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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말 . 우리말

작가들이 결딴 낸 우리말

by 골든모티브 2008. 6. 7.

[권오운의 올곧은 죽비소리]

작가들이 결딴 낸 우리말

 

작가들의 억지와 횡포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곧춘 우리말 책

 

"기분이 상하면서 속세말로 열불이 나서 견딜재간이 없었다"(신경숙의 '달의 물' 중)
"몸집이 비대한 이 국장은 모 심다 나온 사람마냥 양복바지 마저 둥개둥개 걷어붙인 모습이었다"(권지예의 '투우' 중) "나는 두 구둣발을 들고 힘차게 토꼈다"(성석제의 '성탄목' 중)


이상 세 예문은 모두 한국에서 날고 긴다 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 나오는 대목이다. 세 문장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엉터리로 쓴 우리말들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우리말 지킴이'를 자임하며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 '우리말 지르잡기' 등의 저서를 통해 잘못 쓰인 우리말 용례를 조목조목 짚어온 권오운 씨가 국내 작가들이 잘못 사용한 우리말 사례를 집어낸 '작가들이 결딴 낸 우리말'(문학수첩 펴냄)을 펴냈다.

권씨에 따르면 첫 예문에서 '속세말'이란 표현은 잘못 쓴 것이다. '통속적으로 쓰는 저속한 말'을 이르는 단어는 그냥 '속어(俗語 )'다. '속세말'이란 표현 자체가 없다. '열불'이라는 표현도 속어가 아니라 그냥 바른말이다. 두 번째 예문에서는 '둥개둥개'라는 표현이 전혀 다른 뜻으로 쓰였다. '둥개둥개'는 '아이를 안거나 쳐들고 어를 때 내는 소리'로 여기에서는 '둘둘'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럼 세 번째 예문에서는 뭐가 틀렸을까. '구둣발'이라는 것은 '구두를 신은 발'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두를 신은 발'을 들고 토낀다는 표현은 말이 안 된다.

그밖에도 '화냥년'을 '화냥녀'로 잘못 쓴 경우(공지영의 '봉순이 언니' 중), 우리말에는 없는 '달달하다'는 말을 '달다'라는 뜻으로 쓴 경우(정이현의 '홈드라마' 중), '체모(體毛)'와 '음모(陰毛)'를 혼동한 경우(김애란의 '그녀가 잠못드는 이유' 중) 등 권씨는 국내 내로라하는 50여 명의 작가들의 글 실수를 꼼꼼하게 짚어냈다.


 

[대표적 사례]
* 기분이 상하면서 속세말로 열불이 나서 견딜 재간이 없었다. - 신경숙의 「달의 물」에서
우선 ‘속세말’이란 말은 없다. ‘통속적으로 쓰는 저속한 말’은 ‘속어(俗語)’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시대의 유행어’라는 뜻인 ‘시쳇말’이 제격이다. 다음 ‘열불’이란 ‘매우 흥분하거나 화가 난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속세말’로서가 아니라도 바른말이다.

* 몸집이 비대한 이 국장은 모 심다 나온 사람마냥 양복바지마저 둥개둥개 걷어붙인 모습이었다. - 권지예의 「투우」에서, 여기서는 ‘둥개둥개’가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다. ‘둥개둥개’는 다 아는 것처럼 ‘아이를 안거나 쳐들고 어를 때 내는 소리’이다. 그러면 울던 아기도 울음을 그치고 까르륵까르륵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양복바지를 걷어붙인’ 모양새를 두고 ‘둥개둥개’라 하고 있다. 안 되는 소리다. 소매나 바짓가랑이가 ‘걷어붙여’진 모양은 ‘둘둘’이다. ‘큰 물건이 여러 겹으로 둥글게 말리는 모양’이 ‘둘둘’이니까.

