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년 - 우리 시 살펴보기
김 재 홍 | 문학평론가 ·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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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현대시가 출발한 지도 어언 100년, 한세기가 흘러갔다.
1908년 「해에게서 소년에게」로부터 기산해도 그렇지만 어느 새 대표적인 현대시인이라 할 김소월과 정지용이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는 점에 비춰봐도 그렇다.이 한 세기는 전반기 일제 강점기와 후반기 분단시대, 그리고 오늘의 21세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땅에서의 역사가 수난의 연속이었고, 그 속에서의 삶과 시가 고통으로 점철돼 왔다는 뜻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면서 시는 그러한 죽임의 시대, 찢김의 시대 속에서도 끊임없이 나라와 겨레에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이’ 희망의 등불이 되어 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이 땅의 시는, 그러한 ‘밤’과 ‘겨울’의 시대에 절망과 고통을 이겨 나가게 하는 횃불이 된 것과 함께 아침과 봄을 예감케 하는 정신의 쇠나팔 소리로서 울려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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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현대시는 유가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전통문학이 해체되면서 서구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과 동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의미에서 현대시는 3·1운동에서 촉발되고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3·1운동 전해인 1918년 발간된 《태서문예신보》는 새로운 시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김억에 의해 주도된 서구시 번역과 창작시 실험은 전통시가인 시조, 민요, 개화가사, 그리고 외래풍인 찬송가, 신시및 창가들과 서로 길항하면서 새로운 시, 현대시의 형성과 전개에 하나의 기폭제로 작용하였다.3·1운동으로 인한 일제의 민족분열정책, 즉 이른바 문화정책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일간지와 《창조》 《폐허》 《백조》 《장미촌》 《조선문단》 《금성》 《영대》 등 문예지 그리고 《개벽》 《조선지광》 등 종합지 발간을 촉진하였고, 이러한 기운은 문화면에서 얼마간의 활력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초기시단은 김억, 황석우, 주요한, 박종화, 이상화, 변영로, 오상순, 김동환, 이장희, 홍사용, 심훈, 노자영 등의 현대시 창작과 최남선, 정인보, 이병기, 이은상 등의 현대시조 창작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하였다.
이 가운데 특히 김소월은 이 시기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부각되었다.1925년 발간된 시집 『진달래꽃』은 전통적인 민족정감에 뿌리를 두고서 그것을 현대적인 가락으로 형상화한 역작이다. 시집 『진달래꽃』은 민족적 가락과 민중적 정감에 바탕을 둔 서정을 발굴하여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학의 예술성을 성취하는 한 전범을 보여준 것이다. 이 점에서 소월이 흔히 국민시인으로 불려지고 그의 시가 널리 애창되는 까닭이 놓여진다고 하겠다.
한편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1926)으로 현대시에 역사성과 사회성, 그리고 종교성을 불어넣음으로써 현대시의 형이상성을 확대하고 심화해 주었다는 점에서 시사적 중요성을 지닌다. 『님의 침묵』은 이별의 시가 아니라 만남의 시이다. 절망의 시가 아니라 희망의 시이고, 고통의 시가 아니라 기쁨의 시이다. 이별의 고통을 이겨낸 더 큰 만남의 성취는 주권상실에서 오는 생존권 억압의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고 더 높은 차원의 민족애, 조국애로 나아가고자 하는 갈망과 염원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해 준 것이다. 만해시는 당대 현실을 치열하게 섭수해들이면서도 우리 현대시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정지용도 우리시에 ‘현대적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중요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정지용의 시는 ‘안으로 열하고 겉으로 서늘한’ 지적 절제와 정서의 투명함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시의 질적 상승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이른바 느끼는 시, 감성의 시에서 생각하는 시, 지성의 시를 선구함으로써 지용시는 우리시의 현대적 전환을 성취하는 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한편 3·1운동 후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1920년대 중반에 결성된 KAPF는 우리 시에 사회성, 계급성, 이념성을 불어넣음으로써 시가 문예의 영역에서 벗어나 사회변혁운동을 선도하고 나아가서 계급주의 혁명을 이룩하는 근본동력이 돼야 함을 강조하였다. 작품으로서의 시, 예술로서의 시보다는 운동으로서의 시, 이념과 혁명의 수단으로서의 시를 강조함으로써 시를 사회 또는 역사와 상동관계에 놓이게끔 한 것이다. 카프시는 시가 현실·사회·역사적인 응전력을 지녀야 한다는 점에서는 설득력을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문학으로서 선동·선전성을 지녀야 하며 계급혁명을 위한 전략·전술의 일환에 해당한다는 점에서는 문학성·예술성을 감쇄하였기에 문학적으로 오래 생명력을 지니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조명희, 김팔봉, 박영희가 선구하고 임화, 박세영, 박팔양, 유완희, 김창술, 이찬, 안막, 조벽암, 권환, 박아지 등이 열성적으로 참여한 카프시운동은 역사적 의미에 비해서 문학사적 성과는 부족한 편이라고 하겠다.
