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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시론 칼럼

시집을 든 중년 남자

by 골든모티브 2008. 3. 17.

시집을 든 중년 남자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중년 남성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류시화 엮음)의 표제시 전문이다.

중년 남성들이 가장의 짐을 지고 역경의 삶을 쫓기듯 헤쳐오면서 상처를 많이 받아서일까.

여성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시가 요즘 남성들로부터,

 그것도 45세 이상의 중년 남성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교보문고가 최근 3년간 시집 구매자들의 연령과 성을 분석한 결과 중년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시집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집을 사는 남녀의 비율이 10대의 경우 28 대 72였으나 45~49세에 51 대 49로 역전되면서 60세 이상에서는 78 대 22로 10대의 남녀 비율을 뒤집은 것과 비슷했다.

중년 남성이 많이 선택한 시집은 제목부터가 사춘기 소년 못지 않게 감성적이다.

'사랑하라…'를 비롯해 '포옹' '내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시간의 부드러운 손'등등. 시집을 든 중년 남자. 멋스러움과 여유가 '축 처진 어깨'의 중년 남성 이미지를 절로 축출하는 듯싶다.

중년 남성만큼이나 시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곳이 관공서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앞장서 시민의 시심 키우기에 나섰다. '시가 흐르는 서울'을 만들기 위해 국내외 유명 단편시를 액자나 벤치 등의 형태로 공공 장소에 설치,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시를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지하철역사와 버스 정류장, 공원 등 3083곳에 1만여편의 시를 선보인다. 특히 청계천 모전교에서는 매주 금·토요일 밤 빔 프로젝트를 이용해 시민들이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 시가 흐르는 청계천을 만들기로 했다.

시와 '안 어울리는' 인물 중 한 명이 과거 중년 남성·서울시의 두 이미지가 겹쳐진 이명박 대통령일 듯싶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책 4권을 추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중년 남성들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시집 '사랑하라…'다.

변화의 시대다. 올해로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한국 신연극도 100주년을 맞았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이지만 올해 봄맞이로 시 한 편, 연극 한 편을 가까이 하면 어떨지.

[김영호 / 논설위원]문화일보,2008.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