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生家 비석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중국이 중국 옌볜에 있는 시인 윤동주 생가(生家)를 관광지로 개발하며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소개하고 윤동주 시를 중국어로 번역해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 난 6일 오후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시 밍둥촌(明東村)에 있는 윤동주의 생가를 찾은 '세시봉 친구들'의 가수 윤형주(66)씨는 새 단장된 윤동주 생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가에는 그전에 없던 시멘트 벽과 문이 생겼고, 가로 약 4m, 세로 약 2m 크기의 경계석에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적혀 있었다.
윤동주 생가는 룽징시가 우리 돈 9억여원을 들여 4개월간 공사해 정비했으며 작년 8월
준공식을 열었다. 윤동주의 외숙인 김약연이 세운 명동교회에서부터 윤동주 생가까지의 흙길이 대리석으로 바뀌어 말끔해졌지만, 이 과정에서 명동교회
옆 십자가가 옮겨지고 곳곳에 중국어로 번역한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조선족의 국적은 중국이다. 윤동주는 룽징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작품을 한글로 썼으며, 대부분의 작품은
그가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니던 시기와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기, 일본 교토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기에 썼다. 윤동주의 육촌 동생으로 매년 이곳을 찾는다는 가수 윤형주씨는 "윤동주 시인의 원적은
함경북도 회령이며, 북간도로 이주한 것일 뿐 이민을 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중국 국적의 시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
어르신들이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는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라는
구절이 있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중국 국적의 소녀들을 '이국 소녀'라고 일컫는 등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며 "도리어 한글로만 시를 쓰는 등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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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생가 주변 곳곳에는 중국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시비(詩碑)가 놓여 있다. 중국어로 번역돼 돌에 새겨진 윤동주의 시 ‘십자가’. 윤동주가 짓고, 리융이 번역했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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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겨울,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시 밍둥촌(明東村)에 있는 윤동주 생가에는 ‘윤동주 고향집’이라는 팻말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생가 앞 터와 진입로는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이었다(사진 위). 룽징시는 작년 8월 준공식을 열고 윤동주 생가를 관광지로 개발했다. 시멘트로 된 담벼락과 문이 생겼고, 경계석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사진 아래). /전주기전대학 제공,
중국이 그간 방치돼 있던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고 조선족으로 홍보하는 것은 윤 시인을 중국 소수민족의 시인으로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고, 그와 관련된 관광지 개발로 관광 수입을 증대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새로운 형태의 동북공정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윤동주 유족이나 관련 단체는 이를 공식적으로 항의하기를 꺼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족은 "지난 10여년간 윤 시인의 생가를 왕래해왔지만 중국 조선족이라고 명칭을 붙인 건 처음 봤다"면서도 "윤동주에 대한 여러 가지 기념사업이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동주선양회 최태식(54) 회장은 "지금 생가가 있는 지역이 중국 영토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조선족들이 윤동주 시인을 알리기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다가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 삼기 곤란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들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옌볜대학교의 한 교수는 "위대한 시인은 국경을 넘어서 존재하고, 윤동주가 더 많이 알려지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시인인 동시에 중국 조선족의 시인이라고 하는 게 더 좋지 않으냐"고 말했다.
- 윤동주 生家 비석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chosun.com 2013.8.14
[노트북을 열며] 조선족 시인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서시’는 우리나라 성인이라면 모를 리 없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 시를 지은 사람이 ‘중국 조선족 윤동주’라고 주장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주 취재차 들렀던 중국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 포장된 들길을 달려 도착한 밍둥춘(明東村) 윤동주 생가는 새 단장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에 없던 시멘트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고, 정문도 만들어 놓았다. 정문 옆 바위에는 ‘中國朝鮮族愛國詩人尹東柱故居(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조선족의 국적은 중국이다. ‘조선족 시인 윤동주’라는 말에는 결국 그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동행한 지인들이 한마디씩 했다. ‘고구려 역사까지 빼앗으려 하더니 이제는 시인까지?’ ‘그러면 교과서의 원작자를 중국 조선족 윤동주로 바꿔야 하나?’ 윤동주는 분명 우리 한민족의 시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 룽징에서 자랐지만 왕성하게 작품 생활을 했던 시기에는 평양(숭실중학), 서울(연희전문), 교토(유학) 등에서 보냈다. 우리 민족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했지, 중국인을 위해 붓을 들지는 않았다. 모든 작품은 아름다운 한글로 쓰여졌다. 이런 그가 중국인이라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 조선족 동포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조선족 윤동주’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함께 방문한 한 옌볜대 교수(조선족)는 “조선족 문인들이 새 단장 사업을 주도했다”며 “바위 글씨도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주장을 지낸 이덕수씨가 쓴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 단장된 윤동주 생가는 위기에 빠진 조선족 커뮤니티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조선족 사회는 지금 위기다. 젊은이들이 외부로 나가면서 옌볜지역 주민 중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7%에 불과하다. 1953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중국의 보이지 않는 소수민족 동화정책으로 민족 정체성은 약화되고 있다. 현지에서 ‘조선족 윤동주’는 정체성 회복의 한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동행 교수는 “한국이 옌볜지역 조선족 사회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되물었다. ‘중국 다른 곳에는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옌벤지역에는 제대로 된 투자 프로젝트 하나 없는 게 현실 아니냐’는 지적이다. 우리가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 조선족 동포들은 그렇게 멀어지고 있다. 후대 조선족들은 ‘윤동주는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통일을 준비하고 동북아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 지금 말이다. 혹 우리는 후대들에게 ‘한 점 부끄럼’을 남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룽징에서> 중앙일보, 2012.9.10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항일시인 윤동주가 중국 애국시인?
중국에서 윤동주 시인을 중국의 애국시인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있습니다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26275&ref=D
news.kbs 201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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