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편의 시 - 유자효 (시인, 시조월드 편집인)
시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자로 짜여져 있다. 즉 '말씀의 절'이란 뜻이겠다. 그만큼 경건하고 정제된 말씀이 '시'란 뜻이겠다. 시의 경건성을 천착해 올라가면 종교적 경지에 이른다. 공자는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삿된 것이 없는 생각이 '시'란 뜻이다.
스님은 생애에 몇 차례 시를 쓴다. 득도했을 때 쓰는 오도시와 돌아가시기 직전에 쓰는 열반송이 그것이다. 극도의 정신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구도의 길일진대, 생의 큰 매듭에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 언어의 가장 극점에 시 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성경에는 한 권의 시집이 포함돼 있으니 바로 '시편'이다. 이 아름다운 시들을 읽고 감동으로 눈물 흘리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평소 문학과 별다른 관계가 없고, 또 수도 외에 예술적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했던 고승들도 생애의 두세 편의 시를 남겼다. 그것은 그들이 다다른 최고의 경지를 언어로 표현한 것이었다.
인류가 이 지구에 출현한 이래 최고의 천재이자 최상의 정신 세계를 보여준 석가와 예수는 그들이 하신 말씀이 그대로 시였다. 그러나 이런 경지는 인류의 역사 통틀어 몇 분의 경우에 불과하다.
새 천년은 사이버 시대로 개막됐다. 당분간은 인터넷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이제 시간과 공간은 인류에게 큰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어 갈 것이다.이러한 시대에도 시는 영원하다. 인류가 사이버라는 수단에 싣는 내용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고, 그 언어의 사원이 바로 시다. 따라서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시는 있는 것이다.
나는 종교인들처럼 구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다. 복잡한 현대를 사는 생활인일 뿐이다.나는 단 한 편의 시를 얻기를 원한다. 그 한 편의 시를 얻으면 나의 생애는 완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한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유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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