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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문인 행사

고은시인과 인터뷰

by 골든모티브 2011. 3. 3.

고은시인과 인터뷰

 

만인보萬人譜의 저자 25년의 집필, 전30권 4001편의 만인과 시대에 바치는 연작시편

 

시로 쓴 인물대서사시 '한국 문학사 최대의 연작시'

 

진행 최원홍 주간: 시대와 역사 앞에 일관되게 살기가 쉽지 않은 지난 우리 현실에서 실천하는 지성인으로, 문학인으로 한 시대를 살아오신 고은 선생님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특별히 학생 기자들과 함께 선생님을 모시고 좋은 말씀을 듣겠습니다.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제가 뵈니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 같은데 혹시 비결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고은 시인: 비결이 없습니다. 밥이 참 맛있고 또 일 년에 한 두 번 씩 마시는 술이 아주 맛있고, 또 그리고 책이 아주 맛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옛날에 네발로 기어 다니던 기억을 가지고 있죠. 진화되어서 두발로 다니는데 두발로 걸어 다니는 행복은 어떤 행복과 견줄 수가 없죠. 이런 것이 생명의 비법입니다.

보통은 누구나 걸어 다니는 줄로 아는데 바로 이 걷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인생이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그게 건강의 비결이시라고. 또 아까 말씀하신대로 공기도 맛을 느낄 줄 알고 밥도 맛을 느낄 줄 알고 그게 건강의 비결이신 것 같습니다.

 

최원홍 주간: 제가 이제 하나 만 더 여쭙고 그다음에 우리 학생들이 궁금한 게 있다 해서 한사람 씩 이렇게 질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평생 시를 쓰셨으니까 좀 엉뚱한 질문 같지만 선생님께서 시를 쓰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고은 시인: 그 대답은 오히려 길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는 나의 존재 이유가 되기 때문에 존재이유지요.

최원홍 주간: 선생님께서는 바로 선생님을 지탱하게 한 존재 그 자체가 시를 통해서 표현된다는 말씀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학생이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여쭈세요.

김민주 학생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한서고등학교 3학년 김민주입니다. 저희 청소년들은 시를 모의고사라는 시험에서 지문으로만 접하게 되요. 그래서 감상보다는 분석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혹시 참된 시 읽기 방법을 제시 해 주실 수 있는지요?

고은 시인: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시가 좀 멀어졌다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시를 머리 안에 집어넣기 때문이고요. 시를 가슴으로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도 있지요. 분석이라고 하는 잘게 부수는 것이 있잖아요. 그러나 하나의 시속에는 특히 우리 나라말은 이어져서 서양의 언어처럼 벽돌이 쌓여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무엇이 붙어있어서 접붙이는 역할을 하죠. 근데 이것을 해석할 때는 잘라서 하니까 마치 도마뱀을 잘라서 그 자체만 꿈틀거리다가 죽어버린 듯이, 분석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뭐라 그럴까 아주 심한경우에는 분석은 살해입니다. 살해. 그래서 시를 죽여 버릴 수가 있지요. 그리고 또 아주 여러 의미를 펼쳐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근데 이런 의미를 다른 의미에 부착시켜서 분석을 하지요. 분석하는 사람의 안경과 렌즈의 프리즘을 통해서 전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면 시가 아주 복잡해지죠. 어렵고. 또 시는 분명히 가슴의 행위 또는 예술의 문제인데 그것을 학문에 도착시키죠. 그렇게 되면 시가 싫어지죠, 그렇죠? 가슴으로 와야 되는데 그것을 딱 잘라서 분석하고 해석하고. 물론 교과과정에서 시가 텍스트가 돼서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객관화 시키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은 그쪽으로 모든 시험이 시의 의미가 다르게 되지요. 시란 예술의 행위인데 학문의 행위로 도착시키죠. 그러면 시가 싫어지지요? 그렇죠? 그러면 시는 어려워 질 수밖에 없지요. 물론 시가 교과과정에서 텍스트가 되어 풀이되는 일도 있어야 합니다. 냉혹하게 객관화해서 분석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시의 의미행위가 그쪽으로 귀착된다면 시가 어려워지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질문은 우리가 시를 만날 때 매우 중요한 기본자세가 되는 질문입니다.

 

김정달 학생기자: 저는 선생님께서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진실한 친구를 사귀고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셨고 특히 백범일지 등을 읽어야 한다고 조언을 했던 것을 기억해요. 그 외에 청소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명저들은 무엇이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고은 시인: 나는 내 생애의 전반들은 책을 부정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지고 있던 책도 불태운 적도 있고 ‘책에 내가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생명체에 진행이 책에 대해 규정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책을 아주 싫어한 적이 있었지요. 사물이나 세계를 직관할 때는 서적에 있는 진술 행위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핵심과 내가 직접 만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비문자적인 행위입니다. 비언어적인 행위로 언어도 필요 없는 관계, 이렇게 되는 것인데 이럴 때 책이라는 것은 걸림돌이 되지요. 그래서 내 삶의 전반에는 책과 멀리하는 삶을 산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마치 보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 후반의 인생은 책에 파묻혀 있지요. 내 무덤은,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마치 책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책하고 아주 친구가 되어 있지요. 지금 그래서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한테 책을 권하고 싶은 의욕이 끊임없는 생깁니다.

