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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벌은 욕의 원천

by 골든모티브 2008. 6. 7.

[이한우의 역사속의 WHY]

 조선시대 형벌은 욕의 원천이었다

 

죄인 묶던 오랏줄 → 우라질 놈 제기, 난장을 맞을 → 젠장할 갈가리 찢어 죽일 → 육시랄 놈

 

요즘의 욕은 보통 신체의 특정 부위나 동물에 빗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조선 때는 그보다는 주로 형벌과 관련된 욕들이 자주 사용됐다. 욕에도 전(前)근대와 근대가 있는 셈이다. 형벌 중에서도 주로 근대국가에서는 사라진 체형(體刑)과 관련된 욕이 많았던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조선의 형벌은 기본적으로 태형(笞刑) 장형(杖刑) 도형(徒刑) 유형(流刑) 사형(死刑)의 5형이었다. 흥미롭게도 조선의 욕은 이 중에서도 신체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형벌에서 나왔다. 오늘날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도형이나 유배를 보내는 유형에서는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만큼 인간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반(反)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낮은 단계부터 보자. '우라질 놈'은 죄인을 묶던 오랏줄에서 왔다. 오랏줄로 묶을 놈이란 뜻이다. 그나마 이것은 애교 섞인 욕에 속한다.

치도곤(治盜棍)은 태형과 장형을 통틀어 가장 심한 곤장이다. 말 그대로 중대한 절도범을 다스릴 때 쓰던 곤장형이다. 회초리에 가까운 태형과 달리 장형 중에서도 가장 심한 치도곤을 당할 경우 장독(杖毒)이 올라 종종 죽음에 이르곤 했다. 그러니 '저런 치도곤 놓을 놈'은 요즘 식으로 하자면 '패 죽일 놈'이다. 문학작품에나 등장하는 '육장(肉醬-장조림)내다'는 치도곤을 쳐서 초주검을 만든다는 뜻이다.

육장내다의 어원에 대해서는 또 다른 해석이 있다. 장형에서 온 것이 아니라 팽형(烹刑)에서 왔다는 것이다. 팽형은 말 그대로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끓여 삶아 죽이는 형벌이다. 중국에서는 실제로 행해졌지만 우리의 경우 잠깐 솥에 넣었다가 끄집어낸 후 죽을 때까지 집에 연금시키는 방식으로 시행했다. 생명은 유지했지만 사회적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나마 치도곤만 해도 법에 있는 형벌이었고 더 무서운 것은 율외(律外) 형벌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난장(亂杖)이다. 이것은 주로 신문할 때 사용된 고문의 일종으로 말 그대로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여러 명이 난타하는 것이다. 지금도 연세 많은 어른들이 종종 사용하는 '젠장할'이 바로 이 난장에서 나왔다. '제기, 난장을 맞을'이 줄어서 '젠장할'이 됐다. 치도곤보다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아 세종이 금지령을 내렸으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중종이나 영조도 하교를 내려 난장을 금하도록 했지만 결국 민간 사이에서 '멍석말이'로 일제 때까지 린치의 방법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젠장할'이란 욕도 오랜 생명력을 가졌던 것인지 모른다.

'경을 치다'도 조선의 형벌에서 나온 욕이다. 기본 5형 외에 오늘날의 보호감호처럼 부가형이 있었는데 반역자의 경우 사형을 시킨 후에 집을 파내 연못을 만들었고 큰 도적의 경우 자자형(刺字刑)이라 해서 신체 부위에, 주로 팔뚝에 '도(盜)'자를 새겨 넣었다. 그런데 팔뚝은 옷으로 가리면 되기 때문에 그 효과가 없다 하여 얼굴에 도자를 새겨 넣기 시작했는데 이를 경면형(�面刑)이라 했다.

성종 5년 소나 말을 밀도살한 자의 얼굴에 각각 재우(宰牛-소를 잡다), 재마(宰馬)라고 새겨 넣으라는 기록이 나온다. 경법(�法)이라고도 했던 이 형벌은 너무 잔인하다 하여 극히 제한적으로만 행해지다가 영조가 엄금조치를 내림으로써 사라졌다.

역시 가장 심한 욕은 사형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조선 시대 때는 사형에도 등급이 있었다. 사약(賜藥)은 그중 가장 대우를 해주는 것이고 그 다음은 교형(絞刑)이다. 신체 부위를 손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형(斬刑)은 말 그대로 목을 치는 것인데 그보다 더 한 경우가 능지처사(陵遲處死)다. 능지(陵遲)란 '언덕을 오르듯 천천히'란 뜻이다. 죽어가는 고통을 최대한 가하겠다는 참으로 잔혹한 형벌이다. 그래서 '능지처참할 놈'은 욕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이 능지처사(참)에도 다시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먼저 오살(五殺)이다. 오살은 팔, 다리 등을 차례로 베어낸 뒤 맨 마지막에 심장을 찔러 죽이는 방법이다. 그 과정을 많은 사람들이 다 지켜보도록 했다. 여기서 '오살할 놈'이 나왔다. 그와 비슷한 것이 시체를 도륙내는 육시(戮屍)가 있다. 갈가리 찢어 죽이는 것이다. '육시랄(할) 놈'은 따라서 찢어 죽일 놈이라는 뜻이다.체형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형벌이 욕의 원천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대통령 이름이 욕이 되는 세상이다

조선일보,200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