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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詩와 시인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정호승/해설-김동기

by 골든모티브 2021. 1. 15.

[가슴으로 읽는 행복한 시4]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찾는 시인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정호승(1950~)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놓은

강아지도 한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강아지의 오줌이 스며들 때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이 개새끼라고 소리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개나 사람이나 풀잎이나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산에 개를 데려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멱살잡이까지 했던 내가

왜 강아지를 향해 구두를 내던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데

나는 한마리 강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밥만 많이 먹고 강아지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까

강아지는 이미 의자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강아지가 먼저 나를 용서할까봐 두려워라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뜨거운 고백과 성찰, 깊은 위로

시인이 한 편의 시를 남기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정호승 시인은 인문학 강의를 참 많이 한다. 그만큼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로 서정적인 시에 대해 독자들과 공감을 하며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그의 시의 큰 흐름이며 지금까지도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최근의 시집 <당신을 찾아서> 일흔이 된 시인의 자신을 스스로 기념하는 고해성사이며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오늘도 산수유 붉은 열매 같은 시인의 시를 읽으며 눈부신 아침을 맞이한다.

이 시는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수록된 작품으로 일상적인 삶 속에서 발견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배어 있다. 윤동주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작가는 집 밖에서는 개나 사람이나 풀잎이나 생명의 가치는 다 똑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화자는 구두에 오줌을 싼 강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구두를 내던지며 화를 내는 위선적이고 옹졸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며 이를 반성하고 있다. 러한 이중적인 모습은 화자를 부끄럽게 한다.

입으로는 사랑과 용서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욕설과 폭력을 일삼는 인간의 위선적인 태도를 반성하며 자기 성찰과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보여 주고 있다.

‘고래를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 ‘슬픔이 기쁨에게’, ‘상처는 스승이다’ 등 여러 편이 중·고교 국어와 문학교과서에 실려 있다. - 한서고  국어교사 김동기

 

<시작노트> 정호승 시인

반려견 바둑이가 간혹 내 구두에 오줌을 싸놓을 때가 있었다. 내가 바둑이를 미워한 것도 아니었는데 바둑이는 꼭 현관에 벗어놓은 내 구두 안에 슬그머니 오줌을 싸놓고는 시침미를 뚝 떼고 모른척했다. 바둑이가 내 구두에 오줌을 싸놓았다는 사실은 급히 출근하려고 구두를 막 신는 순간, 갑자기 구두 밑바닥에서부터 양말을 통해 차가운 물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끼게 되면 바둑이가 오줌을 싸놓았다는 것을 그제야 알고 입에서 욕부터 튀어나왔다.

바둑이, 너 이 새끼! 또 오줌 쌌구나. 아빠한테 맞을래?”

내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면 바둑이는 재빨리 식탁 의자 밑이나 거실 구석진 곳으로 숨어버려 보이지도 않았다.

바둑이 이 새끼, 내가 그냥 가만 두나봐라.’

마치 바둑이가 옆에 있기라도 하듯 중얼거리다가 밀린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가방을 열고 책과 노트를 꺼내자 뜻밖에 윤동주(尹東柱)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딸려 나왔다.

순간, 어떤 부끄러움과 미안함 같은 감정이 한데 치밀었다.

내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던져버리다니……

윤동주가 누구인가. 우리나라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아닌가. 그것도 일제 강점기 때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스물아홉의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체 실험을 당한 끝에 순절한 애국시인이 아닌가. 나아가 한국시문학사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맑고 순결한 등불과 같은 존재가 바로 윤동주 시인이 아닌가.

그날 나는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집어던졌다는 사실에 하루 종일 우울했다. 개의 생리적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내 구두에 오줌을 누었다는 사실만으로 다짜고짜 욕을 퍼부었다는 사실이 무척 부끄러웠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사랑의 시인이며, 남과 나를 용서하는 용서의 시인인 윤동주 시인을 존경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얼마나 인내심이 부족한 인간인지, ‘개 한 마리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그 누구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 자신이 부끄럽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졌다.

바둑아 ,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다오.”

어쩌면 바둑이가 먼저 나를 용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호승 시인 <약력>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했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별들은 따뜻하다』 『새벽편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동서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