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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詩와 시인

윤동주·이육사 저항詩… 소설은 김학철의 ‘격정시대’

by 골든모티브 2008. 3. 4.

<3·1절을 다시 본다-일본을 알기 위한 책 33권>

 

윤동주·이육사 저항詩… 소설은 김학철의 ‘격정시대’

 

3·1운동은 우리의 문학에도 다양한 충격과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근대적 의식을 가진 작가군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이전 시기의 계몽적 성격을 부정하면서 개성을 발현하는 근대문학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또 문학에서 좌·우의 대립양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일제의 식민정책이 워낙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의 문학활동이 활발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저항의 문학정신은 면면히 이어졌다.

지난 16일은 조국 광복을 불과 6개월 남겨놓고 일제의 감옥에서 옥사한 윤동주(1917~1945) 시인의 기일(忌日)이었다. 이날 시인의 모교인 일본 도쿄의 릿쿄대와 교도의 도시샤대에서 윤동주 탄생 90주년(2007년 12월30일)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각각 열렸다. 국내 TV뉴스를 통해 보도된, 릿쿄대의 기념식에서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를 낭송하는 장면은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전했다.

윤동주는 ‘저항시인’이라기보다는 식민지의 한 시인이 겪어야 했던 좌절을 순결한 영혼의 빛으로 펼쳐 보여주었다. 시인의 고뇌는 ‘쉽게 쓰여진 시’에서처럼 진실을 추구하는 의식 세계와 현실적 삶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등 윤동주에 대한 많은 평전들이 나와있다.

이육사(1904~1944) 시인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이다.
그는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고,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다시 1943년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그는 우리 문학에서 보기 드문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청포도’ 또는 ‘광야’의 제목으로 이육사의 시집들이 출간돼 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저항시인이다. 만해의 시정신은 역사의식과 종교적 염원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의 역사의식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며, 종교적 염원은 대승사상에서 원류를 찾을 수 있다. 그와 관련된 평전과 연구서 등이 무척 많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1901~1943) 시인은 3·1운동 당시 대구학생시위운동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수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한 그는 1940년 이후 독서와 연구에 몰두하면서 60여 편의 시를 남겼다. ‘이상화 시전집’이 여러 출판사에서 나와있다.

일제에 대한 저항문학에서 소설가 중에는 김학철(1916~2001)과 김사량(1914~1950)을 빼놓을 수 없다. 김학철은 서울 보성고 재학 중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중국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김원봉이 1938년 한커우에서 조직한
조선의용대에 가담해 분대장으로 활약했다. 1941년 만주 태항산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 붙잡힌 뒤,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광복으로 출옥해 귀국했다. 남과 북에서 모두 배척당하고 망명한 중국에서조차 탄압당한 그는 영원한 자유인이었다.
장편소설 ‘격정시대’ ‘해란강아 말하라’,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등이 출간돼 있다.

김사량은 일본어로 작품을 써서 아쿠다가와상 후보에까지 오른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1945년 5월 중국 태항산 지구의 항일 근거지로 탈출해 일제와 맞서 싸우고 창작활동을 펼쳤던 망명작가였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해방 이후 줄곧 북한에 머물렀다는 점 때문에, 북쪽에서는 연안의
조선의용군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그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제는 소설 ‘태백산맥’과 ‘노마만리’,‘종군기’등이 출간돼 있다.

‘상록수’의 소설가
심훈(1901~1936)과 ‘탈출기’의 최서해(1901~1932), ‘인간문제’의 강경애(1906~1943) 등도 일제강점기의 저항정신을 작품에 담았던 작가들이다.현대문학 중에선 조정래의 대하장편 ‘태백산맥’이 당시 민중의 저항과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놓고 있어 읽을 만하다.
문화일보,2008.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