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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발표 작품

루저녀 오호통재라!

by 골든모티브 2010. 2. 7.

루저녀, 오호통재라!

 

 

마 전 모 방송국의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이 “키가 180센티미터가 되지 않는 남자는 루저(loser)다” 라는 발언을 해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방송이 외모지상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조장한다며 시청자와 네티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또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게시판에 연일 대다수의 남성들이 그 여대생에 대한 비난과 성토의 댓글을 달고 심지어는 그 해당 학교 홈페이지의 방명록과 교수의 이메일을 통해 제적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출연자는 개인적인 소견이고 웃자고 한 이야기였는데 이렇게까지 이슈화되고 일파만파로 퍼져 확대 재생산될 줄 몰랐다며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숨어 지낸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공중파를 통해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적 특징을 비하한 발언은 부적절하고 분명 잘못된 일이다. 물론 그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낸 제작진 역시 책임이 크다. 그러나 작은 키의 남성을 폄하했다는 ‘루저’ 발언의 파장이 혹 양성평등의 문제로 확산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나는 평생을 키가 작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았고 자존심을 상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수없이 당해서 이제는 그런 말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그 상대가 남성이 주로 가해자라는 점이다. 특히 군대에서 키가 작다는 이유로 ‘숏다리’, ‘짜리몽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나의 신체를 대상으로 조롱하며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토해 냈다. 심지어는 고참병들이 “야! 김일병 너 어떻게 그 키에 현역으로 입대 했어”.

“누구 백이야” 하며 하루아침에 나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며 ‘루저’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때의 그 기분을 니네들이 알아?”

 

이제 와서 대다수의 남성들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상대적으로 나보다 작은 키의 친구나 동료들을 놀릴 때는 즐겁고 재미가 있었는데, 날씬한 몸매를 지닌 매력적인 여대생이 그런 말을 하니까 모두가 원통하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니 우습지 않은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슬기롭고 현명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평생을 속앓이를 하며 참아온 사람들도 있는데, 우선 그들에게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언론과 방송은 툭하면 ‘얼짱’이니 ‘몸짱’이니 또는 ‘꿀벅지’를 들먹이면서 선정적으로 기사화하고 프로그램을 제작 진행하면서 독자와 시청자를 우롱하고 있다. 특히 주말에 TV를 시청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벌게지게 만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개그프로그램에서는 작은 키와 뚱뚱한 몸매를 지닌 여성을 희화화 하며 시청자들의 억지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얼굴에 악성코드가 걸렸어’, ‘얼굴이 어떻게 그따위로 생겼습니까’, ‘얜 성형하면서 사람 됐고….’ 등 외모를 소재로 삼아 웃음을 조장하는 것은 심각한 인격 모독이 아닐 수 없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남성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성격이나 능력보다는 경제력이나 늘씬하게 잘 빠진 미모의 여성을 더 원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모두가 인격보다는 그 사람의 외모를 중시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더 이상 숨길 일도 아니다.

 

여성들의 선호도가 높은 직업인 스튜어디스를 채용할 때 키와 외모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연예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남녀를 불문하고 키와 외모는 우리 사회에서 이성을 만나는 조건이며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또한 20~30대 여성들 중 80%가 성형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사랑과 조건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역시 조건을 선택했다. 따라서 성형욕구로부터 벗어날 미혼 여성들이 몇이나 될까? 모두가 ‘나’라는 정체성과 개성을 내던지고 연예인과 비슷한 외모 기준을 내세워 누구 코처럼, 누구 눈처럼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요구한다고 하니 외모지상주의가 절정에 달한 것 아닌가 싶다. 심지어 “백화점 여성고객의 대부분은 눈, 코 성형은 다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며 성형이 현대 여성들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개성적이고 매력이 있는 자연 그대로의 얼굴은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고 틀에 박힌 전형화 된 미인도의 모습만 볼 뿐이다.

 

우리 사회가 외양으로 남을 평가하고 그 모습에 반하고 모방할 때, 또 이성을 선택할 때 능력이나 성격보다 키가 좀 더 크고 매력적이고 섹시한 상대를 계속 원하고 찾는 이상, 외모지상주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것처럼 떠들어 댈 필요도 없고 억울하게 느낄 일도 아니다. 일찍이 효경에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니라” 했다. 현대적 의미로 판단할 때 타고난 외모를 성형하는 것쯤은 불효가 아니라고 해도 부모님이 물러주신 생긴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랑해야 되지 않을까?

 

최근에 일어난 ‘루저녀’ 사건은 누구의 탓도 아니며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인간의 인격과 지성, 내면의 성격보다 눈에 보이는 외향적인 요소를 중시하고 선호한 이상 그 책임은 아무에게도 물을 수 없다. 언론과 방송도 더 이상 외모와 스펙(spec)이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일깨워 주었으면 한다. 새로운 미디어법을 제정하여 막말 방송, 인신공격 등이 남발하는 예능, 오락 프로그램의 내용을 개선하고 중매체의 올바른 문화를 선도해 인간의 행복과 꿈을 표현하고 실현해 줄 수 있는 매체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외모와 상관없이 평등하게 살 권리와 행복을 누릴 의무가 있는 것이다. ‘루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위너’가 되는 세상은 볼 수 없을까? <20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