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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시론 칼럼

김수영 40주기-40명의 시인들 40편의 시를 바치다

by 골든모티브 2008. 6. 13.

그는 우리들 詩의 뿌리…좌절의 밤을 지새우게 한 고통

 


한국 모더니즘 시의 뿌리가 된
시인 김수영(1921~1968)의 40주기
 
40명의 시인들 40편의 시
 

《6월 16일/그대 제일(祭日) 맞아 무덤에 간 적 있었지/소로 변 나무들이 거꾸로 울부짖던 소릴 들은 것도 같았지/짧은 길이 너무도 멀어/여전히 큰 눈 떨구고/멀리 보이는 저놈은 도적인지 뉘 집 사령(使令)인지 염탐하는 그대 얼굴은/다가갈수록 더 멀고 큼직한 동굴 같더군/날은 참 밝고 풀들은 소각소각 제자리에서 건들거리고/소주잔 따르는 손은/어느 달나라에서 휘청거리다 추락한 별인 양/사위 아득하게 저 혼자 취했었지/(후략)

<강정 시인의 김수영 헌정시 ‘무덤이 떠올라 별이 되니 세상은 한참이나 적막하더라 -김영태풍으로’>》

 

타계 이후 출생한 시인들 헌정시집 발간

 

“1985년 겨울. 경기도 안양. 커피숍 ‘전람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동인 선배들의 시화전이 열리고 있던 커피숍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습니다.…김수영 시인의 전집과 ‘거대한 뿌리’를 처음 읽은 것이 그때쯤인 것 같군요.…안양의 커피숍에서 동인 선배였던 기형도 시인이 저에게 해 준 말이 기억나네요. 그는 저에게 좋은 시집을 소개해 주고 습작을 읽어 줄 선배들이 있다는 행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요, 기형도 선배의 말처럼 그것은 제게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문학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시인 조동범 씨)

 

‘풀’ ‘폭포’의 시인 김수영(1921∼1968) 40주기를 맞아 후배 시인 40명이 헌정 시집 ‘거대한 뿌리여, 괴기한 청년들이여’(민음사)를 16일 낸다. 16일은 김수영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40주기가 되는 날. 이번 시집에 참가한 40명의 시인은 모두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출생한 젊은 시인들이다.

시인 김행숙 서동욱 씨 등이 참여한 이 시집에는 40편의 헌정시와 함께 김수영 시에 대한 시인들의 단상 및 추억도 함께 담았다. 서 씨는 “김수영의 다양한 글에서 뽑아낸 독한 알약 같은 한 구절을 자신의 정신 속에 투여했을 때 어떤 이례적인 효과가 일어났는지에 관한 임상 기록이다”라고 말했다.

 

김수영 시에 대한 단상-추억도 담아

 

시인들에게 김수영은 문학적 뿌리이자 그들 자신이었다. 이장욱 씨는 시인이 생을 마친 다음 날인 17일에 자신이 태어났음을 상기하며 “이 사소하고 무의미한 우연을 떠올리는 것은 대개 이미 취한 뒤”라고 고백했다. 김경인 씨는 “어느 여름 최루탄과 함성으로 가득 찬 캠퍼스 뒤뜰의 수녀원 앞 계단에 앉아 김수영을 읽었다”면서 “똑똑 떨어지는 시간의 물방울이 머릿속에 한없이 둥글고 느리게 맺혔던” 기억을 떠올렸다.

한 번 만난 적도 없으나 시인은 그들에게 일상이고 추억이었다.

자주 서울 도봉산 자락 김수영 시비(詩碑)를 찾는다는 장석원 씨는 “갈 때마다 백일몽에 젖어 김수영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면서 “(시비) 돌 속의 심장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정재학 씨는 “속이 상할 때마다 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떠오른다”면서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떠오르는 시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인들에게 김수영은 한없이 편안한 존재는 아니었다. ‘망치라는 물고기’를 쓴 손택수 씨는 오히려 그를 ‘불편한 시인’이라고 불렀다.

“다 읽고 나서도 읽었다고 할 수가 없다. 이제 좀 잡힐 듯하지만 여전히 뭔가 께름칙하다. 끝없이 새로운 독법을 요구하며 그 쏘아보는 듯한 퀭한 눈빛 앞에 벌 받는 심정으로 다가서게 하는 시인. 그렇다! 그는 차라리 억압이고, 고통이다. 그의 시 앞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좌절로 지새워야 했던가.”

 

“과거적 의미보다 그의 현재성 짚어보려”

이번 시집의 기획에 참여했던 김행숙 씨는 “이번 시집은 김수영에 대한 과거적 의미보다는 그의 현재성을 짚어보자는 취지”라며 “참여 시인들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은데도 단순히 ‘기념시’이기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성을 담았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2008.6.12

 

현대시의 전설 김수영 -전통 서정詩 뛰어넘은 선구자

김수영은 김소월 서정주 박목월로 대표되던 기존 한국 시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었다.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현대감각 시를 실험하고 전파한 선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