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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발표 작품

이비야 온다

by 골든모티브 2010. 2. 27.

이비야 온다

 

 

 

해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庚戌國恥)’ 100주년이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은 새해 첫 달 일본을 여행한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일본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계기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어 기대가 앞선다. 역사가 남긴 앙금은 여전하지만 최근에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상당히 완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독도 영유권 문제와 위안부 보상 문제 등의 갈등 요인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가 베스트셀러 1, 2위를 오르내리고 일본에서는 한류 붐이 일고 있다. 이제야 말로 한일 과거사를 청산하고 양국 간의 새로운 미래의 동반자로서 국제관계를 설정할 때라고 본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닌 따뜻하고 오래된 친구 같은 이웃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교토(京都)는 2차 세계대전 중에도 피해를 면한 천년의 고도이다. 지금도 거리, 전통가옥, 절이나 신사 등이 예전의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며 개발이 다른 도시에 비해 제한되어 잘 보존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길가의 전봇대도 옛 모습 그대로 서있다. 특히 이곳의 전통 기와집들을 보면 경주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한옥의 풍경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또한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한 거리의 모습과 수많은 소형차의 물결들은 다시 한 번 일본의 국민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거리의 자전거행렬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소박하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동호인들끼리 형형색색의 쫄바지를 입고 비싼 자전거를 타고 과시하듯 줄지어 다니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풍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버스의 자그마한 유리창을 통해 교토의 풍경을 스케치하면서 일본에 대해 새록새록 깨닫는 사이에 벌써 히가시쿠(東區)의 교토박물관 옆에 있는 미미즈카(귀무덤·耳塚/코무덤·鼻塚)에 도착했다. 귀무덤의 참배는 임진·정유재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저지른 만행을 직접 보고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함이다. 토요쿠니(豊國) 신사 앞의 오른쪽 주택가 둔덕에 자리잡고 있는 작고 초라한 무덤이 말없이 숨을 죽이고 있다. 화려하고 웅장한 토요쿠니 신사가 아래를 굽어보며 하루 종일 죄인을 감시하고 있는 듯한 형국이 영 찜찜하고 꺼림칙스럽다. 신사의 거대한 도리이를 힐끔 곁눈질하며 귀무덤으로 향했지만 철문으로 된 입구는 자물쇠로 굳게 잠겨 개별방문을 허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철책 너머로 쓸쓸한 봉분이 보이고 그 위로 육중한 돌비석(오륜탑)이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의 무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의 무덤이다. 혹시나 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총위의 석탑은 원혼의 기를 짓누르고자 무덤위에 세웠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코와 귀를 잘라 소금에 절인 것도 부족해 돌을 무덤에 올려놓아 우리 조상의 원혼을 또 한 번 피눈물 나게 만들다니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진다. 철책 앞에서 참배를 하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령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예전에 에도로 가는 조선통신사들도 이곳에 들러 밤새 통곡을 하였다고 하니 슬픈 역사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이총은 임진·정유재란 당시 왜군이 자신들의 전공을 본국에 입증하고 과시하기 위해 12여만 명의 코와 귀를 잘라 소금에 절여 가져가 토요쿠니 신사 앞에 무덤을 만들어 묻은 것이라 한다. 이때 전장에서 싸우다 죽은 군인뿐만 아니라 양민들과 간난 아이들까지 죽여 코를 베고 귀를 자라 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를 생각하니 적개심이 끓어오른다. 어렸을 때 아이들이 울면 ‘이비야(耳鼻爺) 온다’ 라고 외치면 울음을 뚝 그쳤다. 지금 생각하면 이비야는 코 베어가고 귀 떼어가는 왜군들을 의미하는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말인 것이다. 이런 뜻인 줄도 모르고 이비야를 불러댔지만 치욕스럽고 처절한 역사의 소리임을 알고 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난 12월 한일문화교류의 밤(서울가든호텔) 문화행사에 강서문인협회 편집위원장 자격으로 초청을 받고 문인들과 함께 참석을 했을 때 삼중스님을 만나 이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삼중스님과 사천문화원은 영혼 환국운동을 벌인 끝에 1992년 이총의 흙을 항아리에 담아 와서 이역만리에서 떠도는 원혼을 달래고자 경남 사천시 조명군총(朝明軍塚) 옆에 제를 지내고 안치하였다고 한다. 삼중스님은 천정을 올려다보며 진한 한숨을 내쉬면서 “왜놈들은 정말 잔인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합의만 있다면 귀무덤 전체를 이장하는 사업을 하겠다며”며 목청을 높이면서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신 일이 기억난다. 이제 타국에서 수백 년간 울부짖으며 구천을 떠돌던 조선의 영혼들이 영구히 귀국하여 고향에서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나서야 할 차례인 것 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근처에 사시는 시미즈시로(96세)라는 할아버지께서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 무덤을 관리하고 있다니 머리 숙여 감사와 위로를 드린다. 교토에 가기 전에는 토요쿠니 신사를 방문해 보려고 했었는데 귀무덤을 보는 순간 그의 잔학성에 치가 떨리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아직도 이곳을 찾는 참배객들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귀가 멍해짐을 어찌할 수가 없다.

2010.1.26.교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