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동시 - 제 30 편]
잡초 뽑기-하청호
풀을 뽑는다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다.
흙 또한
뿌리를 움켜쥐고 있다.
뽑히지 않으려고 푸들거리는 풀
호미 날이 칼 빛으로 빛난다.
풀은 작은 씨앗 몇 개를
몰래
구덩이에 던져 놓는다.
〈1986〉
- ▲ 일러스트=윤종태
시평
대지의 품속에선 그들도 생명체
잡초란 무엇인가.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그것은 "희망하지 않은 장소에 생육하는 초본이나 목본성 식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인간은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끊임없이 잡초를 제거해야만 한다. 잡초는 인간의 목적에 위배되는 암적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규정은 지나치게 '인간본위'다. 잡초의 입장에 서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누가 그들을 '죽어야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겐 그들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만물의 근원인 대지의 품속에선 그들도 엄연히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 시의 표제는 '잡초 뽑기'다. 그러나 이 시의 본문 속에 '잡초'라는 말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청호(65) 시인은 그 말 대신 잡초의 본래적 성질을 가리키는 '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풀'을 뽑을 때, 모든 존재를 송두리째 제거당할 찰나의 존재 일반이 그러하듯, 풀 또한 그 힘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한다. 뿌리는 흙을 움켜쥐고, 흙 또한 뿌리를 놓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움켜쥐는 힘'을 생명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생명에 대한 끈질긴 갈구는 "뽑히지 않으려고 푸들거리는 풀"이라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흙을 '움켜쥐고' 저항하다가 결국에는 뽑혀나가기 일보 직전 뽑히지 않으려고 '푸들거리는' 풀은 급기야 '제거되어 마땅한 대상'에서 '생명을 유린당하는 가여운 존재'로 전환된다. 이제 잡초는 마침내 호미의 날카로운 '칼날'에 뽑혀나갈 수밖에 없는 '문명의 희생양'으로 각인된다. 그러나 풀은 몰래 "작은 씨앗 몇 개"를 구덩이에 남겨둘 줄 안다. 인간의 어떤 이기심 앞에서도 생명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비축할 줄 아는 것이다.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상상력의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이 시는 하청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1972년 등단한 이래 수십 권의 동시집을 상자한 그는 2006년 《초록은 채워지는 빛깔이네》를 선보임으로써 현역시인으로서의 왕성한 활동력 역시 과시한 바 있다. '방정환문학상'과 '윤석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무릎학교/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어머니의 무릎/ 오직 사랑만이 있는/ 무릎학교였다."(〈무릎학교〉) 이 시에서 보듯 어머니 무릎에서의 가르침은 그의 시 근원인 듯도 하다. 어머니는 잡초를 풀로 전환시키는 힘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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