이밖에 20년대 시단에서 이상화·심훈의 의미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상화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중략…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에서 보듯이 ‘땅’으로서 생존권(농토)과 주권(영토, 국토), 그리고 민족혼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예술적으로 탁월하게 이끌어올리는 전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심훈도 시집 『그날이 오면』을 통해서 조국 광복에 대한 열망을 가열차게 노래함으로써 민족혼이 살아 있음을 증거했다는 점에서 시사적 중요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외문학》을 발행하여 해외의 서정시를 번역 소개함으로써 서정시운동을 전개한 이하윤, 김광섭, 이헌구, 김진섭, 함대훈, 그리고 양주동 등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이와 함께 최남선, 정인보, 이병기, 이은상 등의 현대시조운동도 기억할 만하다고 하겠다. 최남선의 『백팔번뇌』를 비롯하여 이들이 선구한 시조의 현대화 운동은 이후 30년대에 조운, 김상옥, 이호우 등으로 이어져 민족문학의 정수로서 현대시조 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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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는 『카프시인집』(1931)에서 정점을 이룬 프로문학이 퇴조하고 시문학파가 주도한 순수서정시운동에서 그 실마리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박용철과 김영랑이 중심이 되고 정지용, 이하윤 등의 해외문학파가 참여한 《시문학》파의 서정시운동은 문학의 본령으로서 순수성, 서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예술성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이러한 순수서정시 운동은 1930년대 만주사변과 지나사변 등 악화된 상황에서 문학의 본도를 지키려는 안간힘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한글의 문학적 훈련을 통한 국어미발견의 노력과 향토적 서정의 탐구는 문학의 본령으로서 예술성을 지키고 나아가서 민족혼과 정서를 지키려는 노력이 아닐 수 없다.
1930년대에 들어 이상李箱과 김기림, 김광균 등에 의해 주도된 모더니즘 시운동은 우리 현대시사를 또 한 단계 진전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모더니즘적 시각에 따르면 재래의 시는 자연발생의 시(sein의 시)인데 비해, 모더니즘 시는 의도적인 제작의식의 시(sollen의 시)에 해당한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시는 존재의 시가 아니라 당위의 시이며, 의도적인 방법론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방법론이 바로 해체와 실험의 기법이며, 부정과 뒤집어보기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더니즘은 의식의 흐름기법이나 다다 또는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을 지니며 방법적인 면에서 부정의 변증법과 반역의 정신을 골간으로 한다. 이상과 김기림으로 대변되는 모더니즘 시와 시론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감수성의 혁신과 시의식의 변모, 그리고 방법론의 다양화를 통해 미적 근대성을 획득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후 이러한 모더니즘 시운동은 50년대 《후반기》 동인의 모더니즘운동으로 연결되고 다시 김춘수, 이승훈 등의 60년대 이후 무의미시론으로 변주된다는 점에서 시사적 의미를 지닌다.
한편 30년대 중후반은 이른바 생명파와 청록파, 그리고 백석, 이용악, 오장환 등의 현실주의 시인, 노천명·모윤숙 등의 여류시인, 김현승·신석정과 같은 명상시인, 이육사·윤동주 등의 순국시인이 등장하면서 하나의 분화기를 이룬다.먼저 이른바 생명파로 불리는 서정주는 김달진, 김동리 등과 사화집 《시인부락》을 간행하면서 유치환 등과 함께 젊은날의 육성의 몸부림을 보여준다. 서정주는 운명적인 모순과 갈등에 몸부림치는 생명의 원상을 탐구하는 것과 함께 민족어의 완성을 위해 진력해왔다는 점에서 현대시사 최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파란 많은 생애사적 굴곡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를 현대시사상 정상에 놓이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시적 완성도 면에서도 그렇고 한평생 주제의 일관성을 지니면서도 방법론적 다양성이 확대되고 심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미당은 문학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분명하다.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로 분류되는 유치환도 대가적 풍모를 보여준 것으로 이해된다. 그가 「깃발」, 「생명의 서」 등에서 보여준 운명적 모순과 갈등을 광물상상력 또는 허무의지와 대결정신으로 극복하려는 몸부림은 현대시사상 독특한 내면풍경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달진도 노장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허정虛靜의 세계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개성적인 풍경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된다.
