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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소설의 향기/탄생100주년 문인

2006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by 골든모티브 2008. 2. 24.

2006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주변에서 글쓰기, 상처와 선택”

강경애, 김오남 엄흥섭, 유진오, 이정호, 이주홍, 이하윤, 조종현, 최정희

‘1906년생’ 근대문학 선구자들 다시 본다

2006년에는 강경애, 김오남 엄흥섭, 유진오, 이정호, 이주홍, 이하윤, 조종현, 최정희 등의 작가가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이들은 카프가 정점을 이루던 시기에 20대의 청년시절을 보냈으며 공교롭게도 당시 문학의 주류였던 카프와 관련이 있거나 그로부터 상처받은 작가들이었다. 카프와 일제 식민통치의 회오리 속에서 문학적 선택을 통해 시, 소설 뿐만 아니라 아동문학, 번역문학, 여성문학 등 다양한 장르로 우리 문학의 외연을 넓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작가는 소설 '김강사와 T교수' 등을 남긴 유진오, 일제시대 최고 사실주의 작가로 평가받는 강경애, 1930년대 여성소설의 경지를 개척한 최정희, '해외문학'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국내 문단에 번역시를 다수 소개한 이하윤, 아동문학가 이주홍 등 9인. 이기영과 더불어 대표적 농민소설 작가인 엄흥섭, 방정환과 어린이운동의 핵심인물로 활동한 아동문학가 이정호, 소설가 조정래의 부친인 시조시인 조종현, 여류시조시인 김오남 등이 포함돼 있다.

  재단과 민족문학작가회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주변에서 글쓰기, 상처와 선택”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 부대행사로 유가족과 일반인들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문학의 밤’을 개최하였다. 그 밖에 ‘이주홍 문학심포지엄’을 지원하였고 강경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강경애에 관한 남북공동 논문집을 최초로 발간하였다. 또한 작가들의 연보와 연구서지를 작성하여 심포지엄 발제문과 함께 묶어 논문집으로 발간하였다.

 

남과 북이 함께 복원한 강경애 문학세계




<강경애, 시대와 문학>은 흥미로운 책이다. 장편소설 <인간문제>의 작가 강경애(1906~1944)의 탄생 100년을 기념해 나온 이 책은 남과 북의 학자들이 쓴 논문을 한데 모은 ‘합동 논문집’인 까닭이다. 남쪽에서 하정일 한만수 하상일 홍기돈 서영인 전용호씨가 필자로 참여했고, 북쪽에서는 한중모 김정웅 조웅철 김일수씨에다가 총련계 재일동포 학자인 오향숙씨도 함께했다. 오향숙씨는 김일성종합대에서 강경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 현재 조선대 교수로 있다. 남쪽에서는 민족문학연구소(소장 김재용) 소속 연구자들이, 북쪽에서는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소장 고철훈) 그룹이 주축을 이뤘다. 여기에다가 지난해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함께 치른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이 힘을 보탰다.

<강경애, 시대와 문학>의 출간이 있기 전에 일종의 전사(前史)가 있었다. 민족문학연구소와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는 지난 2004년과 2005년 중국 선양과 베이징에서 김소월현진건을 주제로 비공개 합동 세미나를 연 바 있다. 2005년 여름 평양과 백두산 등지에서 열린 남북 문인들의 민족작가대회와 지난해 10월 금강산에서 있었던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식 같은 대규모 공식 행사의 이면에서 남북한 문학의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민족문학연구소와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는 지난해에도 강경애와 관련한 합동 세미나를 추진했으나 여의치 않자 이처럼 합동 논문집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북한 작가 홍석중씨의 소설 <황진이>에 대한 남쪽 평론가들의 평론을 모은 책 <살아 있는 신화, 황진이>가 지난해 간행된 바 있지만, 남북 양쪽 문인 또는 학자들이 합동논문집을 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15민족문학인협회’의 기관지로서 남북한과 해외 동포 문인들의 작품을 함께 싣게 될 <통일문학>의 발간을 앞두고 의미있는 선례를 보여준 셈이다.

