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장편 '시인' 이번엔 독일 진출
해외 진출 16년 만에 10개국째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을 모델로 쓴 이문열의 장편 《시인(詩人)》이 해외로 수출을 시작한 지 16년 만인 올해 말, 독일의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10번째 번역서가 출간된다. 주어캄프는 헤르만 헤세를 비롯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10명이나 배출하며 독일의 지성사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 인문·문학 출판사로, 한국 장편 소설을 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1년 초판이 발간된 《시인》은 이듬해 프랑스의 대형 출판사인 악트 쉬드를 통해 유럽에 첫선을 보였다. 이후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웨덴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주요 7개국과 중국, 남미의 콜롬비아 등으로 번역 국가를 넓혀 왔다. 《시인》 이전에 단일 작품으로 10곳 이상의 나라에 번역된 작품은 역시 이문열이 쓴 중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지금까지 15개국에 소개됐다.
《시인》은 역적의 자손으로 태어나 평생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했던 시인 김병연이 좌절된 꿈을 시적 미학의 추구로 승화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장편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는 이 작품에 대해 "인생살이에서 만나는 짙은 안개와 폭풍우를 헤쳐나가기 위한 나침반 같은 소설"이라고 했고, 영국의 더타임스는 "지금껏 가장 의미 있는 한국 소설이다. 세계적인 작가의 폭넓은 시각과 놀라운 기교로, 고유 시의 전통적인 면과 동시대적인 면을 최초로 접목시켰다"는 찬사를 보냈다. 상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프랑스에서는 9000부씩 두 번 인쇄했고, 영국에서는 양장으로 3000부씩 두 번 냈다가 반응이 좋아 보급용 페이퍼백으로 9000부를 더 찍었다. 이번에 주어캄프에서 《시인》을 번역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유럽 각국의 높은 평가가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시인》은 독일어판 출간을 계기로 새로운 내용이 더해졌다. 이문열씨는 "원작을 일부 손보고 초판에 없던 〈시인의 사랑〉이란 장(章)을 더한 완결판이고, 독일어 번역도 이 완결판을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 개정판에서 추가했던 장에도 〈시인과 도둑〉이라는 제목을 새로 붙여 외전(外傳) 형식을 취했다. 이번에 추가된 〈시인과 사랑〉은 봄이 오자 늙은 시인에게 되살아난 춘심(春心)을 다뤘다. '아름다움은 시인의 한살이 내내 얻고자 뒤쫓은 것들 가운데서도 으뜸이었다. (…) 늙음과 더불어 여인의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조금씩 시들해 갔는데, 그날따라 그 아름다움은 젊은 시절의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신선한 매혹으로 시인을 이끌었다.'(248쪽) 작가는 "시를 잘 쓰는 경지를 넘어 시를 살아버리는 경지, '시를 한다'고 하는 경지에 들어선 시인의 모습을 사랑 이야기와 결합시켰다"며 "이제야 《시인》을 제대로 다 쓴 느낌"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200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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