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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월북문인 친일작가

월북문인 박태원과 이태준

by 골든모티브 2013. 7. 22.

[정전 60년 1953~2013 - 월북·납북 문인이 남긴 유산]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소설

박태원과 이태준은 월북문인이다. 남한 사회에서 이 말은 하나의 낙인이다. 이념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역사의 산물이지만 그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익히 잘 알려진 것처럼 이들은 ‘구인회’ 멤버다. 이들 이외에도 김기림·정지용·이상·김유정 등이 참여한 구인회는 당시의 프로문학이나 민족주의 문학의 기치를 내건 기성문학에 반발하면서 문학의 자율성과 순수성을 옹호한 단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월북은 ‘카프(KAPF)’ 맹원의 그것과는 의미를 달리한다. 하지만 남한 사회에서는 단지 월북이라는 이유만이 문제가 됐을 뿐 이들의 월북 이전의 활동과 문학 세계는 크게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해금(1988) 이후 상황은 많이 좋아졌지만 20여 년이 더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이들은 분명한 족적을 남긴 문인이다.

남한의 대표적인 문학사인 『한국문학사』(김윤식·김현)에도 이들에 대한 평가는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이 1973년 출간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에 대한 기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에도 이들에 대한 평가는 그만큼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두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태원은 이상과 더불어 식민지 시대 최고의 모더니즘 작가이다. 1920년대를 전후해 서구의 다양한 문예사조가 유입됐음에도 아직 모더니즘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 그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과 『천변풍경』(1936)이라는 현대적인 소설을 선보였다. 두 소설은 모두 독특한 서사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법은 기존의 우리 소설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이다.

 먼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0년대 우리 문학에서는 낯선 소설의 자기반영성을 드러낸다. 소설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고, 그 소설이 어떻게 창작되는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제시한다. 소설 속의 구보는 박태원 자신이 되고, 그의 하루의 일과를 그대로 노트에 기록함으로써 소설의 창작 과정 속에 은폐된 미적 세계를 들추어낸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소설쓰기 방식을 ‘고현학(考現學)’이라고 명명했다. 현대인의 풍속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그것을 기록하는 학문이 고현학이라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보여준 자기반영성은 최인훈과 주인석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계보를 형성한다.

 박태원의 또 다른 걸작인 『천변풍경』은 서울 청계천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울 서민층의 부침을 파노라마식 기법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이렇게 형상화된 소설은 인물·사건·주제의 연속성이나 일관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천변풍경』이 인물이나 사건의 총체성을 강조하는 리얼리즘 소설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점 때문에 임화는 이 소설을 세태소설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세태소설이 빠지기 쉬운 자연주의적인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의 어둡고 추악한 면보다 인간에 대한 따듯한 애정과 믿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소설은 식민지 시대 서울 서민층의 애환과 부침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모더니즘적인 글쓰기는 이후 퇴폐예술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고 그는 한동안 동양고전의 번역에 빠져 있다가 월북한다. 월북 후 그는 『갑오농민전쟁』(1977)이라는 대작을 쓰게 된다.

 이태준에 대한 남한에서의 평가는 ‘운문에는 정지용, 산문에는 이태준’이라는 말과 ‘1925년 이후의, 비카프 문학이 낳은 가장 큰 작가’라는 임화의 말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김동인·현진건 등에 의해 정립되어온 단편소설의 전통을 훌륭하게 계승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제2단편집 『가마귀』(1937)의 서문에서 그는 ‘저널리즘과의 타협이 없이, 비교적 순수한 나대로 쓴 것이 단편들’이라고 하면서 이 양식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한다.

 이러한 애정은 수필집 『무서록』(1941)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무서록』에서는 단편양식을 예술 이해의 한 통로로 인식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불우선생’(1932) ‘달밤’(1933) ‘가마귀’(1936) ‘복덕방’(1937) ‘농군’(1939) ‘토끼 이야기’(1941) 등은 일제시대의 새로운 삶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오랜 삶의 근거를 박탈당한 불행하고 퇴락한 인물들을 탁월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그러나 이것 이외에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의 고고한 정신세계다.

이 고고함은 『무서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고전에 대한 그의 취향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고전주의가 발산하는 고고한 정신이 그의 소설의 정조를 이루면서 불우하고 어두운 세계 속에 처한 인물들이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감정적인 중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의 문체나 문장에 깃든 이런 고전적인 품격과 정신은 20세기 이 땅의 글쓰기의 교본으로 불리는 『문장강화』(1948)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태준이 우리 문학사에 남긴 족적은 비단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문장’(1939)을 주재하면서 본격적인 추천제를 통해 소설에 임옥인·지하련·임서하 등과 시에 조지훈·박두진·박목월·박남수, 희곡에 송영 등을 배출했다. 이들은 모두 해방 이후 남북문단의 핵심적인 문인이 됐다.

 남한 문단을 이끌던 그는 월북 이후 이렇다 할만한 활동을 하지 못한 채 강원도 장동탄광 노동자 지구 등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2년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상허학회’가 창립돼 그를 기리는 여러 가지 사업을 지금까지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침 ‘구보학회’도 2005년에 창립돼 식민지와 분단 시대를 살다간 두 불우한 문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복(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중앙일보 2013.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