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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애송시 100편]100

[애송시 100편-제82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함형수 [애송시 100편-제82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2008. 4. 14.
[애송시 100편-제81편] 보리피리-한하운 [애송시 100편-제81편] 보리피리-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일러스트=권신아 .. 2008. 4. 12.
[애송시 100편-제80편] 갈대 등본-신용목 [애송시 100편-제80편] 갈대 등본-신용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 2008. 4. 11.
[애송시 100편-제79편] 투명한 속-이하석 [애송시 100편-제79편] 투명한 속-이하석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고 더 많은 것들 .. 2008. 4. 10.
[애송시 100편-제78편] 일찌기 나는-최승자 [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78) 일찌기 나는-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 2008. 4. 9.
[애송시 100편-제77편] 국토서시(國土序詩)-조태일 [애송시 100편-제77편] 국토서시(國土序詩)-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 2008. 4. 8.
[애송시 100편-제76편] 조국(祖國)-정완영 [애송시 100편-제76편] 조국(祖國)-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2008. 4. 7.
[애송시 100편-제75편]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애송시 100편-제75편]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 2008. 4. 5.
[애송시 100편-제74편] 절벽-이상 [애송시 100편-제74편] 절벽-이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 2008. 4. 4.
[애송시 100편-제73편] 반성 704 - 김영승 [애송시 100편-제73편] 반성 704 -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2008. 4. 3.
[애송시 100편-제72편]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애송시 100편 - 제72편]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2008. 4. 2.
[애송시 100편-제71편] 진달래꽃-김소월 [애송시 100편-제71편] 진달래꽃-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일러스.. 2008. 4. 1.
[애송시 100편-제70편] 방심(放心) - 손택수 [애송시 100편-제70편] 방심(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 2008. 3. 31.
[애송시 100편-제69편] 농무-신경림 [애송시 100편- 제69편] 농무-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 2008. 3. 29.
[애송시 100편-제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애송시 100편 - 제 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 2008. 3. 28.
[애송시 100편-제67편] 칼로 사과를 먹다-황인숙 [애송시 100편-제67편] 칼로 사과를 먹다-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 2008. 3. 27.
[애송시 100편-제66편] 의자-이정록 [애송시 100편-제66편] 의자-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 2008. 3. 26.
[애송시 100편-제65편] 생명의 서(書)-유치환 [애송시 100편-제65편] 생명의 서(書)-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 2008.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