1930년대 중반에 등장한 백석과 이용악도 주목할만한 시인이다. 백석은 평북 방언의 활용과 주변부 인물의 중심부화 노력을 통해 민족적 삶의 원형성을 보여준 데서 개성이 드러난다. 특히 그의 시는 깊이 있는 내면성찰을 통해 시가 근본적인 면에서 자아발견과 자기극복, 그리고 자기구원의 길로 열려 있음을 보여준 데서 깊은 울림을 던져준다. 또한 이용악은 북방풍경을 바탕으로 민중적 삶의 고단함과 서글픔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개성적인 의미를 지닌다. 특히 당대 유·이민의 척박한 삶을 통해 고단한 시대에 있어 시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 점에서는 주목에 값한다고 하겠다.
이른바 청록파 세 시인, 즉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은 해방전 시단을 해방후 시단으로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하면서 문학의 정도와 본도를 확실하게 보여준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조지훈의 시에는 불교를 비롯한 동양고전과 한국적 정서가 무르녹아 있으며, 박목월의 시에는 자연을 매개로 한 인간탐구가 서정성으로 고양되고 있으며, 그리고 박두진의 시도 자연과의 친화와 교감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역사의식이 짙게 깔려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들의 문학은 자연·인간·역사·종교성이 서로 넘나들면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완성해간 데서 시사적 중요성이 놓여진다.
이육사와 함께 윤동주의 시는 일제 강점기를 마무리짓는 의미를 지닌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서시」)라는 한 시에서 보듯이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 시가 지닌 진정성의 넓이와 깊이로 인해 진정한 인간의 길, 바람직한 시인의 길이 무엇인가를 곡진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밖에도 30년대에는 김동명, 신석정, 김상용, 조종현, 함형수, 김상원, 신석초, 윤곤강, 이병각, 장만영, 장서언, 김용호, 박남수, 이한직, 김종한, 김상옥, 박재륜, 최재형 등 여러 시인들이 등장하여 현대시단을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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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시문학의 전개는 분단시대라는 상황을 대전제로 하여 대략10년 주기로 하여 일어나는 역사적 대응관계를 이루면서 전개되는 특징을 지닌다.해방으로부터 6·25동란이 일어나기까지를 보통 해방공간 또는 해방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의 문학적 과제는 친일어용문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문학을 건설하는 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과제는 좌우의 격심한 대립으로 말미암아 혼돈과 정체의 상황에 처하게 되고, 끝내는 남북에서 각기 단독정권이 수립되고 뒤이은 6·25의 발발로 인해 전혀 이질적인 분단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대체로 좌파는 계급주의 민족문학노선으로서 정치문학, 이데올로기 문학으로 경사되었고, 우파는 민족주의 민족문학 노선을 바탕으로 예술주의, 순수주의 문학의 성향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해방기는 일제 강점기에 간행되지 못했던 『육사시집』 『상화시집』 『그날이 오면』, 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이 간행되면서 해방후 신진시인들이 등장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민족문학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시인으로는 구상, 김경린, 김남조, 김수영, 김윤성, 김종길, 김종문, 김춘수, 박인환, 박화목, 이경순, 이동주, 이원섭, 이설주, 이형기, 이효상, 설창수, 유정, 정한모, 조병화, 한하운, 홍윤숙, 황금찬 등을 꼽아볼 수 있겠다. 특히 김수영이 중심이 된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은 3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의 뒤를 이어 50년대 《후반기》 동인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운동의 한 상징이 되었다.
6·25동란이 일어나면서 시단은 완전히 남과 북으로 양단되어 각기 분단문학의 골격을 형성해 가기 시작한다. 6·25는 천문학적인 재산손실과 함께 수백만의 인명손실, 그리고 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남기는 등 비극적인 결과를 남겨주었다. 무엇보다도 국토와 민족, 그리고 문화를 물리적으로 양단함으로써 민족의 재편성을 초래하고 이질화 현상을 노골화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비극성이 더욱 고조된다.
