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無意味)의 시
신라의 향가와 오늘의 현대시는 그야말로 천양의 차이가 있다.
아니 1920년대의 시와 1930년대의 시가 같지 않다.
동일한 시대에서도 또한 지역에 따라 한결 같지 않다.
동양의 시와 서양의 시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같은 서구라도 영국의 시와 독일의 시가 또한 다르다.
같은 종의 생명체도 풍토에 따라서 그 생김새와 성질이 서로 다르듯
시도 그것이 뿌리박고 자라난 역사적 사회적 여건에 따라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며
또한 끊임없는 변모를 계속하고 있다.
미술의 경우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애초 그림은 사물의 모방에서 출발한 것이다.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실물처럼 그럴 듯하게 그린 그림이 훌륭한 그림으로 평가받았다.
솔거(率居)의 「노송도(老松圖)」가 그렇고, 미켈란젤로나 L.다빈치의 그림들이 또한 그렇다.
그런데 시대가 바뀜에 따라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예술성을 화가의 사생력(寫生力)에서가 아니라 작가의 감성과 개성에서 찾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인상파가 등장하고 세잔, 고흐, 고갱 등의 거장들을 낳게 된다.
그 뒤 미술은 대상을 극도로 단순화하려는 추상화,
평면 예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입체화,
지상적(地上的) 질서와 일상적(日常的) 논리를 무너뜨리는 초현실주의 그림 등을 거쳐
드디어는 대상 자체를 거부하는 비구상화(非具象畵)에 이르게 된다.
비구상화는 대상으로부터 해방된 회화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그리고 싶은 선을 그리고, 칠하고 싶은 색을 칠하면 그만이다.
그것은 무엇을 그린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그렸을 뿐이다.
거기에는 아무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
비구상화가들은 자기들의 작업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창조라고 말한다.
우리의 시문학도 미술과 비슷한 경로를 밟으면서 발전해 왔다.
이성(理性)이 주도한 고전주의로부터 감성(感性)과 개성(個性)을 존중한 낭만주의,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했던 상징주의 등을 거쳐 초현실주의에 이른다.
한 마디로 초현실주의란 심층심리를 대상으로 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는 과거 현재 미래의 복잡다단한 이미지들이 뒤엉켜 있는 심층심리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브르똥(A. Breton)은 시 쓰는 방법으로 '자동기술법'을 제시했다.
아무런 구상(構想)과 퇴고(推敲)도 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그대로 언어로 옮겨 놓는 기법이다.
그러니 거기에는 지상적 논리도 일상적 질서도, 어법도 무시된다.
현대시에서도 미술의 비구상화와 같은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다.
시도 비구상화처럼 대상을 떠나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언어 구조를 만들어 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술에서의 선이나 색채와는 달리 시의 매체인 언어는 원초적으로 의미를 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의미를 벗어난 언어 구조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독일의 구체시(具體詩, konkrete poesie)가 시도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얀들(E. Jandle)은 언어로부터 의미를 제거하기 위해서 알파벳을 무의미하게 흩어놓는다든지,
하나의 동일한 단어만을 반복해서 늘어놓는다든지,
의미가 없는 전치사들만을 이어놓는다든지 등등의 실험을 한 바 있다.
1930년대 이상(李箱)의 작품에서도 문자를 뒤집어 놓는 등 이와 유사한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시에서의 이러한 시도들은 비구상화와 같은 순수한 무의미 세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해낼 수는 없었다.
여기에 언어 예술의 한계가 있다.
시가 의미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대상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미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대상 깨뜨리기'를 시도한다.
그렇게 해서 시가 대상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
이것이 곧 '무의미의 시'라는 것이다.
무의미 시의 대부(代父)인 김춘수(金春洙)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자유연상의 기법을 원용한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자연스럽게 늘어놓는데 그 이미지들이 서로 결합하여 일상적 의미를 형성하려고 하면 의도적으로 그것들을 처단한다.
처용단장(處容斷章)의 한 부분을 보도록 하자.
-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軍艦(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죽은 다음에도 물새는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海岸線(해안선)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이 시에 나타난 시간적인 배경은 겨울이고 공간적인 배경은 바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품 속의 겨울은 눈이 내리는 일상적 겨울이 아니라 비가 오는 겨울로 설정되어 있다.
즉 '겨울+눈'이라는 일상성을 '겨울+비'라는 낯선 정황으로 바꾸어 놓는다.
바다 역시 물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사물인데 여기서의 바다는 물이 없는 바다다.
즉 일상적 바다에서 물을 제거한 낯선 공간이다.
거기 물 없는 바다에 주저앉은 군함과 죽은 물새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죽은 물새에게 생명을 부여하여 다시 살리고 있다.
죽음과 삶의 간격을 뭉개버린 즉 생사(生死)가 공존하는 곳이다.
더더욱 기상천외의 구조는 죽은 바다가 한 사나이의 한쪽 손에 매달려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대상의 파괴와 대상들의 낯선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이것은 이 지상의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은 이 작품 속에서만 존재한다.
순수한 창조적인 세계다.
그러니까 무의미의 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가 아니라 일상적인 논리와 의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다. 시를 무의미한 말놀이로 생각한다.
시는 계속 변모해 가고 있다.
전통적인 시의 틀을 거부하는 해체시 혹은 포스트모던의 시들이 여러 가지 실험들을 계속하고 있다.
어느 시대나 기존의 것을 거부하는 새로운 시도는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가 건실하고 긍정적인 것일 때 그것은 새로운 전통을 형성하는 요소로 기여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폐습을 조장하는 공해물(公害物)로 남게 되고 만다.
--[엄살의 시학]pp.105-108
무의미시란?
김춘수선생은 한국 현대시에 "무의미시"라는 새로운 시적 모델을 제시했다. 무의미시는 자연에 대한 감흥이나 정신의지를 비유적 이미지를 통해 노래한 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실험이다. 선생 자신의 말을 빌면 "의미로 응고되기 이전의 세계"로서의 시를 구현한것이다.
48년 시집 "구름과 장미"로 데뷔한 선생은 50년대까지 존재론적이며 서정적인 시를 썼다.선생의 작품중 가장 널리 애송되는 "꽃"은 당시의 대표작.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존재 이전에는 언어도 없다"는 명제를 시로써 충실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시 속에서 기존의 관념을 배제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무의미시'라고 이름붙인 이 새로운 실험은 25년에 걸쳐 완성된 연작시 '처용단장'으로 결실을 맺었다.
선생의 무의미시는 인간의 내면의식을 회화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얻는다. 초현실주의 화가가 그림으로 인간의 혼돈된 무의식세계를 그리듯 선생은 언어로 무의식세계를 서술했다. 통일성 없이 해체된 이 언어적 그림들은 위로는 이상의 아방가르드적인 경향과 잇닿아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징후를 선구적으로 보인 것이기도 하다. 선생의 시는 특히 후배시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모작을 낳았다.
'처용단장'의 완성으로 언어해체라는 극단까지 몰아붙였던 '무의미시'실험을 끝낸 선생은 최근 들어 "마음가는대로, 느끼는대로"사물의 모습을 노래하는 연작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시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있다"고 말하는 선생은 끝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시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모범을 보여줬다./
내용출처 : http://www.inchonmemorial.co.kr/prize_old12_2.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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