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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시론 칼럼

詩는 내게 종교이며, 詩쓰기는 고해성사 같은 것

by 골든모티브 2008. 7. 30.

詩는 내게 종교이며, 詩쓰기는 고해성사 같은 것

 

한순간의 ‘복사빛’을 기억하며

 

< 정끝별 시인 > 제2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정끝별’ 시인
 
 
무더운 여름을 달래주는 단비가 내리던 날, 명지대학교 본관 교수실에서 정끝별 시인을 만났다.시를 씀으로써, 시인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큰 ‘빽’을 지니고 있다는 든든함이 행복하다는 그녀. 그리고 이 세상 저 끝, 홀로 반짝이는 별처럼 외롭지만 영롱하게 빛나는 그녀의 언어. 지금부터 정끝별 시인의 그 별빛을 따라가보자.

-본인의 작품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애착이 가는 시는 그때그때 다르다.아마 그때그때의 정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먼 눈’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내리고 내리고 내리면/ 저리 무덕무덕 쌓이는 걸까/ 쌓이고 쌓이고 쌓이면/ 저리 비릿하게 피어나는 걸까”하며 시작하는 이 시는 노래에 가까운 시다.
뭘 쓰려고 했는지도 잘 모른 채 그냥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쓴 시이다.그리고 퇴고하지 않았다.삼천갑자, 18만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들은 변하고 소멸한다.그 무상한 시간 속에서 역설적이게 항구한 ‘순간의 시간’들이 있다.바로 ‘복사빛’ 같은 아니 ‘복사빛’에 대한 욕망 혹은 기억 같은…… 이 시는 시간과 되풀이, 덧없음과 항구함에 대해 생각한 시이다.사랑이라 이름할 수 있는 간절한 그 무엇을 노래했다.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지 20년이 됐다.그동안 집필 기간 동안 슬럼프가 있었는지.

▲20년 동안 총 250편 정도의 시를 썼다.스물 다섯에 등단해 계속 뭔가를 병행하면서 시를 썼다.결혼이든 대학원이든 논문이든 육아든 강의든 평론이든 잡문이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시에만 몰두했으면 더 잘 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지독히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그것도 여자로 태어난 내가 시를 더 잘, 더 오래 쓸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들을 생각했었다.

시라는 것이 늘 뭔가를 ‘느끼고 읽어내고 깨닫고’ 하는 넓은 의미의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와야 할 것 같았다.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20년 동안 함께 굴러왔다.시를 쓸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 속에서 긴장하면서 가까스로 시를 썼던 편이라 슬럼프다운 슬럼프가 없었다.아니 어떻게 보면 지난 모든 시간이 슬럼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변명할 수 있는 건, 모두 시와 연관된 일들이었다는 점이다.시론집이나 평론집은 물론, 시해설집, 여행산문집 들도 시에 관한 것들이었다.가르치는 일 또한.

-밥에 관한 주제로 시를 모아 <밥>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본인에게 밥이란 어떤 의미인지.

▲밥은 슬프고 따뜻하고, 존엄하고 비루하다.밥이라는 주어는 어떤 술어든 다 수용할 수 있다.그만큼 밥은 전체 또는 삶이기도 하다.아버지는 어릴 적 우리를 훈도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거지도 밥 세끼는 먹는다.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 어릴 적에는 참 듣기 싫었던 말인데 요즘 내가 밥벌이를 하면서 자주 떠오르는 말이다.‘어떻게 먹느냐’는 곧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일 것이다.밥은 삶의 시작이자 끝이고, 불멸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밥’이라는 글자를 유심히 들여다 본 적이 있다.‘ㅂ’을 밥공기로 연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두 개의 밥공기 사이에 ‘아’라고 하는 입벌림이 있네. 그런데 밥공기에 밥은 왜 가득차지 않고 절반만 담겨있을까, 왜 두 개 일까. 아, 가득 먹지 말고, 나눠먹으라고 그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쓴 시가 ‘까마득한 날에’이다.

-가장 존경하는 시인이 있다면.

▲시인들은 한 고집, 한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이다.내 주변에서 어떤 시인을 열렬히 존경하는 시인을 보지 못했다.주변에서, 어떤 시인을 열렬히 존경하는 시인을 보지 못했다.좋아한다면 몰라도. 나 또한 어떤 시인을 존경하기 보다는 여러 시인과 시를 좋아한다.좋아하는 시인이나 시도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시에는 정상 혹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또 그렇기 때문에 계속 쓰는 것이고.

그렇지만 요즘에는 가끔 이성복 시인을 생각한다.멀리서 바라본 이성복 시인에 대한 느낌은 한결같음이다.시에 관한 한 한결같은 열정과 순결함을 높이 산다.30년 동안 시적인 긴장과 시인으로서의 견결함을 잘 견지하신 채, 문단의 이런저런 잡스러움과 이해관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계신다.‘그 수많은 부탁들을 어떻게 물리치셨을까. 어떻게 끊임없이 자기갱신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뒤통수가 부끄러워져 질 때가 있다.

-시인으로서 가장 큰 행복은.

▲‘시’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빽’을 지니고 있다는 든든함이다.그런 ‘빽’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 소소한 행복이나 기쁨도 넘치지 않게 누를 수 있고, 큰 고난이나 불행도 조금 더 의연하게 견뎌낼 수 있다.촌스럽게도 아직까지 제게 시는 종교와도 같고 시쓰기는 기도 혹은 고해성사와도 같다.그리고 무엇보다 ‘한 소식’처럼 날아 온 시 한 편을 썼을 때의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그 무엇이다.그런 순간을 기다리는 행복도 있다.

-어떤 시인으로 불리고 싶은지 ▲늘 꾸준하고 성실한 시인이고 싶다.친한 동료 시인은 “제발, 성실 좀 하지마”라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웃음) 자동차를 정비할 때 ‘기름치고 닦고 조이고’하는 것처럼, 나도 ‘걸러내고 덜어내고 비우며’ 자기갱신을 하는 시인이고 싶다.한결같지만 늘 반성하고 반추하는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끝까지 시를 쓸 것인지.

▲시는 끝이 없는 것이다.시를 쓰는 도중에 슬럼프가 올 수도 있겠고 이전보다 나은 시를 쓸 수 없게 될 지도 모르겠다.만약 그렇게 된다면 시를 안 쓸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되지도 않는 시를 왜 끝까지 써야 하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끝까지 쓸 것이다.시인은 정년퇴직이 없는 직업이지만 요즘에는 스스로를 다잡는다.내가 기존의 시와 다르거나 더 나은 시를 쓸 수 없으면 안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나아지고 있다’는 그게 주관적인 것이라, 사실은 잘 모르겠다.(웃음) -다음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11월에 네 번째 시집이 나온다.세 번째 시집이 순리적인 시간의 질서에 순연하게 따르는 견뎌내려는 시집이었다면, 네 번째 시집은 그 시간의 질서를 뒤섞고 놀린, 발랄한 시집이 될 거 같다.지난 6개월 동안 ‘현대시 100년, 100편의 애송시’ 연재와 잡다한 일들로 시를 쓰지 못했다.방학을 계기로 숨 고르기를 하면서 다시 조율 중이다.

투데이코리아 정수현 기자/2008.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