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태어나는 자리]⑥
거울…왜 거기 있는가, 거울속에서 어떤사람이 쳐다보고 있었다 | ||||||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 어느 날, 불현듯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문득 낯선 존재가 되었다. 누워있던 작은 방은 막막한 바다가 되었고, 나는 뗏목 위에 누워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문득 내 존재가 서러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 없으며, 나의 삶에 대한 주권도 전무하다는 느낌에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가위눌린 듯 한참을 누워있다가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서는 어떤 사람(타자)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가끔 거울 속의 타자에 놀라고, 서씨는 지금도 밖으로 ‘그’를 찾아다니고 있다. 아무리 봐도 낯설기에 고흐(1853~90)는 좋은 거울을 샀고, 40여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비슷한 시기 유럽의 표현주의를 주도했던 제임스 앙소르(1860~1949)와 막스 베크만(1884~1950)은 각각 평생 112점과 80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반대로 우리는 또 서씨처럼 골목길 이주노동자의 불안한 표정에서, 다리 아래로 목을 웅크린 철새의 자세에서, 그리고 불타버려 재만 남은 남대문에서 우리 자신을 만난다. 우리는 거울 속에서 타자를 만나고, 타자에게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성찰하는 자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지만,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거울’만을 이야기하기로 하자. “나는 누구인가.” 조건과 태생을 따져보고, 살아온 생애를 하나하나 떠올리고, 거울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점점 더 낯설어진다. 몇 권의 소설을 쓸 수 있고 10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도 모자랄 거 같은 ‘나의 정체’는 의외로 짧은 시구에서 그 면목이 드러난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八割이 바람이다. - 서정주· ‘자화상(自畵像)’ 중에서 내 삶의 내력은 ‘애비는 종’과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는 두 구절로 해결되었다. 여기서 ‘종’과 ‘바람’은 상징이며, 그것은 개념어가 담을 수 없는 복잡하면서도 상호 모순적인 의미를 포괄한다. 걸치고 있는 것을 다 벗고 나면 알몸이 남고, 문장에서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나면 존재(명사)와 행위(동사)만 남는다. 그리고 삶에서 부수적인 것들을 다 덜어내고 나면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서정주의 ‘종’과 ‘바람’은 그렇게 다 덜어내고 남은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잉태하기 위하여 / 그는 수많은 풍경을 학살한다(허만하, ‘장미의 가시·언어의 가시’)”고 했다. ‘종’과 ‘바람’은 그렇게 잉태되어 탄생한 것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것이니 어찌 그것이 슬프게 반짝이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서 자신에 대한 애착은 그 애착을 버릴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는 패러독스가 성립된다. 이하(李賀) 같은 천재도 내려다보니, 해동(海東)에선 더욱 더 뛰어나구나. 이름 높아 헛되이 기려졌지만, 네 삶에서 만난 자 누구이더냐? 네 모습은 지극히 자그마하고, 네 말은 또 너무도 어리석으니, 의당 너는 네 몸을 두어야 하리, 거칠고 후미진 산골짝 안에. 당나라의 천재 시인 이하(李賀)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후미진 곳에 버려진 존재가 그가 파악한 자신의 모습이다. 김시습은 자화상을 그린 뒤 몇 줄 시를 적어놓고, 그림 속 자신을 보고 이야기를 건네며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남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남다른 자기애 때문이다. 그들은 거울을 보면서 끊임없이 자기 안의 자기를 호출한다. 역관 출신으로 이언진(1740~66)이라는 이가 있었다. 옛 성현의 길을 가지 않고 뒷 세상의 진짜 성인이 되기를 꿈꾸었다. 27살 젊은 나이에 죽어가면서 자신이 지은 대부분의 시문을 불살라 없앴다. 둬봐야 보고 이해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너무 오만하여 일찍 죽었다는 평까지 들었다. 하지만 한 시대 그 재주를 아끼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스승 이용휴는 필부 한 사람의 죽음에도 세상에 사람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애도하였다. 이언진도 자신의 초상화에 짧은 글을 붙였다. 정승 약간 명과, 과거 장원 약간 명. 사람들은 영화롭다 생각하지만, 쯧쯧, 어느 놈의 궁색한 유자(儒者)가, 감히 천고 문형(文衡)을 잡고 있는가! 세상엔 정승도 몇 명 있고, 과거 때마다 배출되는 장원급제자도 여러 명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그들을 영화롭게 여긴다. 하지만 이언진은 혀를 찼다. 뭘 그렇게 뻐기는지, 또 뭘 그렇게 대단하게 보는지, 또 어떤 생각 짧고 솜씨 없는 유자(儒者)가 대제학(文衡) 자리를 차고 있는지. 깊은 물은 말이 없는데 도랑들이 자랑을 다투고, 사자의 그림자 아니 보이는 곳 여우들이 설치는 격이다. 이언진의 눈에 세상은 전도(顚倒) 그 자체이다. 그는 아마도 종종 자신의 초상화를 지긋이 바라보며, 그 눈 속에서 자신을 찾았을 것이다. 이러한 미술 사조와 흐름을 같이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표제는 그림(自畵像)으로 하되 내용은 시(詩)로 하는 작품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서정주의 ‘자화상’은 1937년에 지어졌다. 굳이 산모퉁이 돌아 인적 없는 외딴 우물을 찾아 남 몰래 조용히 그 안을 들여다보고, 거기 비친 사람을 미워하고 그리워하기를 반복하는 윤동주의 ‘자화상’은 1941년에 탄생했다. 거기에는 자애(自愛)와 자학(自虐)을 반복하는 식민지 지식인 윤동주가 있고, 역시 자신에 대한 신뢰와 불신을 되풀이하는 지금의 ‘나’가 있다. 햇빛이 못 미치는 우물 속 깊은 곳의 물을 퍼올리는 듯, 이러한 시들은 대부분 자기 내면의 심연을 투시하여 강렬하고 단호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1970년대 중반 최승자는 뱀으로 자신을 비유하며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라고 슬프게 말했고, 90년대 이승훈은 “나는 남이다”라며 자신이 어디서든 타자임을 기운 없는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최근 이수익은 자신의 자리에 ‘핏빛 자해(自害)의 울음소리를 내는 종’을 대신 놓았다. 모두 거울에 비친 자신을 그려낸 시의 자화상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루한 소설을 읽을 때, 낯선 인물들의 심리는 마치 내 마음 속을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얼굴박물관에 가면 석상과 목상의 수백 가지 표정이 나도 모르게 내 얼굴로 전이된다. 마찬가지로 나는 김시습에게서 ‘불화(不和)하는 나’를 보고, 이언진에게서 ‘혼자 오만하다가 좌절하는 나’를 만난다. 바람을 맞아 주름이 깊게 팬 얼굴과 남 몰래 우물을 들여다보는 수줍은 마음도 모두 나의 것이 된다. 옛말에 물에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비추라고 했다. 사회의 풍요를 가늠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다채로운 표정과 자세이다. 내가 나의 얼굴을 그리지 않아도 시시각각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자화상이 많았으면 좋겠다. 말이 넘쳐 피곤한 세상이다. 나도 좋은 거울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 이승수 | 한양대 강사/일러스트 | 김상민기자 〉 |
경향신문, 200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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