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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소설 작가

소설, 젊은 여성에 눈돌리다…‘칙릿’ 잇따라 공모 당선

by 골든모티브 2008. 3. 23.

소설, 젊은 여성에 눈돌리다…‘칙릿’ 잇따라 공모 당선

 

칙릿(Chick-lit : chick + literature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문학)

칙릿(chick-lit)'은 20, 30대 여성들을 겨냥한 영미 대중소설을 뜻한다

칙릿(chick-lit)은 젊은 여성들을 주요 독자로 하는 대중소설을 뜻하는 구어체 표현

칙릿(젊은 도시 여성들의 일과 연애, 취향 등을 다루는 소설)


문단에 칙릿(chick-lit) 바람이 거세다. 거액의 고료를 내걸고 출판사와 문예계간지들이 공모한 장편소설상을 칙릿풍의 장편소설이 휩쓸었다. 최근 출간된 서유미씨의 ‘쿨하게 한 걸음’(창비)과 이달 안에 출간될 우영창씨의 ‘하늘다리’, 백영옥씨의 ‘스타일’이 바로 화제의 소설들이다.

우영창씨

‘쿨하게 한 걸음’은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고, ‘하늘다리’는 계간 ‘문학의 문학’이 5000만원을 내걸고 공모한 제1회 장편소설 공모당선작이다. ‘스타일’은 세계일보가 1억원 고료를 내걸고 공모하는 ‘세계문학상’ 제4회 수상작이다.

이들 소설은 모두 30대 초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들의 일과 사랑, 삶을 그려가고 있다. ‘쿨하게 한 걸음’은 요즘 30대 여성의 관심과 고민을 따라간다.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30대 초반의 직장인 연수는 구조조정에 인수설까지 나돌자 회사를 그만둔다. 소설은 자신의 길을 고민하면서 새로이 영화공부를 시작한 연수와 은퇴 후 새 일자리를 찾는 아버지, 갱년기를 맞은 엄마, 30대가 돼서야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촌, 직장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들 등 주변인물과의 소통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고민을 담담히 그려낸다.

백영옥씨

‘하늘다리’와 ‘스타일’은 좀더 감각적이고 트렌디하다. ‘하늘다리’는 31세의 증권사 대리 맹소해를 주인공으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증권사의 일상과 재테크 세태, 동성애와 유부남과의 사랑 등 좀더 자극적인 소재를 등장시킨다. 패션잡지에서 일하는 30대 초반 여기자의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 ‘스타일’은 유행에 민감하고 가벼움과 재미를 쫓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이다. 유명 배우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골몰하고, 까다로운 음식비평가 ‘닥터 레스토랑’의 정체를 탐색한다는 얼개에 일과 사랑, 패션계의 치열한 경쟁, 사내 권력관계, 명품과 음식이야기 등을 감각적인 문체로 엮었다.

작가 서유미씨와 백영옥씨가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자기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것과 달리 그간 시인으로 활동해온 우영창씨가 50대 남성작가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이처럼 장르문학의 일종인 칙릿이 ‘문학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좀더 공격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고 있다. 칙릿이 대중성과 문학성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듯 백영옥씨는 당선 인터뷰에서 칙릿을 옹호했다. “내가 쓰고 싶은 건 번드르르한 트렌드가 아니라 현대 도시인들의 삶”이며 “칙릿이란 게 ‘된장녀’ 부류들만 나오는 가벼운 장르가 아니다.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도 당대 여성의 삶을 솔직하게 그렸다”고 설명했다.

우영창씨도 “사랑과 일, 이 두 가지는 도시의 미혼 여성에겐 현실의 굴레이자 삶의 추진력이기도 하다”며 “작금의 도시 직장 여성들의 삶은 칙릿 소설이 함부로 예단할 만큼 가볍지가 않고 그 내부엔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회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지속적인 불안 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유미씨

문학평론가 심진경씨는 최근 문단의 이 같은 칙릿바람의 원인을 “자본에 의한 문학의 지배”로 요약했다. 외국 칙릿 소설이나 영화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20~30대 여성들이 일정한 독서소비층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들을 겨냥해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이 있는 출판사, 언론사들이 고액의 상금을 내걸고 상을 만든 것도 아직까지는 소설 독자들이 있고, 문학이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상업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심씨는 또 문학의 영향력 감소를 중요한 요인으로 들었다. 젊은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문화를 잘 드러내주는 칙릿은 문학 내부에서 시작된 장르가 아니라 영화, 드라마, 광고 등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새로운 장르문학이라는 점에서 문학이 다른 예술장르의 영향을 받아 생성되는 현대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를 잃은 한국문학이 계속 추구할 방향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칙릿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chick’에 문학을 뜻하는 ‘literature’를 결합한 신조어.

젊은 도시여성들의 일과 연애, 취향 등을 다루는 소설들을 일컫는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영미권 문학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으며, 국내에 본격 소개된 것은

소피 킨셀라의 소설 ‘쇼퍼홀릭’ 시리즈를 통해서다.
여기에 20~30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와 미국 드라마가 함께 인기를 얻으면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칙릿이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경향신문,2008.3.10〈 윤민용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