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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詩와 시인

김춘수의 꽃 - 시인들 최고 애송시

by 골든모티브 2008. 1. 30.

시인들 최고 애송시는 ‘김춘수의 꽃’

 

시인별로는 서정주의 시가 가장 많이 애송

 

 

현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김춘수의 ‘꽃’, 가장 애송하는 시인은 서정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시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가을호(2004)에 실린 기획특집 ‘시인들이 좋아하는 애송시’에 따르면 국내 현역 시인 246명을 대상으로 애송시 3편씩을 조사한 결과, 가장 좋아하는 시는 23명의 시인이 꼽은 김춘수의 ‘꽃’으로 밝혀졌다.

그 다음은 윤동주의 ‘서시’(18명),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15명), 서정주의 ‘자화상’과 이형기의 ‘낙화’(이상 14명) 순이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서정주 ‘동천’, 김소월 ‘진달래 꽃’, 김수영 ‘풀’, 정지용 ‘향수’와 같은 유명한 시들도 같은 길을 걷는 ‘프로’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시인별로는 72명의 시인이 꼽은 서정주의 시가 가장 많이 애송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석의 시는 40명이, 김수영의 시는 36명의 시인이 애송한다고 대답해 그 뒤를 이었다. 서정주의 시는 ‘동천’ ‘국화 옆에서’ ‘무등을 보며’ 등 23편이 애송시로 꼽혔다. 백석의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10편이, 김수영의 시는 ‘풀’ ‘눈’ 등 16편이 애송시로 추천됐다.

최근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투병 중인 김춘수 시인은 이번 조사에서 서정주의 ‘동천’,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 김수영의 ‘풀’을 애송시로 꼽았다. 김남조 시인은 박목월의 ‘이별가’, 윤동주의 ‘십자가’, 서정주의 ‘역사여, 한국 역사여’를 애송시라고 답했다.

젊은 시인인 정끝별과 황인숙은 나란히 1920년대 작가인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애송시의 하나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편인 백석 시의 제목에 나오는 ‘남(南)신의주’는 평안북도에 있는 지명이며, ‘유동’은 그곳의 동네이름이다. ‘박시봉’은 시인이 세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의 이름. 따라서 시 제목은 시인이 살고 있는 곳을 알려주는 주소지인 셈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하략)”로

시작되는 백석의 장편 시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관에 세들어 사는 시인의 외롭고 무기력한 삶에 대한 회한과 그것을 다스리는 마음의 과정을 섬세하면서도 실감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른바 민중시 계열의 시들이 동료 시인들로부터는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역 최고의 시인으로 존중받는 고은과 김지하의 시에 대해 시인들의 평가가 인색한 것도 이번 조사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문학평론가 이남호 교수(고려대)는 “시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시인들이 서정주의 시를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은, 서정주가 한국 현대시의 최고봉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확인시켜 준다”고 평가했다. 이교수는 “백석이 김소월, 윤동주, 정지용, 한용운 등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은 좀 뜻밖”이라며 “백석의 시가 이 시대 시인들의 고달픈 삶에 위안을 줘 시인들이 일반인들보다 백석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2004년 08월 15일 (일요일) 경향신문〈김용석기자 kimy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