전후문학은 1955년 《현대문학》 등이 창간되고 각 일간지의 신춘문예가 부활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전후시인으로는 「휴전선」으로 분단 비극을 노래한 박봉우를 비롯하여 고원, 고은, 구자운, 김관식, 김광림, 김영태, 김요섭, 민영, 문덕수, 박재삼, 박희진, 박용래, 신경림, 윤삼하, 이성교, 임강빈, 천상병, 한성기, 함혜련, 황금찬, 황명, 허만하, 황동규 등이 등장하여 전후의 새로운 감수성과 방법론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등장한 시인 가운데 특히 김수영과 김춘수, 조병화, 김남조, 홍윤숙, 이형기, 박재삼, 박용래 등은 개성적인 시세계를 보여주어 관심을 환기한다. 김수영은 특히 4·19 이후 「푸른 하늘을」 「풀」 「눈」 등의 시를 통해서 모더니즘적 시각과 리얼리즘의 정신을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시야를 열어갔다. 김춘수는 존재론적 서정을 이른바 무의미시론으로 확대 심화해가면서 자신의 독특한 시세계를 열어갔다는 점에서 시사적 의미를 지닌다. 조병화는 낭만적 서정을 통해 시적 공감대를 확대해가고, 김남조·홍윤숙은 여성시의 가능성을 열어가기 시작한 점에서 시사적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이형기와 박재삼, 박용래 등은 전후에 전통서정을 새롭게 계승하는 한 시범을 보여준 데서 개성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한편 60년대는 시대 자체가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60년대는 민주화와 근대화라는 두 가지 목표가 상호 충돌하면서 자유와 평등을 둘러싼 구조적 모순과 현실적 갈등을 드러내게 됐다는 점에서 그 시대적 성격이 드러난다.따라서 60년대 시는 대체로 현실주의 시와 서정적 예술주의 시, 그리고 주지적 성향의 시로 대별해 볼 수 있겠다.
먼저 현실주의 시는 4·19 혁명 이후 김수영의 「풀」 「푸른 하늘을」이나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금강」 등에서 보듯이 사회참여를 통해 현실비판이나 저항성을 강하게 드러내게 된다. 박봉우, 신동문, 이성부, 조태일, 문병란, 강인섭 등의 시가 대체로 이 계열에 속한다.서정성을 추구하는 예술적 경향의 시들은 《현대시》 《신춘시》 동인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추구되었다. 이유경, 정진규, 김종해, 이승훈, 이건청, 이수익, 오탁번, 오세영, 박이도, 김원호, 이근배, 이가림, 박정만, 김종철 등을 꼽아볼 수도 있으리라.아울러 주지적인 성향의 시인들로는 황동규, 김영태, 마종기, 정현종, 오규원 등을 꼽아 볼 수도 있겠다. 이밖에도 60년대 주요시인들로는 김후란, 성춘복, 허영자, 강우식, 박제천, 홍신선, 유안진, 김초혜, 민용태, 박현령, 김윤희, 박정희, 강인한, 김광협 등을 거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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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는 박정희 유신독재와 그에 뒤이은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인권운동의 강력한 영향권에서 민족문학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 문제를 근간으로 하는 이 땅에서의 민주화운동은 문학에 있어서도 민족문학 또는 민중문학이라는 큰 흐름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김지하와 신경림, 고은의 대두는 이 점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70년대 벽두에 터뜨려진 「오적」 사건은 이 땅에서 시가 정치적 상상력과 사회적 상상력에 접합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민중적 내용의 민족적 양식화’로 요약할 수 있는 김지하의 민중미학은 그동안 분리된 채 논의돼 왔던 정치와 사랑, 문학과 사회·역사의 관계를 하나로 꿰뚫어 냄으로써 민족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 경우라 하겠다. 신경림의 『농무』도 구체적 현장성과 실천적 운동성을 담보해냈다는 점에서, 고은의 80년대 역작 「백두산」과 「만인보」도 지난 한세기 동안의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자유사상과 평등사상, 민족사상과 민중사상, 생명사상과 평화사상으로 극복하고 고양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각기 시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아울러 80년대에는 이른바 김남주나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문학 특히 시가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민족문학의 전면에 떠오름으로써 가히 80년대가 민중시의 시대임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또한 80년대는 황지우, 박남철 등에 의해 이른바 해체시 또는 실험시운동이 급격히 대두되었던 점도 기억할만하다고 할 것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들어서서 우리시의 주요 화두는 단연 생명·생태·환경시의 대두라고 할 수 있겠다. 90년대 들어 민족문학이라는 거대담론이 퇴화하면서 우리 시단은 일종의 이념적 공백상태에 처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담론으로 생태·환경문학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만큼 21세기는 크고 거창한 이론이나 주의·주장보다는 낱낱의 삶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중시하고 철학성, 예술성을 깊이있게 천착해 나아가는 일이 중요한 시적 과제로 대두되게 됐다는 뜻이다.
지금은 21세기의 벽두, 지난 100년의 가치관이 급격히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로 옮겨가기 시작하는 일대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현대시도 이제는 문학으로서의 본도本道를 추구하면서 정도正道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리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시의 시대란 바로 진정한 인간의 시대이고, 바람직한 역사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재홍 교수.문학평론가. 1947년 충남 출생. 경희대 교수.저서 『한국 현대시 시어사전』 『한국 현대시인 비판』 『한국 현대시인 연구』 『카프 시인 비평』 등 다수./시인세계 3호 2002.가을 (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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