* 나는 두 구둣발을 들고 힘차게 토꼈다.- 성석제의 「성탄목」에서
‘구둣발을 들고 토꼈다’가 이상하다. ‘구두를 신은 발’이 ‘구둣발’인데 그것을 (그것도 두 짝 다) 들고 어떻게 뛴단 말인가? 신경숙이 ‘발자국을 들고 걷는다’고 했다가 내 지청구를 들은 바 있거니와 이제 성석제까지 이렇게 나오면 ‘여자는 발자국을 들고 걷고, 남자는 구둣발을 들고 뛴’단 말인가? 물론 ‘발자국을 들고’와 ‘구둣발을 들고’는 약간의 차이는 있어 보이나 둘 다 용서는 되지 않는다. 아무리 ‘줄행랑치다(놓다)’를 과장되게 표현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두 발로’ 뛰어야지 ‘두 발을 들고’는 뛸 수가 없다. 안 그런가?

* 남자 밑에 깔려 색을 쓰면서도 카르멘인가 뭔가 그따위 고상을 떨어야 하는 여자……. - 김별아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에서, ‘품위나 몸가짐이 속되지 아니하고 훌륭하다’가 ‘고상(高尙)하다’의 풀이이다. ‘고상한 인격’, ‘언행이 고상하다’처럼 쓰인다. 따라서 ‘고상 떤다’고는 할 수 없다. ‘고상’은 ‘떨’ 수도, ‘부릴’ 수도, ‘거릴’ 수도 없는 말이다.

* 스물도 안 된 처녀가 남자와, 그것도 평판이 안 좋은 남자와 도망을 치다니, 그녀는 배신자며 도둑이며 화냥녀였다. -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에서
‘화냥녀’는 ‘화냥년’의 잘못이다. ‘화냥년’은 ‘화냥’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며, ‘화냥’은 ‘서방질하는 여자’이다. ‘자기 남편이 아닌 남자와 정을 통하는 짓’이 ‘서방질’이니까 예문의 ‘그녀’는 비록 평판이 안 좋은 사내와 도망은 쳤지만 엄밀하게 따져 최소한 ‘화냥년’은 아니다. ‘그녀’는 ‘처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내와 ‘난질’에 든 것일 뿐이다. ‘여자가 정을 통한 남자와 도망가는 짓’이 ‘난질’이다.

* 담배 대신, 달달한 자판기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 정이현의 「홈드라마」에서, 여기 나오는 ‘달달하다’는 아예 없는 말이고, ‘다달하다’와 ‘달다하다’는 사전에 보이는 말이긴 하나 이마저 ‘달곰하다’와 ‘달콤하다’의 방언이다. ‘달다’는 표현 역시 수도 없이 많거늘 하필이면 엉터리 말을 갖다 들이댈까.

* 종아리 정가운데 박혀 있는 자신의 체모 한 올을 발견했다. 아마도 팬티스타킹을 신던 중 속옷에서 떨어져 그 곳에 붙은 모양이었다. 체모는 다른 털과는 충분히 구별될 수 있는 윤기와 웨이브를 가지고 있었다. - 김애란의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서
‘체모’가 잘못 쓴 말이다. 체모란 무엇인가? ‘몸에 난 털’ 즉 ‘몸털’이 체모(體毛)다. 그런데 ‘체모는 다른 털과 구별’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다른 털’이라면 사람의 것 말고 짐승털을 말함인가? ‘팬티스타킹을 신던 중 속옷에서 떨어진 모양’이라니까 사람 털은 분명 사람털이다. 그렇다면 여기 쓰인 ‘체모’는 잘못 쓰인 것이 확실하다. 더군다나 ‘윤기와 웨이브를 가지고 있는’ 털이라고 자세히 묘사되어 있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체모’가 아니라(체모이기는 하나) ‘음모(陰毛)’ 즉 ‘거웃’이다. ‘치부(恥部)에 난 털’이라고 하여 ‘치모(恥毛)’라고도 한다. / 문학수첩

 

지르-잡다 [---따] 옷 따위에서 더러운 것이 묻은 부분만을 걷어쥐고 빨다.

 제 옷에 묻은 더러운 때는 걷어쥐고 빨 줄 알면서도 자신이 쓰는 말에 묻은 때는 걷어쥐고 빠는 사람이 없다.문학 작품이나 신문.방송 국정 교과서 등에서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을 찾아서 옷에 묻은 더러운 때를 지르잡듯 바르게 교정해 주는 동시에 , 아름다운 우리말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