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과 삶의 향기/작품 통장

정지용의 삶과 작품세계

by 골든모티브 2010. 2. 8.

1930년대 작가 정지용시인 작품론

 

-정지용의 삶과 작품세계-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가 《소년》지에 발표된 지 어언 100년을 넘긴 우리의 현대시사에서 정지용 시인은 1930년대의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김기림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까지 극찬했고, 남쪽에 정지용이 있다면 북쪽에는 백석이 있다는 말이 날 정도로 문단에서 높게 평가하는 시인이다. 이런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대표적인 작품을 감상해 보자.

 

1. 정지용의 삶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1902∼1950?)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옥천 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보, 일본 도지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8ㆍ15 해방때까지 휘문고보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박용철, 김영랑 등과《시문학》을 창간하고 《구인회》 등에서 활약하였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을, 1939년 '문장'지를 통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 청록파 3인을 등단시켰다. 뿐만 아니라 1948년에는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서문을 쓰기도 했다.

그의 생사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구구하다. 1950년 6ㆍ25 전쟁 때 행방불명되어 그에 대한 행적(월북이니, 납북이니)에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어찌되었든 6ㆍ25전쟁 후 30년 이상 우리 문학에서 그의 모든 작품이 출판 금지되었으며 한국 근대시문학에서도 그의 이름 석자는 금기시되어 사라진다. 그만큼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시인이다.

 

시집으로 일제 강점기에 첫 시집 정지용시집(1935년)과 백록담(1941년) 두 권이 있으며 1946년 지용시선이 출간된다. 1988년 납ㆍ월북작가 해금 조치로 <정지용 전집>이 발행되고 다시 우리 곁으로 되돌아왔다.

또한 지난 1996년 큰아들 구관씨의 고증을 거쳐 생가가 복원었고, 이후 그의 생애와 문학을 총망라한 기념관이 세워졌다. 해마다 5월이면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 그의 생가와 문학관을 중심으로 정지용시인을 기리는 문학행사로 <지용제>가 개최된다. 2002년에는 정지용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2. 시인의 작품세계

 

정지용의 시와 산문 140여편 중에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향수>, <고향>, <유리창1>, <바다9>, <백록담>, <인동차>, <압천> 등을 뽑아 읽고 그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향토색이 짙은 ‘향수’와 모더니즘 계열의 ‘유리창’의 작품세계를 알아보자.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 전문  <1927년 조선지광>  * 해설피 : 해가 설핏 할 무렵인지 느리고 어설프게(혹은 슬프게)인지, *석근 별 : 성근(성긴) 별인지 섞인(여러 모양의 별들이 섞여 빛나는 모습) 별인지 불명확하다.    

  

이 작품은 정지용의 초기 대표작으로 1927년 좌익 진영의 기관지인《조선지광》에 발표되었다.  80년대 이동원, 박인수가 함께 노래로 불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불우했던 월북작가가 '향수'로 부활한 셈이다. 일본 유학을 가기 전(일본 유학시절에 쓴 작품이라는 설도 있음)에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흐르는 한가로운 농촌 풍경이 연상된다.

연마다 후렴구로 되풀이되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구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내며 한 편의 풍경화로 다가오게 한다. 또한 후렴구와 이어지는 매연의 마지막을 ‘우는 곳’, ‘고이시는 곳’, ‘휘적시든 곳’, ‘이삭 줍던 곳’, ‘도란거리는 곳’ 등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것 또한 음악적인 리듬감을 주는 재미있는 표현이다.

‘금빛 게으른 울음’의 감각적 이미지는 모방하고 싶을 정도로 멋있다. 어떻게 울음이 금빛으로 보이는가? 청각을 시각화한 대표적인 공감각적 표현이다.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짚베개’ 등의 시어는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나게 하는 고향의 그리운 풍경이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지줄대는’, ‘해설피’, ‘함추름’ 등의 시어은 잊혀져가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시인의 탁월한 언어감각이 돋보이는 표현이다.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정말 고향의 정경이 한 순간에 떠오른다. 늙으신 아버지와 어린누이와 사철 발 벗은 아내가 오붓하게 살아가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우리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은 평범한 사람들의 보습이다. 당장이라도 고향으로 뛰어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는 너무나도 가슴 뭉클한 말이며 나의 고향의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특정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서서 고향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고향이기도 한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유리창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 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 갔구나! <1930년 조선지광>

 

이 시는 어린자식을 잃은 후 아버지의 비통한 심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며 연 구분이 없이 10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화자가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다.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산새처럼 날아가 버린 아이의 환상이 유리창 밖에 어린다. 이 시에서 유리창은 창 안과 창 밖을 구분하면서도 동시에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차고’/‘슬픈’, ‘외로운’/‘황홀한’ 시어처럼 서로 어긋나는 표현을 사용하여 아이를 잃은 부모의 처절한 슬픔을 노출하지 않고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있다. 특히 '외로운 황홀한 심사'는 매우 독특한 표현이다. 외로움이 황홀할 리는 없다. 모순이며 역설이다. 그것은 유리를 닦으며 아이를 잃은 외로움과 자식의 환영을 보는 황홀함이 아닐까? 차고 슬픈 것’, ‘언 날개’, ‘물 먹은 별’, ‘산새등의 시어는 폐렴으로 자신보다 먼저 가버린 죽은 아이의 비유적 표현이다.

 

또한 ‘물 먹은 별’이란 표현은 화자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별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폐혈관이 찢어진’ 너는 죽어 ‘새처럼 날아갔구나’에서 자식의 죽음을 짐작한다. 슬프고 마음이 찢어지게 아플 텐데

정지용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냉정함을 보이는 것 같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이 감정의 절제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선생님과 함께 읽는 정지용, 김성장, 실천문학사, 2001

고교생이 알아야 할 시, 구인환, 신원, 1996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이숭원, 태학사, 1999

정지용사전, 고려대, 2003

 

'❀ 문학과 삶의 향기 > 작품 통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킷리스트  (0) 2011.02.04
16종 국어교과서 문학작품 분석  (0) 2010.11.01
연서-연작시  (0) 2010.02.07
땅집은 하늘집이다  (0) 2010.01.07
문예지 현황  (0) 20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