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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詩와 시인

김기림, 신문에서 문학을 펼치다

by 골든모티브 2008. 2. 16.
김기림, 신문에서 문학을 펼치다
 
모더니스트 시인이기 전에 문인기자

  • 염상섭 이광수 현진건 김동인 김기림 채만식 한설야 김동환 이육사 이은상 윤석중 백석 노천명 계용묵 주요한 심훈 이태준….
  • 일제 강점기 활동한 근대 문학에 빛나는 시인·소설가·비평가 등을 열거하자면 숨이 찰 정도다. 지금까지 우리 문학이 이들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을 만큼 이들 문인들이 한국 문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일제시대 신문기자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문인 기자'들은 1930년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신문 지면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당대 문단을 이끌었다. 이들은 신문사에서 기자, 사회부장, 학예부장, 교정부장, 조사부장, 편집국장 등의 직책을 가지고 매일 신문을 만들면서 시와 소설, 수필과 기행문 등 문학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작품들을 지면에 발표했다.

    모더니즘 시인으로 유명한 김기림(金起林·1908~?)은 1930년대 '문인 기자'를 말할 때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다른 '문인 기자'들이 문인으로 등단해서 나중에 기자가 된 반면, 김기림은 기자로 출발해서 문인으로 나아간 드문 경우다. 그는 1930년 4월 조선일보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공채 시험을 통해 같은 해 4월 20일 공채 1기로 조선일보에 입사한다. 그는 사회부에서 기자 수업을 받은 뒤 학예부(현 문화부)를 거쳐 1940년 8월 10일 조선일보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될 때 학예부장을 지냈다.

    김기림 입사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은 "일류라고 손꼽히는 인물들"('김기진 문학전집 2권')의 경연장이었다. 주필 안재홍, 편집국장 한기악, 정치부장 이선근, 교정부장 장지영, 학예부장 염상섭, 경제부장 정수일, 사회부장에는 화가 이쾌대의 친형인 이여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김기림이 처음 배속된 사회부에는 홍종인 박윤석 양재하 신영우 이원용 등이 있었고, 정치부에는 한보용 함대훈 홍양명, 학예부에는 안석주 등이 있었다. 이원조 백석 박팔양 한설야 이석훈 등도 김기림과 함께 조선일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기자로 활동했다. 이들은 서로 동료 기자이자 친구였으며, 내면의 소통이 가능한 문학적 동지들이었다.
  • 그러나 김기림이 다른 문인 기자와 다른 점은 자신의 정체성을 '문인'보다는 '기자'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문단에 나온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일찍이 문단에 나온 적이 없다. 발표하기 시작한 것도 우연히 신문기자였든(던) 까닭에 자기 신문 학예란에 출장 갔든(던) 기행문을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했고 별다른 동기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학을 하겠다는 것만은 스스로 결심했고 무엇이고 값있는 것을 맨드러(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다."('문단불참기')

    광운대 국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같은 발언은 그가 문인이기보다는 기자 혹은 한 시대 문학을 고민한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며 "모더니즘이나 '모더니스트 김기림'으로 김기림(문학)을 이해하는 것의 불충분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존 연구가 '문인' 김기림에 지나치게 주목한 나머지 '기자' 김기림을 놓침으로써 김기림 문학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김기림은 여느 문인들이 기자 생활을 호구지책으로 여겼던 것과는 달리, 기자라는 전문직업에 대한 인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신문기자가 된 첫날 느낀 신문사 편집국의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그에게 비친 신문사 편집국은 근대 문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원고 마감을 하는 기자들의 손가락은 프로펠러처럼 돌아가고 있었으며, 한꺼번에 울리는 몇 대의 전화를 동시에 받으면서 기자들의 원고를 낚아채는 사회부장은 50개의 귀를 가진 '메두사형 인간'이었다. 한바탕 광풍이 몰아친 후 윤전기가 돌아가는 소리는 슈베르트의 음악처럼 감미로웠다. ('신문기자로서의 최초 인상')

    김기림은 '편집국의 오후 한시 반'이란 시에서 이렇게 쓴다. '편집국의 오후/한시 반/모-든 손가락이 푸른 원고지에 육박한다/돌격한다//(…)//째륵/째륵/철걱/공장에서는/활자의 비명-/사회부장의 귀는 일흔 두 개다/젊은 견습기자의 손끗(손끝)은/조희(종이) 우흐로(위로) 만주의 전쟁을 달린다'

    저자는 그동안 '문인'이라는 범주에서 단순히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규정된 김기림이 아니라 "기자 생활의 전선에 뛰어든 당대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의 리얼리티와 시대정신을 확인"하고자 한다. 저자는 김기림을 중심으로 그와 교유했던 동료 문인 기자들의 삶과 문학을 살펴보고, 그가 꿈꾸었던 세계를 "신문이라는 근대적 매체를 통해 생산 유통되는 '활자-도서관'의 세계"였다고 진단한다. 김기림과 함께 구인회(九人會) 멤버로 활동한 시인 이상(李箱)을 비롯해 동료기자이자 문학 동지였던 백석 이원조 이여성 한설야 이석훈 등과의 관계를 서술한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문인'에 집착한 나머지 그동안 김기림의 작품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기자' 김기림의 글도 발굴해 부록으로 덧붙였다. 올해는 '바다와 나비'의 시인이자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인 김기림이 탄생한지 100년 되는 해다.
  • 문인기자 김기림과 1930년대 활자-도서관의 꿈, 조영복, 살림/조선일보,2008.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