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 작가’ 전성시대
"엄숙주의 소설은 가라" 젊은 남성작가 '유머 코드' 새바람
2000년대 본격화돼 최근 정점을 이룬 이들의 '발칙한' 시도에 대해 평론가들은 '이미지 중심에서 화법 중심으로의 변화'(이광호), '입담을 통한 서사의 강화'(강유정) 등으로 평가한다.
○ 말의 실험, 웃기는 방법도 각양각색
입담 작가라도 작품에 따라 웃음의 결에 차이가 있다. 박민규 씨의 소설은 저항정신과 풍자적 웃음이 두드러진다. 왕따 중학생들이 지구의 운명을 걸고 탁구를 치는 그의 장편 '핑퐁'은 말의 재미나 만화적 상상력에 문명 비판 의식이 묻어난다.
하위문화를 통한 유머 구사와 언어 실험을 강조한 작가로는 이기호 씨가 꼽힌다. 그의 단편 '버니'는 소설 전체가 랩을 하는 듯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움파파! 움파! 순희는 돈 벌어! 가수가 될 거야! 움! 파! 움! 파!" 그의 또 다른 단편 '최순덕 성령 충만기'에서는 "순덕의 어미는 언제나 딸에게 일러 가로되 순덕아 순덕아 하나밖에 없는 내 딸아…그러한즉 너는 얼마나 선택받은 자이더냐"라며 성경의 어투를 그대로 차용한다.
권위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작품군도 있다. 문학평론가 강유정 씨는 "박형서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는 고상함이나 윤리에 시비 거는 '쌈마이 정신'(삼류 정신)의 유머다. 학술 논문 형식으로 주석까지 달면서 소설에 숨어 있는 '성적 상징들'을 분석해 웃음을 자아낸다"라고 말했다.
논픽션 형태를 빌려 진지한 어투로 허구를 역사적 사실처럼 고찰하거나(조현의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김언수 '캐비닛') 가상임을 누구나 아는 사건에 대해 대놓고 허풍을 치는 작품(김종광의 '율려 낙원국'), 정통 서사를 짜나가는 가운데 입담이 돋보이는 작품(손홍규 '봉섭이 가라사대', 김중혁 '악기들의 도서관')들도 있다.
○ '탈진정성' 시대의 소설, 무거움을 거부하다
입담 작가들은 대부분 1970년대에 태어난 30대 젊은 남성 작가이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는 "젊은 작가들이 거대 담론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는 것은 성별을 떠나 일반적인 경향"이라면서도 "오랫동안 문단 주변부에 있던 여성 작가들은 정통 서사의 틀에서도 여전히 할 이야기가 남아 있는 반면, 젊은 남성 작가들은 기존 질서에 대한 반동을 먼저 시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철호 중앙대 교수는 "1980년대 문학은 지식인으로서 민족 국가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는 지사적 전통이 강했지만 1990년대 문학은 개인의 내면 문제로 돌아섰다. 최근에는 거대 담론도 내면화도 아닌 입말체의 회복을 통해 가벼움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는 "무거움과 어두움, 진지함을 거부하는 젊은 세대들의 특성이 문학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는 "입담 소설에 내면성이 결여된 화자들(그는 이를 '골빈 화자들'이라고 칭했다)이 등장해 '말발'을 과시하며 자기 욕구를 늘어놓는 것은 1인 1매체로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말하는 인터넷 시대의 산물로도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이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기호 씨는 이렇게 말한다. "선택의 기준이 되는 전망이나 방향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남는 건 '말'뿐이 아닐까요?"
동아일보,2008.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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