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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발표 작품

호류지에 활짝 핀 금당벽화

by 골든모티브 2010. 2. 27.

호류지에 활짝 핀 금당벽화

 

 

사이 공항에서 1시간 정도 버스로 달려 나라현으로 들어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하고 좁은 시골길 양옆으로 아직 채 수확하지 못한 무와 배추포기가 덩그렇게 남아있고 그 뒤로 일본의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는 2층 기와집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듯 열을 지어 서있다. 나라(奈良)는 1,300년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된 고도이며 불교의 중심지이다.

 

백제의 숨결과 혼이 서려 있다는 도다이지(東大寺)를 뒤로 하고 일본 불교문화의 보고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담징스님의 금당벽화가 있다는 호류지(法隆寺)를 찾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서녘하늘이 잿빛으로 물들더니 갑자기 찬바람이 귀밑을 스치며 겨드랑이를 타고 이내 가슴으로 밀고 들어온다. 온몸이 오돌오돌 떨리는 순간 가느다란 빗줄기가 머리위로 떨어지더니 점차 빗줄기가 굵어지며 어깨를 적신다. 일본은 비가 자주 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갑작스럽게 만난 비가 달갑지는 않았다. 일정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다는 가이드의 말이 조금은 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혹 그렇게도 기다렸던 금당벽화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신의 시샘이 아니라면 부처님이 금당벽화를 조금이라도 더 감추고 싶은 속셈일까? 아니면 담징스님이 오늘도 화필을 잡지 못한 채 위기에 처한 조국을 떠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번뇌를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알리려는 것일까?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금당벽화를 반드시 보아야한다는 일념으로 줄 곳 달음박질한 나를 잠시 세우며 차분하게 진정시키고 있었다.

 

남문을 지나 중문을 거쳐 서원가람으로 들어가 회랑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정면으로 31.5미터 높이의 오층 목탑과 성스러운 금당이 위풍당당한 위용을 드러내며 빗줄기 사이로 고색창연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답게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숙연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처음으로 나를 반기는 호류지의 건축물이기에 인사라도 하듯이 멋진 장면을 담기 위해 카메라셔터를 정신없이 눌러댔다. 일본인들이 호류지를 찾는 것은 8등신 미녀의 우아한 구다라관음상(백제관음)을 보기 위해서라지만 난 신비스러운 금당벽화를 보기 위해 일정을 바꾸어서 도다이지 대신 이곳을 선택했다.

 

드디어 오층탑을 지나 본존이 안치된 금당으로 들어섰다. 금당 중앙에 금동 석가삼존상과 좌우로 아미타여래상, 약사여래상이 모셔져 있지만 힐끗 쳐다보며 벽화를 찾아 줄달음쳤다. 그 중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아미타여래상과 좌우의 협시보살의 모습이 그려진 ‘아미타정토도’였다. 숨을 고르며 부드럽고 살아 숨 쉬는 듯한 선의 아름다움에 도취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다만 눈에 익숙한 통인의 손모양이 여기에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더욱 친근하게 느껴질 뿐이다. 벽화가 선명하지 못하여 담징의 진가를 온전하게 보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불법을 이곳에 전하고 싶다는 담징의 염원이 담겨 있는듯하여 그나마 위안으로 삼으려 한다. 그렇지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온 희미한 벽화는 내 가슴속에 내려앉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정한숙의 소설 ‘금당벽화’가 문득 떠오른다. 벽화를 그리기로 약속한지 8개월이 지나는 동안 고뇌에 가득 찬 담징은 고구려의 승전보를 주지스님에게 전해 듣고 비로소 붓을 잡는다.

 

“무학같이 벽 앞에 나는가하면 용의 초리같이 벽면을 스쳤다”

……

“거침없는 선이여,

부드러운 색조여,

범할 수 없는 관음상이여”

……

 

나는 왜 이런 진면목을 볼 수가 없는 것일까? 불심이 부족한 것이겠지 하며 자책한다. 기대와는 달리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없음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기만 하다. 벽화는 1949년에 소실되어 현재는 모조벽화가 걸려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귓전에 맴돌 뿐이다.

그런데 담징의 흔적을 찾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담징과 관련된 금당벽화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한국어판 ‘법륭사약연기’에도 마찬가지다. 담징의 이름은 더더욱 찾을 수가 없었다. 담징의 금당벽화는 우리의 역사와 소설, 영혼 속에서만 남아있고 호류지 어느 구석에도 그 실체를 찾을 수가 없는 안타까운 현실만이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억누르고 있어 씁쓸하기만 하다

2010.1.25. 나라현