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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추억의 여행/중국과 일본 여행

왕인박사묘 백제왕신사 코무덤

by 골든모티브 2010. 1. 29.

왕인박사와 백제왕 신사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카타시(枚方市)

학성 왕인박사 일본문화의 효시가 되다

학성 왕인 박사는 백제 17대 아신왕14년(서기 405년 무렵, 32세)에  일본 오우진텐노(応神天皇)의 초청으로

 영암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태사의 스승이 되어 학문을 전수하였으며

논어(10권)와 천자문(1권)을 전수해 일본에 아스카 문화를 꽃피게 하여 일본의 국사로 대접받고 있다

불행하게도 왕인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 역사책에는 없고(한치윤의 해동역사에 기록이 보임)

일본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자세하게 전해짐

영암에서는 왕인 박사를 기리기 위해서 영암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왕인묘는 1938년 오사카시  사적으로 지정

 

 

1,600 여년전 일본에 문자를 전수시켜줌

왕인무덤 입구 백제문

 

 왕인박사 묘지(王仁墓所) 이코마산 기슭 깨끗한 주택가에 있다. 묘역주변에 무궁화 동산이 자리함

매년 왕인박사 묘전제가 열림

 

  백제사터

 

 백제왕 신사입구 도리이(鳥居)-불경한 곳과 신성한곳(신사)을 구분짓는 경계이다

 

 

 백제왕의 후손을 모신 백제왕신사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 구다라오우진자)

 

   귀무덤(이총,미미즈카, 코무덤(鼻塚)>

“이 무덤은 16세기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반도에

침공한 당시(임진왜란과 정유재란 1592~1598)와 관련된 유적”이라며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목 대신 조선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

일본에 갖고 돌아왔다”는 유래를 전했다

 교토 코무덤 안내

“사람의 귀는 둘이고 코는 하나다. 조선 사람들을 죽인 후 코를 베어 함께 소금에 절여 보내라.

병사 일인당 코 한 되씩 수량이 찬 후에야 생포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말로 인류역사상 유래가 없는

코베기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이 전과로 내세운 기록에는 “1598년 조선사람의 코 18만5738개,

명나라 사람의 코 2만9014개, 합계 21만 4752개의 코가 매장돼있다”고 나와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봉분 위의 돌덩이가 유난히 커보인다.

이총은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하는 토요쿠니(豊國) 신사 바로 정면에 위치해 있다

 2010.1.27. 오사카. 왕인박사유적지, 백제신사, 이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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