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소설가와 가상 인터뷰
소설속의 분위기를 <메밀꽃의 필 무렵>의 자취을 찾아 길을 나서다
소설속의 풍경 아직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은 없지만 달빛은 여전히 숨이 막히다
작가의 고향, 봉평, 이효석문학관 뜰에서 과거를 회상하다
▲ 시대를 뛰어넘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효석과 조우하다
◈ 이효석의 소설중 가장 수필적인 문체를 보여준 <산>
소설가 김동인이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 할 정도로 그의 문학 세계는 반산문적이며 스토리가 없다.
그는 이효석을 소설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 <산>은 식물 사전이 무색할 정도로 나무 이름과 풀이름이 총동원되고 있다.
중실은 머슴 산 지 칠 년 만에 아무것도 쥔 것 없이 맨주먹으로 쫓겨났다. 김영감의 첩(둥글개)을 건드렸다는 엉뚱한 오해로 그 집을 나오게 된 것이다. 그는 갈 곳이 없어 빈 지게를 걸머지고 산으로 들어간다. 그 넓은 산은 사람을 배반할 것 같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낙엽을 잠자리로 삼아 별을 헤면서 잠을 청한다. 하늘의 별이 와르르 얼굴 위에 쏟아질 듯싶게 가까웠다 멀어졌다 한다. 별을 세는 동안에 중실은 제 몸이 스스로 별이 됨을 느낀다.
산 속의 아침나절은 졸고 있는 짐승같이 막막은 하나 숨결이 은근하다. 휘엿한 산등은 누워 있는 황소의 등어리요, 바람결도 없는데, 쉴새없이 파르르 나부끼는 사시나무 잎새는 산의 숨소리다. 첫눈에 띄는 하아얗게 분장한 자작나무는 산 속의 일색. 아무리 단장한 대야 사람의 살결이 그렇게 흴 수 있을까.
수북 들어선 나무는 마을의 인총보다도 많고 사람의 성보다도 종자가 흔하다. 고요하게 무럭무럭 걱정 없이 잘들 자란다.
산오리나무, 물오리나무, 가락나무, 참나무, 졸참나무, 박달나무, 사스레나무, 떡갈나무, 무치나무, 물가리나무, 싸리나무, 고로쇠나무. 골짜기에는 신나무, 아그배나무, 갈매나무, 개옻나무, 엄나무. 산등에 간간이 섞여 어느 때나 푸르고 향기로운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노간주나무―걱정 없이 무럭무럭 잘들 자라는―산속은 고요하나 웅성한 아름다운 세상이다. 과실같이 싱싱한 기운과 향기, 나무 향기, 흙냄새, 하늘 향기, 마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향기다.
……
산과 몸이 빈틈없이 한데 얼린 것이다. 눈에는 어느 결엔지 푸른 하늘이 물들었고 피부에는 산 냄새가 배었다. 바심할 때의 짚북데기 보다도 부드러운 나뭇잎― 여러 자 깊이로 쌓이고 쌓인 깨금잎, 가락잎, 떡갈잎의 부드러운 보료― 속에 몸을 파묻고 있으면 몸뚱어리가 마치 땅에서 솟아난 한 포기의 나무와도 같은 느낌이다. 소나무, 참나무, 총중의 한 대의 나무다. <이효석, 산>
☞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시의 구절이 아니라 이효석의 소설 <산>의 한 구절임)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곤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황천강계곡의 수목, 정비석의 산정무한 중에서>
두 발은 뿌리요 두 팔은 가지다. 살을 베면 피 대신에 나뭇진의 흐를 듯하다. 잠자코 섰는 나무들의 주고받은 은근한 말을, 나뭇가지의 고개짓 하는 뜻을, 나뭇잎의 소곤거리는 속심을 총중의 한 포기로서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해가 뛸 때에 즐거 하고, 바람 불 때에 농탕치고, 날 흐릴 때 얼굴을 찡그리는 나무들의 풍속과 비밀을 역력히 번역해 낼 수 있다. 몸은 한 포기의 나무다. 별안간 부드득 솟아오르는 힘을 느끼고 중실은 벌떡 뛰어 일어났다. 쭉 혀는 네 활개에 힘이 뻗쳐 금시에 그대로 하늘에라도 오를 듯 싶었다. 넘치는 힘을 보낼 곳 없어 할 수 없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이 울려라 고함을 쳤다. 땅에서 솟는 산 정기의 힘찬 단순한 목소리다. 산이 대답하고 나뭇가지가 고갯짓 한다.<이효석, 산>
☞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꼭 쥐어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단풍에 동화된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화려한 단풍이 옷까지 물든 것 같은 착각. -<황천강 계곡의 단풍, 정비석의 산정무한 중에서>
→ 정비석은 이효석의 산을 표절한 것일까? 아님 모방한 것일까?
김동기, 한서고, 국어교사, 이효석을 만나다 / 이효석 탄생 104주년, 제69주년 추념식(201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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