굳이 그 많은 책 중에서 백범일지를 특별히 권하는 것은 아니지요. 편의상 지금 젊은 벗들이 행여나 우리의 정체성으로 자유롭게 떠나서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지키려했던 민족이나 사회공동체 이런 것들로부터 떠나서 세계 속의 어떤 파편들과 만나고 있음을 느껴질 때 이 사람들에게 자기의 아버지, 할머니 얼마나 잊어버린 나라와 흩어져버린 겨레의 아픔 속에, 거기에서 핏줄을 받고 젊은이들이 유지되는데 그때 그들에게 우리 역사의 기억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백범일지 같은 아주 쉽게 진술된 책이 참 좋겠다. 거기에는 어떤 우리가 문체론이나 실기이론에서 배우는 수사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수수한 말만 거기에 있습니다. 최고의 레토릭이기도 하지요.

백범일지는 어떤 위대한 작가가 쓴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를 지극히 사랑하는 한 애국자의 정직한 표현이 있습니다. 다른 애국자들이 쓴 것들을 보면 자기가 무엇을 해냈다는 과시도 있고 자기자랑도 있고 그러는데 여기에는 극도로 그런 것들이 제어되어 있어요. 자기자랑을 안하고 정직하게 드러내는 정직성이 있어서 참 귀한 것이다 해서 그걸 권하고 싶지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텔레비전 연예프로그램을 보면 개그문화가 넘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껄이고 웃고 즐기고 합니다. 나는 여러분 젊은 여러분들에게 외로움이라는지 고뇌라든지에 빠지라고 특별히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희로애락 중에서 가장 자기의 참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슬픔 같은 것이 너무 빠져있어요. 그저 낄낄거리고 웃고 가치에 대해서 흘려버리고, 광고를 보면 전부 웃고 있지 않습니까? 백범일지를 보면 거기에는 부모의 아픔을 위해서 허벅지를 살을 뜯어서 먹인다든지 손가락의 피를 흘려서 먹인다든지 좀 야만적인 우리 옛날 전근대적인 행태도 있지만 그런 거 몇 개말고는 참으로 우리에게 그분이 살아오는 자취를 보고 울게 됩니다. 일 년이나 이 년에 한번 씩 울음이 없다하면 그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그 책을 보고 혼자 밤에 엉엉 울 수가 있습니다. 울음의 문서이기도 합니다. 한번쯤 인간이 정신이 승화되기 위해서 울어야 되요. 싫건 울고 나면 맑고 갠 하늘처럼 환해지지요. 그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한 번씩 울음이 필요할 때면 골방에서 몸과 마음이 정화된 느낌을 받지요. 그래서 권합니다.

신동주 학생기자: 한서고등학교 2학년 신동주입니다. 고은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쓰셨지요. 그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신지요?

고은 시인: 저는 애착이 가는 작품이 없습니다. 나는 내 작품을 하나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쓴 작품이 나에게는 첫 작품이고 가장 좋은 작품이지요. 그리고 내릴 쓰면 오늘 작품은 떠나버리지요. 기억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애착을 허허허. 어떤 작품 하나를 특별히 집착해서 그럼 다른 작품들이 뭇지요, 나를 사랑하는지.

이주현 학생기자: 한서고등학교 이주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많은 작품을 쓰시는데요. 이렇게 왕성하게 창작하시는 비결은 무엇인지요?

고은 시인: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는 일상을 잔치로 삼고 삽니다. 삶이 늘 잔치이고 축제입니다. 그래서 글 쓴다는 게 노동이아니라 일종의 춤이지요. 신명이 나서 흥을 일으키는 것. 흥이라는 것은 땅에 지신이 있잖아요? 우리 조상들은 그냥 땅을 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땅에 신이 있습니다. 골짜기에도 낙엽에도 모든 사물에 신이 있고 조상들은 이렇게 신의 의미를 부여하지요. 땅에 지신이 있는데 발효가 잘된 술을 바칩니다. 그러면 지신이 마시고 취해서 춤을 추며 흥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나도 함께 좋아하는 것. 이게 흥 자 안에 들어있는 의미가 있지요. 나는 가능한 일상 하루하루를 흥겹고 축제로 신명나게 글을 씁니다. 들에 일하는 농부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김도 신나게 매고 하지 않습니까? 글을 쓰는 이런 행위가 바로 이런 춤이지요. 춤이고 잔치이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최원홍 주간: 다음에는 유동희 학생이 선생님의 시를 낭송하겠다고 합니다. 제목은 화살입니다.

유동희 학생기자: <낭송>
화살 (고은)
화살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
(중략)

고은 시인: 그 시는 지금 좀 어울리지 않네. 허허.
그 시는 70년대 아주 준엄한 비인간화 시대가 있을 때 거기에 맞서 대응하는 인간의 자세가 투영된 건데 지금 읽으니까 난 무섭네. 허허.

최원홍 주간: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듣게 되어서 기쁘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셔서 저희들을 위해 좋은 작품 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국작가회의 2011년도 정기총회 상상하라 그리고 싸워라. 장소 : 서울시 중부여성 발전센터 / 김동기 편집장

2011-03-03 오후 01:15:01   © munha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