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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正史·소설·영화 삼각비교

by 골든모티브 2009. 2. 7.

'적벽대전' 正史·소설·영화 삼각비교

 

여자 하나때문에 '적벽대전'이 일어났다고?

 

 

홍콩 출신 오우삼(吳宇森) 감독의 '삼국지(三國志) 2부작'을 완결짓는 영화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원제 赤壁―決戰天下)'을 본 관객들은 대개 고개를 갸웃거린다. 영화와 원작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우삼의 삼국지와 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 정사(正史)로 통하는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비교해봤다.

 

①유비·손권의 '연합군'은 존재했나?

영화에서 유비와 손권 진영은 동맹군을 결성해 함께 군사훈련을 벌이고 조조에 대항해 공동 작전도 펼친다. 당시는 아직 위·오·촉 3국이 세워지지 않은 시점이다. 주유(양조위 분)와 조자룡(호군 분)이 최후의 전투에서 함께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오우삼의 전작(前作) 영화 '첩혈쌍웅'에서 나란히 총을 쏘는 주윤발·이수현을 연상케 한다.

반면 소설에서 적벽대전은 조조와 주유의 싸움이고 유비는 팔짱만 끼고 있다가 전쟁의 승패가 갈리고 나서야 군사를 출동해 형주를 차지한다. 정사 '삼국지' 위서(魏書)는 적벽에서 조조와 싸운 사람이 유비라고 기록했고 촉서(蜀書)와 오서(吳書)는 주유·정보가 유비와 함께 적벽으로 진격했다고 썼다. 이 부분은 영화가 오히려 소설보다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깝다.

 

②제갈량과 주유, 질투인가 우정인가?

 

▲ 영화‘적벽대전 2’는 제갈량(금성무 분)이 동남풍을 불러 조조군을 화공(火攻)으로 격파했다는 소설 속 얘기를‘동남풍이 부는 시각을 계산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역사에는 이 이야기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 쇼박스 제공
소설은 주유의 캐릭터를 질투의 화신인 것처럼 다뤘다. 제갈량의 재주를 시기한 나머지 여러 차례 그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영화는 끝까지 두 사람의 우정이 지속됐음을 강조하면서도 "언젠가 전장에서 만날 것"이라는 제갈량(금성무 분)의 대사를 통해 훗날 경쟁관계로 돌아설 것임을 암시한다.

정작 정사에는 두 사람이 언제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한 기록이 한줄도 없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비롯한 온갖 신묘한 계책을 내놓았다는 소설과는 달리 정사에 기록된 적벽대전 당시 그의 역할은 손권을 설득하는 데서 끝난다. 영화와 소설에 모두 나오는 '화살 10만개 얻은 계책'에 대해서 중국 호사가들은 "그만한 화살을 얻으려면 짚풀 10만근과 1200m 길이의 선단이 필요하므로 불가능하다"고 계산하기도 했다.


③전쟁의 원인이 미녀 한명 때문?

교공의 두 딸인 대교와 소교가 각각 손책과 주유의 아내가 됐으며 두 여인 모두 절세미녀였다는 것은 정사와 소설이 일치한다. 소설에서는 제갈량이 조조의 '동작대부(銅雀臺賦)' 중 다리(橋)를 교(喬)씨로 고쳐 읽어 조조가 마치 두 여인을 취하려 하는 것처럼 주유를 속여 전쟁을 결심하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 주유의 아내 소교(오른쪽)가 전투 직전 조조를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역사에도 소설에도 나오지 않는 영화만의‘창작’이다.

영화는 한술 더 떠 소교(임지령 분)에 대한 조조(장풍의 분)의 야심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애초부터 조조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가 그녀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유의 아내가 미인인 소교'라는 것말고는 모두 다 허구다. 정사 원문을 확인해 보니 소설이나 영화 크레딧과는 달리 교씨의 '교'는 다리 교(橋)였다.


④연환계와 고육계는 어디로 갔나?

소설에서 주유는 가짜 문서를 유출시켜 조조측 수군 장수 채모·장윤을 죽게 하고 노장 황개를 채찍질해 조조에게 거짓 항복하게 하는 고육계(苦肉計)를 쓴다. 제갈량의 옛 친구 방통은 조조에게 가 전함들을 쇠고리로 연결하는 연환계(連環計)를 쓴다.

영화는 채모와 장윤의 죽음말고는 이 모든 이야기를 생략해 버렸다. 방통은 등장하지도 않고 조조군은 스스로 배를 연결하며 황개가 고육계를 자청하자 주유는 "채찍을 맞고 어떻게 싸우겠느냐"고 말린다. 사실 소설의 계책들은 거의 다 허구이며 정사에는 '황개가 거짓으로 항복했다'는 것만 나온다. 영화는 이 대목조차 여주인공인 소교의 몫으로 돌려 버린다. 소교가 홀로 조조를 찾아가 차를 끓여 올리며 동남풍이 불 시각까지 지연작전을 펼친다는 것이다.

 

⑤적벽대전 승패의 진짜 이유는?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조조군의 전염병은 소설에서는 '풍토가 맞지 않아 병이 생겼다'는 정도로 간략하게 언급된 부분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정사 '삼국지' 무제기(武帝記)에는 '이때 큰 돌림병이 생겨 관리와 병사가 많이 죽었으므로 (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於是大疫, 吏士多死者, 乃引軍還)'라고 쓰여 있다.

중국의 일부 삼국지 전문가들은 이 전염병이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결정적 원인이라고 본다. 그 전염병의 정체는 다름아닌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였다는 설도 있다. '조조가 전염병 때문에 스스로 배를 불태우고 돌아왔다'는 기록도 있다. '삼국지 강의'를 쓴 이중천(易中天)은 "적벽에서 패한 조조가 남은 배들을 (적군의 수중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불태웠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해석을 내린다.

 

⑥그리고 최후의 '첩혈영웅'들은…

수전(水戰)이 공성전(攻城戰)으로 바뀌는 영화의 전투 장면은 전함들을 잃고 급히 도망가야 할 조조의 입장에서 볼 때 이치에 맞지 않을뿐더러 역사적 사실에도 어긋난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한 장소에 모여 펼치는 마지막의 현란한 대결 장면은 삼국지의 영웅들이 주윤발·적룡·장국영의 '영웅본색'으로부터 시작된 오우삼의 비장미 넘치는 세계에 완전히 편입되는 긴장감을 연출한다. 어차피 조조가 화용도에서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했다는 소설의 에피소드가 가공이므로 새로운 결말을 구성한 것이다.

오우삼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비둘기는 이 영화에선 화면 구성을 위한 장치에서 벗어나 줄거리와 관련된 임무를 수행한다. "이번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는 주유의 심각한 대사는 '다 미쳤다'(콰이강의 다리) '전쟁에서 지는 것 다음으로 슬픈 것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워털루) 등 끝에 가서 꼭 한 마디씩 반전(反戰) 메시지를 날리기 일쑤인 숱한 전쟁영화들에서 익히 보아 온 것들이다./조선일보,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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