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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노벨 문학상

2006 노벨문학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vs황석영과 대담

by 골든모티브 2008. 5. 13.

노벨문학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 황석영과 대담

 

"작가는 금기와 규칙을 넘어서는 사람"
파묵 "디지털 시대에도 문학은 살아남을 것" "다른 시선을 막는 금기 깨는 것이 작가의 임무"
황석영 "작가들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12일 서울 강남구 교보생명빌딩 23층 강당에서 오르한 파묵(왼쪽)과 황석영씨가‘경계와 조화’를 주제로 공개 대담을 갖고 있다. 

"종이·연필만 있으면 쓰고 싶은 사람 존재 문학 미래 낙관"

"문학 보편성 미명하 서구 지향주의 이제는 극복해야" <한국일보,2008.5.13>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56)이 방한했다.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지 3년만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ㆍ대산문화재단의 초청을 받은 파묵은 12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출판협회(IPA) 서울총회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했고, 오후엔 강남 교보문고에서 기자 간담회, 독자 사인회, 소설가 황석영씨와의 대담을 소화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다. 13일엔 오후4시부터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공개 강연회를 갖는다.

 

“내 문학은 우리 안의 금기 허물기”

"보편성의 이름 하에 서구 문학이 일방적으로 던져준 형식과 화법, 규칙 등을 깨고 자기의 목소리로 이야기해야하는 데 문학의 책무가 있습니다"(황석영)

"작가의 임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경계를 발견하고 깨는 것입니다. 문학의 가장 큰 즐거움도 바로 발견되지 않았던 내적 경계를 발견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파묵)


 

두 작가는 경계를 뛰어넘는 문학의 기능과 전통과 서구의 조화, 디아스포라 문제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사회는 문학평론가인 김동식 인하대 교수

 

사회 한국과 터키는 모두 전통과 서구의 충돌을 극적으로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양국 지역에 기반한 민족주의가 큰 문제가 된 동시에 두 나라 모두 강렬한 서구지향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무크의 ‘내 이름은 빨강’과 황석영의 ‘손님’에서도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데, 지역성에 근거한 민족주의 문제와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 사이의 갈등, 경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파무크 터키에서도 전통적인 것을 얼마나 유지해야 하고 서양을 얼마나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나는 처음 서양 것을 터키의 전통적인 스타일과 함께 버무리겠다고 생각했는데,‘검은 책’의 형식이 바로 그런 형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35년간 작가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은 지역적인 것일 수도 있고 국제적인 것일 수도 있다.

황석영 얼마전만 해도 한국 사회가 민족주의적 억압이 심했다. 난 남북의 국가주의로부터 다 ‘환영받지 못해’ 무국적자 신세를 경험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실체를 본 셈이다. 그래서 난 세계시민이라고 말하곤 했다. 최근에는 작가는 국경, 민족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이고 작가의 조국은 모국어라고 말한다. 이후 세계적 현실을 우리 양식에 담는다는 결심을 했고 그 이후에 쓴 작품들에 그런 결심들이 담겨 있다.

 

사회 터키인들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많이 이주해 있고 미국 등지에 있는 한국인들도 많다. 디아스포라와 자국내 소수자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황석영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주 노동자, 난민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하는데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난민을 이야기할 때 간과하는 것이 탈북자들이다. 중국에 20만명의 탈북자가 떠돌아다니고 있고 유럽, 미국쪽에 흩어져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하고 다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파무크 유럽 기자들과 인터뷰하면 ‘독일에 있는 터키인들은 왜 우리처럼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독일내 터키 사람들의 문제는 독일 문제다. 마찬가지로 터키에 사는 소수민족의 문제는 터키의 문제다. 문제는 인종주의와 정치적인 민족주의다. 다른 나라에 이주해 살면서 억압받는 사람들은 문화가 열등한 탓에 압력받는 것이 아니라 인종주의 때문에 억압받는 것이다다.

 

사회 자신의 문학이 태어나고 성장한 문학적 고향이 있다면.

 

파무크 이스탄불이다. 지금까지 이스탄불에 살고 이스탄불에 대해 썼다. 문화와 언어와 문명이 바뀌어도 탁월한 작가들이 있지만 나의 경우 그런 작가가 아니다.

황석영 난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만주에서 태어나 살다가 서울 영등포로 이사왔다. 영등포는 일제가 산업도시로 만든 곳이라 일본 집들이 많았다.1980년대 초 일본에 갔을 때 도쿄 외곽의 작은 도시에 머물렀는데 풍경이 영등포 거리와 똑같아 향수를 느꼈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는 ‘토박이 이야기꾼’이 있고 떠돌아다니며 들은 이야기를 전파하는 ‘외곽 이야기꾼’이 있다면 난 후자다. 앞으로도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닐 것 같다. 개인적으로 파무크 작품 중 ‘내 이름은 빨강’과 ‘하얀 성’을 봤는데 서술이나 구성법이 우리 민담과 비슷해 낯설지 않았다. 우리 젊은 작가들도 프랑스나 독일, 미국 소설 흉내내고 그럴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 방법론을 개발해야할 것 같다.

 

사회 오늘날 문학의 위상, 운명, 장래에 대해 많이들 걱정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황석영 그렇게 엄살 부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지만 출판 부문에서 세계 7위다. 문학이 활력이 있고 무엇보다 독자들이 살아 있다.

파무크 동감이다. 문학은 절대 죽지 않는다. 종이와 연필, 그리고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은 인류가 계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신문,2008.5.13

 

◇오르한 파무크=1952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스탄불의 명문고를 졸업했고,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 꿈은 화가나 건축가. 그러나 스물세 살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82년 첫 소설 『제브데트씨의 아들들』을 출간했고, 85년 발표한 세 번째 소설 『하얀 성』이 ‘동양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뉴욕 타임즈)’는 격찬을 받으며 국제적 작가로 거듭났다. 이어 발표한 『검은 책』(1990) 『새로운 인생』(1994) 『내 이름은 빨강』(1998)이 잇따라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마침내 2006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 주요작품 : ‘고요한 집’(83년) ‘하얀 성’(85년) ‘검은 책’(90년) ‘새로운 인생’(94년)

‘내 이름은 빨강’(98년) ‘눈’(2002년),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