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의 향기/시론 칼럼

시작시인선 100호 vs 현대한국시 창간

by 골든모티브 2008. 6. 14.

시작시인선 100호 + 현대한국시 창간

 

시단에 경사가 겹쳤다. 시 전문 계간지 ‘시작’(천년의시작)에서 펴낸 시작시인선이 6년 만에 100호를 맞았다. 또 시 전문 계간지 ‘현대한국시’(한국현대시)가 새롭게 창간됐다.

◇ ‘시작’ 100호=2005년 5월 ‘천년을 움직이는 젊은 영혼의 시’라는 이념을 내걸고 시작한 시작시인선(편집위원 이재무·이형권·유성호·김춘식·홍용희)이 최근 100호를 맞았다.

1호는 젊은 시인 61명의 합동시집 ‘즐거운 시작’이었고, 이번 100호는 그동안 책을 냈던 시인들의 합동시집 ‘시가 오셨다’로 꾸몄다. 창비·문학과지성사·문학동네 등 대형 출판사들도 1년에 10여권의 시집을 내는 현실에서 시 전문 출판사를 표방한 천년의시작은 1년에 20여권을 낼 정도로 분투해 왔다.

문단의 팽창으로 인해 더욱 발표 기회가 적어진 신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생각으로 진행된 시작시인선은 길상호(‘어미를 먹은 기억’), 김이듬(‘거리의 기타리스트’) 등의 젊은 시인뿐 아니라 김신용 시인이 시집 ‘환상통’으로 노년에 재평가받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 이수익·정진규·이향지 등 중견시인들도 참여했다. 101호는 유안진 시인이 준비 중이고, 김지하 시인도 연말쯤 시집을 낸다. 시작시인선 가운데 21건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로 선정되고, 22건이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재무 편집위원은 “젊은 시선으로 개성적인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앞으로는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변화된 문화현실에 따라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시인들의 시집을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낡음에 저항하며 세계詩 지향”… ‘현대한국시’

◇ ‘한국현대시’ 창간=계간 ‘한국현대시’가 2008년 여름호를 창간호로 냈다. 박주택 시인(경희대 교수)이 주간을 맡고 박상순 ‘뿔’ 대표, 권혁웅 한양여전 교수, 문학평론가 조강석씨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이 계간지는 국문학 관련 자료집과 논문집을 내온 국학자료원이 발행한다.

박주택 주간은 “한국근대시가 100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그동안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훼절된 시의 정신적 위의를 살리는 한편, 우리 시가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두 가지 방향으로 ‘한국현대시’를 이끌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창간호 특집은 ‘한국현대시 100년, 파괴의 미학’을 주제로 편집위원 대담과 문학평론가 정과리·이광호·허윤진씨의 글을 실었다. 파괴와 창조의 관계를 살피면서 새로운 100년을 향한 시적 기초를 다진다는 취지다. 또 주목받는 시인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싣는 코너와 권혁웅 편집위원이 집필하는 ‘상상동물들, 사랑을 말하다’ 시리즈 등을 연재한다. 박 주간은 “앞으로 폴란드에서 한국시집을 내거나 미국 문예잡지와 기사교류를 하는 등의 계획을 추진 중이며 한국시를 프랑스·일본·스페인어로도 번역해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현대시’는 오는 20일 오후 6시 출판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창간호 출판기념회를 연다. / 경향신문,2008년 06월 12일

 

창간호를 장식한 기획으로 '한국 현대시 100년, 파괴의 시학'을 선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현대시 100년을 돌아볼 때 그것은 어떤 파괴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괴의 욕구가 창작의 충동이자 정신적 생명 충동인 것이죠. 파괴의 거주지가 창조의 거주지가 되어 자신을 드러낸다고나 할까요."

예컨대 꽃의 신비는 꽃을 꺾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데 꽃이 지닌 본래 아름다움과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공존을 이룰 때 비로소 꽃이라는 즉자태((卽自態)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파괴가 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전복이나 해체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인식과 그에 적합한 방법을 찾으려는 모순이 새것을 옛 틀에 담으려는 시도를 상대적으로 진부하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야말로 파괴에 버금가는 충격일 것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없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또 얼마나 재미난 일입니까."

이성복이 1980년에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를 발표했을 때 당시 청년의 불안과 우울을 다룬 기존 시들이 한순간에 진부한 것이 되었듯, 이제는 이성복조차 진부해졌다는 말을 듣는 현실이고 보면 장정일과 황병승 조차도 어쩔 수 없이 낡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이 낡음에 저항하는 것이 바로 파괴의 미학인 셈이다.

"개화기 때 민족적 설움을 담아내기에 적합했던 낭만주의는 새로운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세운 카프의 리얼리즘에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고,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청록파의 청산(靑山) 이미지는 김수영 박인환 등 후반기 동인에 이르러 도시 이미지로 바뀌면서 자기 갱신을 거듭해 왔던 것이죠. 더 가깝게는 90년대의 현실 이미지가 2000년대에 들어와 환상 이미지로 자리를 바꾼 것인데 이렇게 본다면 우리 시의 이미지 하나만 보더라도 파괴의 연속인 셈입니다." /쿠키뉴스,2008.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