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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문학기행 기사

내 글의 고향은 ‘그곳’-문인들의 나의 도시

by 골든모티브 2008. 8. 22.

내 글의 고향은 ‘그곳’-문인들의 나의 도시

 

문인 20명 ‘나의 도시’ 이야기 묶은 산문집 출간

우리 시대 작가들이 생각하는 ‘나의 도시’는 어디일까. 산문집 ‘나의 도시, 당신의 풍경’(문학동네)은 이에 대한 답을 준다. 소설가 한승원, 오정희, 강석경, 이혜경, 김연수, 조경란, 시인 고은, 곽재구씨 등 우리 시대 문인 20명이 들려주는 ‘나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들이 묶여있기 때문이다. 시인 고은씨는 고향인 군산을, 한승원씨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피어나고 작품의 배경이 됐던 나주를, 오정희씨는 결혼과 함께 터를 잡은 춘천을 ‘나의 도시’로 꼽았다.

이렇게 사연이 제각각이지만, 작가들의 ‘나의 도시’이야기는 결국 ‘도시’라는 프리즘을 통해 펼쳐낸 이들의 삶과 문학 연대기일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나의 도시’는 결국 이들 삶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가장 소중한 추억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몇몇 작가들의 ‘나의 도시’이야기를 옮겼다.

◆고은의 군산 = 내 스무살 무렵까지의 고향인 군산. 군산은 식민지시대의 개항도시이다. 1943년 국민학교에 들어가 극장에도 들어가고 일본인 교사의 인도로 신사참배도 해야 했다. 내 이름은 일본 사무라이 이름답게 다카바야시 도라스케였다. 이런 소년 시절의 나에게 군산은 꿈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그곳이 외국이고, 외국으로서의 일본이라는 사실이었다.

◆한승원의 나주 = 나주에 가면 나주배가 떠오르고 배를 생각하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한 신문의 신춘문예에 소설 ‘목선’이 당선되었을 때, 나는 상을 받으러 서울로 가는 걸음에 영산포 오 선생 집에 들렀다. 오 선생은 나를 연산강변에 있는 복어집으로 데리고 가서 축하해주었다. 선생과 나는 얼큰한 복국을 안주 삼아 한 되들이 보해소주를 다 마셨고, 술에 취한 나는 소설가로 등단한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었다.

◆오정희의 춘천 = 1978년 봄, 나는 남편의 직장이 있는 춘천으로 이주해왔다. 그 봄에서 여름, 가을이 가기까지 나는 이 도시의 곳곳을 정처없이 헤매고 다녔다. 길들여지는 것이 정신의 안주와 나태함으로 여겨지던 시절, 나는 배회자이고 탐색자였다. 나는 이 도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이 도시가 숨기고 있는 수많은 미로와 물세수한 듯 단정하고 어여쁜 자태 뒤에 숨긴 불온한 열정과 나른함과 권태 욕망들을, 야행성의 동물처럼 밤이면 가만가만 숨쉬며 몸 일으키는 이 도시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혜경의 보령 = 보령군 대천읍이라는 지명은 내가 주소를 적기 시작한 이래 나와 함께 했다. 보령을 떠나온 지 삼십여년.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호적을 옮겼으니 이제 본적지도 아니다. 그런데도 식구들이 꿈에 나타날 때면, 대개 고향이 배경이 된다. 유년시절을 보낸 태생지의 기억은 그리도 독해서, 나는 아직도 그곳을 떠나오지 못한 것이다.

◆조경란의 광화문 = 열입곱살 어쩌면 그때 나는 첫사랑이란 것을 경험했는지 모른다. 봄이 시작되었고, 아침마다 나는 잘 손질한 옷을 차려입고 한강을 건너 광화문으로 갔다.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를 단단히 잡은 채 수줍은 목소리로 혼자 내 이름을 소리내어 보았다. 경란(京蘭). 부모가 나에게 준 최초의 선물이었다. 서울의 꽃이 되어라, 라고 나는 내 인생에게 은밀한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김연수의 삼청동 = 삼청동의 초입에는 전인권씨가 경영하던 라이브카페가 있었고, 내가 행복해하며 다녔던 잡지사가 있었고, 거기서 조금 더 걸어올라가면 밤이면 삼청동 주민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던 치킨 집이 있었다. 여전히 ‘우주심’은 내게 이해 불가의 영역이었지만, 맥주 한 두병에 취해가는, 모기 하나 없이 참으로 시원한 삼청동의 여름밤 정도라면 이해불가의 인생이어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문화일보,2008.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