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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월북문인 친일작가

월북문인들의 성향과 행적

by 골든모티브 2013. 8. 1.

[정전 60년 1953~2013 - 월북·납북 문인이 남긴 유산] ⑤ 북한에서 이어진 문학 활동

 

월북문인들 성향 따라 행적도 각각 이기영·한설야는 사실주의 개척

 

문학은 기본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자식이다. 정전 60년을 맞은 오늘 월·납북문인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문학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밑에 깔고 있다고 볼 때 북으로 건너간 문인들의 성취는 한 묶음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일부는 과연 문학이란 이름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붙이게 된다.

 통일이란 큰 프리즘 안에서 한국문학으로 분류되지만 각기 성향이 달랐던 월북 문인들의 성취와 행적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밖에 없다. 예로 북한의 이념에 동조해 계급문학을 고수한 이기영(1895~1984)과 한설야(1900~76)가 있는가 하면, 남한에서 좌익활동을 하다 월북한 인민문학파인 임화(1908∼53)와 김남천(1911∼53)이 있고, 순수문학을 추구하다 좌쪽으로 돌아선 이태준(1904∼?)과 박태원(1909~86)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현실과 체제에 밀린 문학=분단 이후 북한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많은 월북작가는 북한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실제로 임화·김남천 등 온건 좌파는 초창기 북한문학이 계급문학보다 민주주의 민족문학이 되길 바랐지만 결국 부르주아 미학파로 몰려 숙청됐다. 이른바 이념에 희생된 예술의 위상을 보여준다.

 1925년 8월 결성된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시절 및 해방공간 최고의 좌파 문인으로 꼽히는 임화는 문학론 『조선문학』과 시집 『너 어느 곳에 있느냐』를 통해 북한문단을 인민문학으로 정초하려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남로당계 숙청과정에서 미제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로 ‘꿀’ 등 문제작을 쓴 김남천과 ‘농토’ ‘고향길’ 등의 작품으로 문명(文名)을 이어간 이태준의 비극적 삶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좌절과 더불어 북한문학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에 입각한 리얼리즘 문학을 벗어나 개인 숭배의 극단적 형태인 수령문학과 주체사실주의문학으로 극좌화하는 길을 걷게 됐다. 이른바 이념에 종사하는 문학으로 전락했다. 때문에 북한에서는 아직도 김남천·이태준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금기일 정도다.

 이러한 좌절에도 월북 문인은 북한에서 사실주의 문학의 기초를 마련하고 문단 원로로 활동하는 성과를 남겼다. 한설야와 이기영이 대표적이다. 이기영과 한설야는 일제강점기에도 최고의 농민소설인 ‘고향’과 노동소설인 ‘황혼’으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이처럼 계급문학을 고수한 이기영과 한설야는 사회주의 문학의 정초차로 자리잡으며 주체사상 확립(1967) 전 북한 문학의 대표로 꼽혔다.

 한설야는 소위 서울중심주의를 폐기하고 평양중심주의를 내세워 북한문단의 정통성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 게다가 김일성 찬양 문학을 써서 문예총 위원장 등 문단권력으로 부상했다. 이기영은 ‘땅’과 ‘두만강’ 등 북한문학의 대표작을 쓰고 문예총·조소문화협회·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등에서 고위직을 맡았다.

 박태원은 월북 문인 중 가장 주목할 작가다. 일제강점기 카프에 맞서 구인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모더니스트 박태원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월북해 종군작가로도 활동했다. 이후 평양문학대 교수로 재직하다 농장으로 하방(下放)됐다. 그는 60년대 초 복권돼 역사소설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를 집필하다 실명에 이르렀다. 시각장애에도 박태원은 북한 역사소설의 최고로 꼽히는 『갑오농민전쟁』 3부작(1986)을 구술 집필했다. 이 소설에서 농민전쟁의 전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구한말 세태와 서울말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이들과 달리 개인숭배 문학으로 입지를 굳힌 경우도 있다. 다수의 월북 작가가 숙청당하는 바람에 반사 이익을 얻은 것이다. 카프(KAPF) 출신 시인 박세영(1902~89)과 이찬(1910~74)은 수령 찬가 덕에 과잉평가를 받았다.

 예로 ‘산제비’의 시인 박세영은 북한 국가 ‘애국가’를 작사한 공을, 이찬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작사한 덕을 인정받았다. 이찬은 해방 전부터 ‘국경의 밤’과 ‘눈 내리는 보성의 밤’에서 빨치산 투쟁을 암묵적으로 그리더니 해방 후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더욱 굳게 뭉치리 장군님 두리에’ ‘우리의 수도를 아름답게 하는 것’ 등에서 수령 송가를 썼다. 일종의 구호문학에 그친 셈이다.

 ◆이후 세대의 문학=현재 북한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에는 『임꺽정』의 저자인 벽초(碧初) 홍명희(1888~1968)의 손자 홍석중(72)과 전쟁 때 인민군으로 월북한 시인 오영재(1935~2011), 그리고 안동 출신으로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월북한 남대현(66) 등이 눈길을 끈다.

 홍석중은 월북 문인은 아니지만 주목할 만하다. 김일성 3부자를 찬양하는 수령문학과 주체사실주의 문학이 지배하는 북한에서도 홍석중의 『높새바람』과 『황진이』(2002)는 현실 정치권력에 별반 주눅들지 않는 민족문학의 단단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인민군으로 월북한 오영재 시인은 시집 『철의 서사시』와 『인민의 아들』로 김일성상 계관시인과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우리에게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늙지 마시라’(1990)는 통일의 당위와 정서를 거창하게 내세우지 않고도 소박한 사모곡을 통해 모자애야말로 남북 통합의 정서적 근거임을 웅변하고 있다.

 남대현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지만, 조총련계인 아버지를 찾아 도쿄로 밀항했다. 조총련계 조선대 총장인 아버지 남시우의 권유로 북송선을 타고 월북한 뒤 김일성대를 졸업했다. 그가 명성을 얻은 것은 황해제철소 하방의 경험을 담은 소설 『청춘 송가』(1987)다. 작품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개척과 사랑을 성취하는 북한 젊은이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그리고 있다. 국가에 대한 봉사와 사랑의 성공을 통해 바람직한 청춘상을 제시하되, 그 과정에서 관료주의 비판의식이 엿보이는 점도 눈에 띈다. 그밖에 『광주의 새벽』와 『통일 연가』에서는 남한 민주화운동이나 비전향 장기수의 북한 정착기를 다뤘고, 재일조선인 문제를 다룬 『조국찬가』와 『태양 찬가』등도 썼다.

 지금까지 월북작가와 그 후배들이 어떻게 북한문학을 꾸려왔는지 간략하게 살펴봤다. 통일 문학사 내지 통일의 기초작업은 단기적인 정세 여하에 좌우될 성질이 아니며 오히려 이런 정치적 긴장 국면에서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낼 문화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나아가 정치적 긴장을 넘어서는 곳에 문학을 통한 통일론의 전망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도 할 수 있다. 시작은 이제부터다.

김성수(문학평론가, 성균관대 교수) 2013.7.25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