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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발표 작품

미당 서정주 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by 골든모티브 2010. 2. 8.

미당 서정주 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문학서울 14호(2011)

근 일제의 식민 지배에 협력한 친일 인사들의 행적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어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친일파 시인으로 분류, 수록되어 이제 피할 수 없는 친일파시인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 와중에 동국대가 대학원 신입생 모집광고에서 서정주 시인을 광고 모델로 사용해 일부 학생들이 친일파시인을 광고로 사용했다고 항의하는 등 논란도 있었다.

서정주 시인에게는 친일파라는 꼬리표가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그의 작품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1943년 매일신보)에서 “교복과 교모를 이냥 벗어버리고 …… 주어진 총칼을 손에 잡으라! / 적의 과녁위에 육탄을 던져라!”고 조선의 청년들을 전쟁터에 뛰어들라고 독려했으며 또한 ‘송정 오장 송가(頌歌)’(1944년 매일신보)에서도 뚜렷한 친일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

 

21살 조선의 젊은 청년을 자살 특공대로 몰아가고 일본 천왕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권유하며 일본의 침략전쟁을 주도적이며 노골적으로 정당화시키고 있다. 죽음을 미화하는 서정주의 작품은 요즈음 사회문제로 부각된 자살예방은커녕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동조자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며 그 책임은 당분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1992년 당시에 논란이 일고 있던 자신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한다. 당시 문단에 소속된 많은 문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일부 친일 행각을 했다고 하지만 그의 문단적 지위로 볼 때 서정주만큼은 예외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한국문학사에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겼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서정주를 대상으로 올해 작고 10주기를 맞아 ‘미당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미당 재평가와 고택 복원을 한다고 한다. 우선 봉산산방(蓬蒜山房, 관악구 남현동 고택) 복원과 미당문학제 활성화 방안 등이 그것이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된지 얼마 안 되어서 미당 재평가를 한다는 것은 다소 시기적으로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만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보다 객관적인 평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당 서정주는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시인이며 살아서 이미 '시의 정부(政府)', 시문학의 교주로 불린 그였다. 한국 시인협회는 한국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10대 시인을 선정했다. 한국 현대시 10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은 누구일까? 나란히 김소월과 서정주가 1, 2위를 차지했다. 서정주는 그의 대표작 ‘동천’, ‘자화상’, ‘국화 옆에서’ 등에서 “민족 언어를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국민을 대표하는 서정주 시인이지만 문단에서는 후학문인들에게 극단적인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현대시를 가르칠 때 고민이 많다. 서정주와 그의 작품을 빼놓고 시문학사를 논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기 때문이다. 대입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에서 이미 ‘귀촉도’,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가 출제되었고 모의고사에서도 ‘무등을 보며’, ‘추천사’, ‘춘향유문’, ‘견우의 노래’ 등이 꾸준하게 출제 작품으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 7차 교육과정 개정 때 미당의 시는 친일행적으로 인해 중, 고교 국어교과서에서 사라졌지만 18종 문학교과서에서는 아직도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문학교과서에서도 ‘신부’라는 작품이 버젓이 실려 있고 문학시험 출제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또한 생명파 시인을 언급할 때 청마 유치환과 더불어 서정주를 이야기해야 한다. 서정주 시인의 친일행위를 미워하고 그의 작품을 읽기 싫어도 우린 애써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연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신경림 시인은 “미당의 작품은 그의 친일 행태와 구별해서 논의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교사들이 가르치고 시험에 출제되는 이상 그의 작품은 작품대로 인정하고 연구해야 한다. 친일파 시인으로 과오가 분명한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정지용, 이용악 시인을 월북문인이라 하듯이 친일문인 서정주를 그렇게 부르면 될 일이다.

우리말을 풍부하고 빼어난 시어로 빚어낸 서정주의 문학적 성과와 일제 강점기 암흑기를 지킨 저항시인 윤동주와 이육사와는 달리 현실 인식이 부족하여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라고 노래한 친일행위의 과오와 변명을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주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정주 시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10. 1. 한서고 도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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