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동시 - 제 28 편]
하느님에게-박두순
때맞춰 비를 내리시고
동네 골목길을
청소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가슴아픈 일이 있어요.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셔요.
구석에 사는 것만 해도
불쌍하잖아요
가끔 굶는다는 소식도 들리는데요.
- ▲ 일러스트=윤종태
시평
우리 주위에 가득 찬 하느님과의 '대화'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기도를 한다. 아버지가 근엄하게 주기도문을 외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러자 아들이 재빨리 덧붙인다. "일용할 버터도 주옵시고…." 하느님의 입장에선 누구의 기도가 사랑스러울까?
이 시의 화자도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고 있다. 그는 '일용할 양식'에 이어 '버터'까지 달라고 했던 아들처럼 '때맞춰 비를 내려주신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한편,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라고 요구한다. 비 때문에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이런 주문을 넣을 정도라면 그의 하느님이 단순한 경배의 대상이기만 할 리가 없다. 그의 하느님은 분명 일용할 양식과 더불어 그 빵에 발라 먹을 버터마저도 내려주실 분임에 틀림없다.
박두순(58)은 1977년 등단한 이래 8권의 동시집을 펴내기까지 일상에 만연해 있는 이 '하느님', 즉 우주적 조화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묘파해온 시인이다. "여기도 하느님 마을 한 귀퉁이/ 흙마당에 봄비가 다녀가고 있다/ 몇 개 발자국들도 다녀갔다, 누구의 것일까// 하느님은 발자국 깊이를 보고도/ 이 세상 마당에/ 누가 왔다 갔는지 안다// 마당을 나서는 우리 일행을 보고/ 너희들이구나 하며/ 후박나무 옷섶의 빗방울을 내려/ 어깨를 툭툭 쳤다// 하느님이 오늘 보신/ 내 발자국은 어떨까."(〈마당-송광사에서〉) 이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 내린 다음날의 산사 마당에 찍힌 발자국들이나 느닷없이 빗물을 떨어뜨리는 후박나무 이파리 등은 그에겐 도처에 깃들인 하느님의 정령들이다.
그는 시인이란 무릇 누구보다도 먼저 이 우주적 정령을 알아보고 그와 더불어 자기 내면을 갈고 닦는 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의 시들은 신의 섭리가 깃들인 자연과의 교감의 산물이자 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마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기사단의 고투에 다름 아니다. 늦은 밤, 창문을 열고 뜰을 훤하게 비추는 달을 바라볼 때, 그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달을 꼭 껴안았다/ 달도 나를 꼭 껴안았다"(〈달과〉). 이 시의 제목을 보라. 〈달〉이 아니라 〈달과〉다! 내가 달을 껴안았을 때, 달도 나를 껴안는 세계. 나와 달, 달과 내가 공존하는 세계. 이 물아일체의 황홀경을 위하여 우리는 '시'를 갈구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하느님에게 '개미네 마을'을 그대로 두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이 시의 화자도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고 있다. 그는 '일용할 양식'에 이어 '버터'까지 달라고 했던 아들처럼 '때맞춰 비를 내려주신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한편,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라고 요구한다. 비 때문에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이런 주문을 넣을 정도라면 그의 하느님이 단순한 경배의 대상이기만 할 리가 없다. 그의 하느님은 분명 일용할 양식과 더불어 그 빵에 발라 먹을 버터마저도 내려주실 분임에 틀림없다.
박두순(58)은 1977년 등단한 이래 8권의 동시집을 펴내기까지 일상에 만연해 있는 이 '하느님', 즉 우주적 조화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묘파해온 시인이다. "여기도 하느님 마을 한 귀퉁이/ 흙마당에 봄비가 다녀가고 있다/ 몇 개 발자국들도 다녀갔다, 누구의 것일까// 하느님은 발자국 깊이를 보고도/ 이 세상 마당에/ 누가 왔다 갔는지 안다// 마당을 나서는 우리 일행을 보고/ 너희들이구나 하며/ 후박나무 옷섶의 빗방울을 내려/ 어깨를 툭툭 쳤다// 하느님이 오늘 보신/ 내 발자국은 어떨까."(〈마당-송광사에서〉) 이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 내린 다음날의 산사 마당에 찍힌 발자국들이나 느닷없이 빗물을 떨어뜨리는 후박나무 이파리 등은 그에겐 도처에 깃들인 하느님의 정령들이다.
그는 시인이란 무릇 누구보다도 먼저 이 우주적 정령을 알아보고 그와 더불어 자기 내면을 갈고 닦는 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의 시들은 신의 섭리가 깃들인 자연과의 교감의 산물이자 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마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기사단의 고투에 다름 아니다. 늦은 밤, 창문을 열고 뜰을 훤하게 비추는 달을 바라볼 때, 그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달을 꼭 껴안았다/ 달도 나를 꼭 껴안았다"(〈달과〉). 이 시의 제목을 보라. 〈달〉이 아니라 〈달과〉다! 내가 달을 껴안았을 때, 달도 나를 껴안는 세계. 나와 달, 달과 내가 공존하는 세계. 이 물아일체의 황홀경을 위하여 우리는 '시'를 갈구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하느님에게 '개미네 마을'을 그대로 두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신수정 문학평론가 : 조선일보,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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