받았다. 이상(9위)은 현대성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이상이라는 기표는 우리 시에서 시와 비시非詩의 경계를 보여준다. 자아에 대한 극단적인 분열은 시적 정념의 파열을, 언어에 대한 극단적인 왜곡은 시적 언어의 탐구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상의 문제의식을 넘어선 시인을 발견하기 어렵다. 설문에 참여한 시인들은 김춘수를 이상의 거의 유일한 후계자로 생각한 듯하다. 김춘수(6위)의 무의미시는 시에 함유된 대사회적 성격을 탈색한 대신, 시가 가진 언어적 자유를 극한까지 추구했다. 우리는 김수영을 떠올린 후에는 그와 대극의 자리에서 김춘수를 떠올리는데, 이런 맞짝은 김춘수의 시적 전략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순위에는 들지 못했으나 고은, 기형도, 김지하, 황동규, 정현종, 이성복, 황지우 등의 시가 주목을 받았다. 시인들의 평가에서 순위 내에 자리한 시인은 신경림(10위)이 유일한데(신경림은 이전과 이후 민족문학 계열의 중요한 교차점이다), 종합 집계에서는 순위 밖에 자리를 잡았다.

현역 시인들의 시 작업은 (기형도를 제외하면) 완결된 것이 아니므로, 문학사적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행형의 시인들에 대한 이런 평가는 이후에 적힐 시사에서 점차로 이들이 부각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평론가 47명의 설문응답*


  평론가들의 견해를 경청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초 예상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시인들보다   작품을 평하는 일이 업인 평론가들이 아무래도 보다 명쾌하게 답변해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문지를 보내고 전화상으로 접촉했던 평론가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대답을 회피했다. 완곡하게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하거나 ‘대중가요 인기차트 만드는 것’ 같아 참가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평론가들이 있는가 하면, 별 귀찮은 것을 다 묻는다는 듯 “안 해요” “이번엔 빠지겠다” “난 모르겠어요” 하며 전화를 끊어 무안했던 경우도 간혹 있었다. 물론 자신의 견해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붙이고 열 명 외의 시인들까지도 덧붙이는 자상한 원로분도 있었고, 전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임에도 자신의 견해를 성심성의껏 진솔하게 밝혀주신 고마운 분들도 있었다.(시인과 평론가 50명씩으로 당초 기획된 설문조사는 결국 시인 53명, 평론가 47명으로 조정되었다.)


 평론가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시인은 김소월이었다. 미당과 소월은 시인들의 응답과는 1, 2위가 서로 바뀌는 결과로 나타났다. 미당의 생애에 대한 논란이 시인들보다는 평론가들에게 더욱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두 진영의 1위가 엇갈렸음에도 평론가 쪽의 표 차가 더 많이 남으로써 전체 합계에서도 김소월이 1위 서정주가 2위가 되었다.
  시인들과 다른 결과가 나온 또 하나의 시인은 김수영이다. 시인들은 김수영을 3위, 정지용을 4위로 선택했으나, 평론가들의 집계에서는 두 시인의 순위가 서로 바뀌었다. 전체적인 작품성을 놓고 볼 때 수준이 들쭉날쭉하여 지지가 어렵다고 밝힌 경우가 그 대답의 하나가 될지 모르겠다. 반면에 만해와 이상은 시인들에 비해 많은 표를 받은 경우이다. 윤동주는 작품이 많지 않고 수준도 고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시인들보다는 많은 표를 받아 ‘10명의 시인’ 안에 들어갔다.


일반 대중들에게 가장 낯선 이름은 아마 백석일 것이다. 백석은 양쪽 그룹 모두에게 고른 지지를 받았는데, 앞으로 그의 시를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목월을 비롯한 청록파에게 예상보다 적은 표가 간 것도 흥미로웠다. 목월은 젊은날의 청록파라는 이미지보다는 만년까지 꾸준히 시 세계를 발전시킨 점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열 사람 안에는 들지 못했으나 김지하는 시인들보다 평론가들이 월등히 많은 지지를 보낸 경우이다. 김지하는 아직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어야 할 것이다.


  생존해 있는 시인 중에는 역시 김춘수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그밖에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는 시인들 중에서는 황지우가 있다. 황지우의 경우도 김지하처럼 시인들보다 평론가들의 지지가 많았다. 전체 합계에서 순위가 높은 신경림의 경우는 평론가들의 표가 적은 경우였다.


전체 합계를 놓고 볼 때 순위의 높낮이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큰 이변 없이 상식적으로 꼽을만한 시인들이 선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재 활동중인 시인들과 문학적인 평가가 끝난 시인들을 함께 비교하는 것에 약간의 무리가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작고한 시인과 생존해 있는 시인을 따로 조사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시인과 평론가 100인에 의한 이번 설문 조사결과를 접하게 될 일반 독자들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았던 「서시」의 시인 윤동주보다 그들에게 조금은 생소한(혹은 처음 들어보았을 수도 있는) 시인 백석에게 더 많은 표가 갔다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점이라면 백년 가까운 우리 현대시사를 대표하는 ‘10명의 시인’ 중에 여성시인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열 사람 안이 아니라 한 표 이상의 표를 받은 여성시인을 찾기가 어려웠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여성시인은 김남조로 5표이다.) 여성시인들이 문학적인 평가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훗날 다시 이런 설문이 있을 때 여러 명의 여성시인이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윤호 시인. 1964년 정선 출생.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권혁웅 시인.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시)으로 등단.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현대시 동인상> 수상.

 <출처: 시인세계 2002년 가을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