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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詩와 시인

청록집-청록파 3인 시집

by 골든모티브 2008. 4. 17.

[청록집]


"북에 소월, 남에는 목월" '사력질' 세상의 나그네
1978년 3월 24일 시인 박목월이 62세로 사망했다. "북에는 소월(素月)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요적(謠的) 수사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다." 박목월을 '문장' 지 추천을 통해 등단시킨 정지용의 말이다. 그 말 가운데 '한국시'에 방점이 찍힌다. 박목월 등 / 을유문화사

 
진한 토속적 서정, 우리말ㆍ가락의 근저에 있는 민요적 음률의 구사, 그리고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선명한 이미지는 박목월 시만의 성취다. 그의 '나그네'나 '윤사월' 혹은 '산도화'를 읽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공감은 거의 본능적이다.

'松花(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閏四月ㆍ윤사월' 원문).

해방 직후인 1946년 출간된 < 청록집 > 은 박목월의 시 15편, 조지훈의 12편, 박두진의 12편 등 모두 39편이 실린 3인 시집이다. 초판을 냈던 을유출판사는 출간 60주년이던 2006년, 초판 영인본과 가르쓰기 편집본을 같이 실은 새 판을 내기도 냈다.

'청록파'로 불린 세 사람은 각자 시 세계는 다르지만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했다는 점, 일제 말의 암흑기와 해방공간의 혼란기에 현실에서 초연한 태도로 자연을 소재로 한 시를 썼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청록파는 그래서 자연파와 동의어였다. 하지만 '구름에 달 가듯이' 가고 싶었던 빼어난 시인 박목월은 현대 한국시사에서 한동안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1963년 육영수의 문학 개인교수가 되고 그의 전기를 쓰면서 '유신체제 가정교사' 혹은 '청와대 시인'으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 청록집 > 에 실린 시 '임'에서 스스로를 '내ㅅ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ㅅ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이라고 했던 그는, 1970년대 들어서는 '사력질(砂礫質)' 연작시를 썼다. 꿈꾸고 싶었지만, 모래 섞인 자갈밭 같은 사력질의 세상에서 꿈 아닌 일상을 힘겹게 걸어야 했던 시인의 아픈 토로였을까. /한국일보,2008.3.24
 

[여적]  청록집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낙화'(落花)에 담긴 조지훈 시인의 시정이다.'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는 회자되는 박목월 시인의 시 구절이다. '가을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보나.' 박두진 시인의 '도봉'에는 가을산의 적막과 고독이 배어있다.

 
'청록파' 시인들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은 1939년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들이 공동시집 '청록집'(靑鹿集)을 펴낸 것은 1946년이었다. 청록집에는 박목월의 시 15편, 조지훈과 박두진의 시 각각 12편 등 39편의 시가 실려있다. 박목월은 "청록집이라는 이름은 사슴이 세 사람의 작품에 빈번히 나타나는 공통된 이미지이기도 하였지만, 푸른 사슴처럼 날렵하고 청신한 신인(新人)이라는 자부가 앞서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이 문단에 나와 청록집을 출간하기까지의 시기는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일제 식민지,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해방이 시대적 배경이었다. '자연지향적'은 이들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자연은 청록파 시세계의 모태이자 고향이었던 셈이다. 조지훈의 '낙화'의 한 구절처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이었을까.

역사적 격랑 속에서 자연을 노래한 이들의 시에 대해 현실외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청록집의 시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의 '승무'(조지훈),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의 '윤사월'(박목월), '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의 '묘지송'(박두진) 등을 보면 청록집이 지닌 무게를 느끼게 된다.

'청록집'이 올해로 출간 60주년이니 환갑이다. 시(詩)의 강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굽이굽이 흐르지만, 청록집은 많은 사람들에게 '푸른 사슴'으로서의 시적 정취를 주고 있다. /경향신문,200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