북한, 이례적으로 남한 자료 참고

<강경애, 시대와 문학>에 실린 북쪽 학자들의 논문을 일별하면 매우 고무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우선, 대부분의 논문들이 남쪽에서 나온 <강경애 전집>(이상경 편, 소명출판, 2002)을 참고문헌으로 적시하고 있다. 객관적인 일차 자료에서부터 남북 양쪽 사이의 소통과 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례다.

북쪽 학자들이 강경애의 문학세계에 관해 천편일률적인 ‘모범답안’을 제출하는 대신, 나름대로 영역과 역할을 나누어 논문을 집필한 점도 눈에 뜨인다. 프로문학, 여성, 습작기와 등단 초기를 중심으로 한 기초자료, 대표작 <인간문제>, 시와 수필 식으로 다섯 학자가 소재를 분담한 것이다. 한중모씨와 김정웅씨는 각각 강경애 문학의 두 축이라 할 계급문제와 여성문제를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한씨는 강경애 문학의 계급적 측면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사실주의에 미치지 못하는 자연주의적 경향을 아쉬움으로 지적하고 있어 주목된다.

남쪽 학자들의 논문 가운데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강경애의 중편소설 <소금>의 붓질 복자를 첨단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아 복원한 결과를 보고한 한만수씨의 논문이다(<한겨레> 2006년 8월 24일 치 23면 참조). 한씨는 특히 일제의 검열로 지워진 채 해독할 수 없었던 <소금>의 북한본 결말부를 자신이 확인한 복원 결과와 비교해서 검토한다. 자신이 확인한바 “이때까지 참고 눌렀던 불평이 불길같이 솟아올랐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는 원문이 북한본에서는 “벌써 슬픔도 두려움도 없이 순사들의 앞에 서서 고개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로 바뀌어 있다. 투쟁성이 강화된 북한본 결말부와 관련해서 한씨는 강경애의 남편 장하일이 ‘복원’에 관여했다는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복원된 북한판 <소금>의 결말부는 김정웅씨 등 북쪽 학자들의 논문에서 작품 해석의 근거로 인용되고 있다.

가부장성 지적하는 논문 반박하기도

서영인씨의 논문도 흥미롭다. 서씨의 논문은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이 마련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발표된 김경수씨의 논문을 겨냥하고 있는 까닭이다. ‘강경애 장편소설 재론’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김씨는 강경애 문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강경애가 “여전히 가부장적 세계관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여성의 존재의 문제성을 통해 식민지 근대의 문제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영인씨는 <인간문제>의 여성 주인공인 선비가 “서사를 이끄는 중요한 축의 하나이지만 한 번도 실질적으로 서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우회와 흔적을 통해 여성주의적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선비가 노동자인 첫째와 부르주아 계급인 신철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첫째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보자. “이 삼각관계는 궁극적으로 역사의 주역은 신철과 같은 부르주아 계급이 아니라 첫째와 같은 노동계급에 있다는 것을 명징하게 밝히는 역할을 한다.(…)그리고 한 번의 결합도 이별도 없는 이 삼각관계의 멜로 드라마를 통해 <인간문제>는 계급문제로 쉽게 귀속될 수 없는 여성문제의 완강한 독자성을 드러낸다.” 이밖에도 낯선 이미지와 극단적인 가난의 묘사 등을 통해 “<인간문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하층계급 여성의 삶을 드러내기 위한 지난한 노력”을 보여준다는 것이 서씨의 판단이다.

북쪽 학자들과 합동 세미나를 연 데 이어 합동 논문집 발간을 성사시킨 민족문학연구소의 김재용 소장은 “남과 북이 공유하는 문학사적 자산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 대상을 더욱 넓혀야 할 필요성 역시 절감한다”면서 “이제까지는 부득이하게 세미나 따로 논문집 따로 했지만, 앞으로는 만나고 책을 내는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짐으로써 남북한 문학의 대화와 소통에 더 효과적으로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겨례,2007.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