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된 두 천재를 아십니까
## 불우한 집안환경에 실연 - 폐결핵까지 닮은 문우... ##.
이상과 김유정. 한국문학이 낳은 천재 소설가들이다. 서른문턱을 넘지못하고 요절
1937년 이상과 김유정은 이땅에서 나란히 사라졌다. 김유정은 3월29일 스물아홉의 나이에, 이상은 20일 뒤인 4월17일 스물일곱에 죽었다.
둘다 폐결핵이 원인이었고 요절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혼을 이해했던 절친한 문우였다.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구인회]에서 단짝으로 지냈던 이들이 죽자문단에서는 그해 5월15일 부민관에서 합동추도식을 올렸고, 평론가 백철은 {파시즘의 도래를 앞둔 문학의 죽음}이라고 애도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는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소설 [날개]에서 번쩍이는 기지와 독설을 남기고 찬란하게 파산한 이상은 지금도 문학청년들이 한번씩 거쳐가는 통로이자극복의 목표다.
이상과 함께 구인회 멤버였던 시인 김기림은 {이상의 죽음으로 우리문학이 50년 후퇴했다}고 말했다.
김윤식 교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문제로 고민하는 문인들은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근대]를 파악했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동시에 초극하려 했던 이상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문학이라는 [지방성]에 가두지 말고 세계문학의 반열에서 이상을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상은 본명이 김해경으로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건축 기사가 되었다. 31년에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고, 서양화 [초상화]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상했다. 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 36년에 잡지 조광에 소설 [날개]를 발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때 다방 [제비] [69] 등을 경영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불온사상 혐의로 체포됐다.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지병인 결핵으로 결국 동경에서 사망했다.
{[장인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그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고 뭐고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봄봄]의 작가 김유정. 그는 향토색 짙은 서정과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30년대 농민들의 삶을 그렸다. 무엇보다 남루한 삶의 슬픔을 감춘 해학이 작품 곳곳에 번져 나온다. 김유정을 집중연구해온 한림대 전신재 교수는 {옹달샘에서 물긷는 아낙네가 샘 속에서 자기 얼굴을 보듯 유정의 소설 속에서 우리의모습을 본다. 그의 언어는 생동하고 삶은 발랄하다}고 말한다.
김유정은 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우다 12세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를 중퇴, 고향에 내려가 금병의숙이라는 야학당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에 들어갔다. 33년 서울로 올라온 김유정은 35년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각각 당선, 문단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는 2년여에 걸친 짧은 작가생활을 통해 계몽적 이상주의나 감상적 농민문학을 떠나 농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 30여편을 내놓았다.
이상과 김유정은 여러가지 점에서 닮았다. 둘다 집안환경이 불우했다.
이상은 2살때 백부집에 양자로 들어갔다. 친부는 이발업 등을 했던 막노동꾼이었고 백부는 총독부 기술직에 있었던 중인이었다. 김유정은 천석꾼의 아들로 서울에도 백여칸의 집이 있었을 정도였으나 아버지 사망 후 형의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나중에는 밥장사를 했던 누이에게 얹혀지내는 처지였다.
또한 지독한 실연의 아픔이 있었다. 이상에게는 정상적인 사랑인지 도피인지 아리송하지만 금홍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소설 [날개]에 나오는 인물이다. 김유정은 휘문고보 졸업직후 나중에 명창이 된 박녹주에게 구애를 했다. 열렬한 사랑이 거절당하자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 자학적으로 떠돌이(들병이:집과 토지를 잃고 유랑하는 농민-수희 주)들과 어울렸다.
둘은 폐결핵에 꽁꽁 묶여 있었다. 이상은 20세 무렵부터 각혈을 했고, 김유정은 25세때 발병했다. 이상의 폐병은 그래도 느릿느릿하게 진행되었지만 늑막염과 치질까지 앓았던 김유정은 속도가 빨랐다. 식민지라는 시대적 좌절아래 죽음의 늪으로 차츰 빠져들어가는 그들이 광기와 열정으로 생명의 불꽃을 태워 만든 것이 바로 소설이었다. /조선일보,1997.9.25
곱추화가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
[친구의 초상 : 국립현대미술관소장]
'⊙ 문학과 소설의 향기 > 소설 작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하소설 (0) | 2011.01.28 |
---|---|
친절한 복희씨의 박완서 별세 (0) | 2011.01.22 |
작가들이 꼽은 사랑의 시, 연애 소설은 (0) | 2009.02.13 |
최인훈-광장(내년 등단 50주년) (0) | 2008.11.20 |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출간 30주년) (0) | 2008.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