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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현대 문학

문학은 여전히 목마르다

by 골든모티브 2008. 12. 26.

문학은 여전히 목마르다

 

역사와 청소년 문학에서 약진 두드러져

 

‘서사의 퇴행’ ‘과거 회귀’ 비판도

올해 문학 분야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동안 변방으로만 여겨져온 청소년소설이 대거 약진한 사실을 들 수 있다. 김려령의 <완득이>를 필두로 한 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이 속속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청소년소설에 대한 일종의 ‘발견’이 이뤄졌다. 청소년소설과 성장소설이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가운데,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과 김형경의 <꽃피는 고래>, 김사과의 <미나>, 이명랑의 <날라리 on the pink> 같은 기성 작가들의 성장소설이 뚜렷한 흐름을 형성했다. 성장소설의 유행은 그동안 (성인)소설과 동화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이야기에 목말라했던 청소년 독자들을 문학 쪽으로 적극 끌어들인다는 평가와 함께, 일종의 ‘서사의 퇴행’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한국 소설의 또 다른 흐름은 ‘역사’였다. 한승원의 <다산>과 김탁환의 <혜초>, 권지예의 <붉은 비단보>, 김별아의 <백범>, 김선우의 <나는 춤이다>, 김다은의 <훈민정음의 비밀>, 심윤경의 <서라벌 사람들>에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까지 역사는 역시 작가들의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임을 다시 입증했다. 그러나 성장소설의 경우와 흡사하게, 역사소설 또한 현실을 대상으로 한 싸움과 미래를 향한 진취적 전망을 안이한 과거 회귀와 맞바꾸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상반기에는 지난해에 출간된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 하반기에는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에 이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소설 시장을 선도했다. 정도상의 소설집 <찔레꽃>과 이대환의 장편 <큰돈과 콘돔>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탈북자들의 남한 자본주의 적응기를 형상화해 주목받았으며, 백영옥의 <스타일>과 박주영의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는 한국형 ‘칙릿’(Chick Literature의 약자·젊은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트렌디 소설)의 흐름을 이어갔다. 박상륭의 <잡설품>과 박범신의 <촐라체>, 그리고 올해 타계한 이청준의 <신화의 시대> 등 중진들의 진중한 장편이 한국 소설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와 조하형의 <조립식 보리수나무>, 그리고 신인 윤고은의 <무중력증후군>처럼 새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장편들 역시 눈길을 끌었다.

 


» ‘한국형 칙릿’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면서 뚜렷한 흐름을 이루었다.

 

소설집도 풍성해서 형제 작가 김원일·김원우의 <오마니별>과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 성석제의 <지금 행복해>, 정지아의 <봄빛>, 조경란의 <풍선을 샀어>,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천운영의 <그녀의 눈물 사용법>,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등이 한국 중·단편 소설의 맥을 이어갔다.

 

원로와 신예의 조화

시 분야에서는 이른바 ‘미래파’ 논쟁의 여진이 남아 있는 가운데, 평년작에 해당하는 소출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은 고은은 신작 시집 <허공>으로써 ‘건재’를 확인했고, 문인수의 <배꼽>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 갈수록 싱싱해지는 상상력과 그윽한 연륜의 결합을 보여주었다.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와 문태준의 <그늘의 발달>이 정통 서정의 한 경지를 입증했다면, 김혜순의 <당신의 첫>과 김근의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강정의 <키스>, 그리고 김경주의 <기담> 등의 시집은 서정의 틀을 벗어나려는 독자적인 발성법을 과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들과 함께 오규원의 <두두>와 박찬의 <외로운 식량>, 두 유고시집 역시 기록해둘 만하다.

소설과 시에 비해 소홀히 취급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산문과 평론에서도 알찬 성과가 이어졌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의 <바다의 기별>과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 김인숙의 <제국의 뒷길을 걷다> 등이 산문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면, 김윤식의 <백철 연구>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는 원로 국문학자의 ‘자전적’ 연구서와 신예 평론가의 야심찬 첫 평론집으로서 각각 주목받았다.

 
» 그동안 변방으로만 여겨져온 청소년소설이 대거 약진했다. 그 대표적인 소설 <완득이>

 

공지영은 딸에게 주는 편지 형식의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인터뷰집 <괜찮다, 다 괜찮다>를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올렸으며, 이외수 역시 산문집 <하악하악>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면서 식지 않는 인기를 다시 확인했다. 이 밖에 교사 시인 김용택의 교직 퇴임을 기념하는 헌정 문집 <어른아이 김용택>,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지음) 발간 30주년 기념 문집 <침묵과 사랑>과 같은 ‘오마주’ 성격의 책들도 눈길을 끌었다.

 

일본 소설 붐이 주춤한 가운데, 에쿠니 가오리만은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집 <장미 비파 레몬>으로 한국 독자의 사랑을 재확인했다. 역시 한국에서 통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11월에 번역 출간된 <신> 제1부로 또다시 바람을 일으켰으며,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화 덕분에 국내판 출간 6년 만에 새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리버 보이>로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한 팀 보울러의 <스타시커>와 <스쿼시>, 그리고 미국 작가 바버라 오코너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같은 외국 성장소설들 역시 국내의 성장소설 붐에 올라타 많은 독자들과 만났다.

 

20여 년의 대장정 끝내는 <만인보>

2009년에는 현재 인터넷에 연재 중인 공지영·정이현·박민규·백영옥·이기호 등의 장편이 책으로 나올 예정이며, 박범신과 김훈·공선옥·정지아·이승우·하성란 등의 장편 역시 선을 보이게 된다.

고은의 <만인보>는 20여 년간의 대장정 끝에 내년에 모두 30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며, 고은과 마찬가지로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았던 황동규, 그리고 김용택·정일근·김기택·송찬호·나희덕 등의 신작 시집도 출간 대기 중이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공지영·김용택·안도현의 산문도 연초에 책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안도현은 판매 부수 100만에 육박하는 베스트셀러 <연어>의 속편 역시 준비하고 있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2008.12.26 제741호] 한겨레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